들어가며: 한 인물이 드러내는 한국 정치의 그늘
한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는 그 인물이 속한 집단 전체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나곤 합니다. 유시민이라는 이름은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는 단순히 한때 장관을 지내고 지금은 방송에서 정치 평론을 하는 인물이 아닙니다. 그의 삶은 혈연으로부터 시작해 학연을 타고, 진보 정당을 분열시키며, 결국 서구 리버럴 구조를 베끼는 "신식민지 엘리트"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가 속한 친문 세력은 지금 이재명 정부를 향해 "분열의 칼날"을 겨누고 있습니다. 이 글은 유시민이라는 한 인물의 궤적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며, 그가 상징하는 친문 세력의 실상과 그것이 한국 정치에 드리운 그늘을 직시하려는 시도입니다.
1. 식민지 엘리트의 유전자
유시민의 가계는 한국 현대사의 그늘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의 부친 유태우(1920~1982)는 1943년 2월부터 1945년 7월까지 만주국 통화성 폐대무자촌 국민우급학교에서 훈도(訓導)로 재직했습니다. 경북교육청에 남아 있는 인사기록은 이 사실을 명확히 증명합니다. 훈도는 제복을 입고 칼을 차며 천황숭배와 내선일체, 황국신민 교육을 담당하던 식민지 통치의 핵심 요원이었습니다. 그의 백부 유석우 역시 경북 경주 내남면의 면장을 지냈습니다. 류성룡의 자손들이라 카더랍니다. 또다른 이순신을 발굴할 유전자인가요?

2004년 브레이크뉴스의 보도로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유시민의 반응은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당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먼저 "선친은 일제 때 교사를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합니다. 기록이 확인되자 "1943년경 만주 소학교에서 잠시 근무한 적은 있는 것 같다"고 꼬리를 내렸고, "교사였는지, 보조원이었는지, 행정사무를 보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며 모호한 태도로 얼버무립니다.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 문제를 집중 추궁했을 때도 그의 답변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연좌제 금지"라는 헌법 원칙(제13조 3항)을 내세우며 "부모의 행위로 자식을 제약하는 것은 헌법이 허용하지 않는다"고 방어했습니다. 네, "그 시대 그런 식으로 살지 않은 공무원·교사 집안은 거의 없었다"는 식의 보편화 논리로 일관했고, 최소한의 유감 표명조차 없었습니다.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그는 이 문제가 나오면 실실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네, 괜찮습니다. 최소한 부끄러워 할 줄 안다면요.

그러나 이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실제로 겪은 연좌제 피해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오랫동안 회자될 정도로,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취업과 교육에서 차별받았고, 호적에는 "빨간줄"이 그어졌으며, 3~4대에 걸친 빈곤과 낙인을 강제로 물려받아야 했습니다. 국가보훈처 조사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후손의 70~75%가 월 소득 200만 원 미만이며, 10명 중 3명은 빈곤층에 속합니다. 많은 후손들이 "할아버지가 독립운동했다는 사실을 집안에서 쉬쉬했다", "창피해서 숨겼다"고 증언합니다.
유시민은 "연좌제 금지"를 자신의 가계를 방어하는 논리로만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진짜 연좌제 피해를 가장 직접적이고 장기적으로 입은 쪽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었는데, 그 피해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습니다. 불행한 과거요? 불행한 게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2. "운동권"이라는 허구적 훈장
1984년 9월,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학생운동권(복학생협의회)은 타교생과 민간인 4명(임신현, 손현구, 정용범, 전기동)을 "경찰 프락치"로 오인해 납치하고 감금했습니다. 학도호국단 사무실 등에서 이들은 각목으로 구타당했고, 주전자와 세면대 물을 얼굴에 퍼부으며 물고문을 당했습니다.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은 채 20시간에서 6일 동안 감금됐습니다. 경찰과 법원 조사 결과, 이들 4명은 모두 프락치가 아니었습니다. 피해자 중 일부는 정신분열을 앓았고, 고시를 포기했으며,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했습니다.

유시민은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습니다. 직접 폭행항 힘은 없었던 것 같지만, 감금과 조사 과정에 찬동하고 참여했으며, 피해자의 소지품을 뒤지고 조사에 관여했습니다. 고문 현장을 방관하고 방조/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실형을 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실형" 대목에서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러나 정작 이 사건에서 더 문제가 된 것은 그의 "항소이유서"였습니다. 1985년 구치소에서 쓴 이 글은 원고지 100장 분량으로, 14시간 만에 퇴고 없이 일필휘지로 작성됐다고 정해집니다. 그는 이 글에서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 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라고 웃으며 휘갈깁니다. 다시 확인합니다. 그는 고문 방조자입니다.

"법은 일시적/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라는 문장은 이후 수십 년간 "명문"으로 회자됩니다. 그는 사건을 "정권의 학원 탄압과 프락치 공작에 대한 학생들의 불가피한 대응"으로 규정했고, "만일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직접 그들을 연행/조사하였을 것입니다(그것이 위법임은 물론 잘 알지만)"라고 웃으며 말합니다. 물론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나 반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시대 탓, 정권 비판, 양심의 우위라는 철학적(?) 호소로 일관했습니다.

이 글은 서울대 학연 네트워크를 통해 "운동권 명문"으로 포장되었고, 1986년 '아침으로 가는 길'에 수록되면서 유시민의 "민주화 운동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이후 "사과 한마디 제대로 안 했다", "TV 나올 때마다 트라우마"라고 증언했습니다.
그의 "운동권" 이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 시기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조사에서 90쪽 분량의 진술서를 작성해 냅니다. 여기에는 운동권 동료 77명(이해찬, 김부겸, 신계륜 등)의 실명과 행적이 상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심재철 등 동료들은 이를 "동지들을 겨눈 칼"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운동권"이라 불립니다.
실형을 산 후, 1992년(30대 중반), 그는 아내의 손을 잡고 함께 독일로 유유히 유학을 떠납니다. 마인츠 대학에서 보건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5년 3개월 동안 체류했습니다. 본인은 "3당 합당으로 국회가 재미없어서", "아내의 제안", "학비가 무료라서"라고 설명했지만, 비판적인 시각은 이를 사건 후 책임을 피해 해외로 피신한 것으로 볼 것이 당연했습니다.
3. 학연 네트워크로 열린 정치 입문
독일에서 돌아와 칼럼니스트와 시사평론가, MBC '100분 토론' 진행자로 활동하던 유시민은(학연과 지연 이외에 달리 그 정당성을 입증할 방법이 있으신 분은 메일 바랍니다.) 2001년 말에서 2002년 초 사이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이 합류의 경로는 그의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 78학번 동기 '정태인'이 먼저 캠프에 들어가 경제 정책 지원을 하다가 "경제학자가 부족하다"며 그를 끌어들인 것입니다. 노무현 본인이 직접 영입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학연 네트워크를 통한 진입이었습니다. 유시민 본인은 물론 전체 정계에 분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입니다. 이때 역시 학연입니다.

2002년 7월, 노무현 후보가 직접 유시민의 마포 작업실을 찾아 "노무현의 시대가 오겠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유시민은 "100% 오죠. 반드시 올 수밖에 없죠"라고 답하며 공개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개혁국민정당 창당(노무현의 요청), 열린우리당 창당, 2004년 총선 당선(고양 덕양갑),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이어지는 "신식민지적 엘리트", 네 명문대 서구 유학파 코스를 밟습니다.
경북 안동(TK) 출신이라는 지연은 "보수 지역 출신이 진보 정치로 성공했다"는 특별한 서사로 포장되었고, 독일 유학 경력은 "지식인 장관" 이미지를 강화했습니다. 항소이유서로 얻은 "운동권 명문"이라는 훈장은 서울대 학연 네트워크 속에서 더욱 빛을 발했습니다.
4. 진보 정당을 무너뜨린 "분열 선수"
2011년 12월, 진보 진영의 대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통합진보당이 창당됐습니다. 민주노동당(자주/노동 세력)이 55%, 국민참여당(유시민·천호선 등 노무현/참여정부 출신)이 30%, 새진보통합연대(심상정/노회찬)가 15%의 비율로 합당했습니다. 유시민은 국민참여당 대표로서 이 통합을 적극 주도했습니다. 오,,,신이시여...
창당 직후부터 갈등의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2012년 3월, 비례대표 경선에서 IP 중복, 대리투표, ARS 조작 의혹이 터진 것입니다. 이른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사건"의 시작이었습니다.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2012년 4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1차 조사는 조준호 위원장이 이끌었으나, 조사 과정에서 당권파(이 용어도 해괴한 것입니다만, 자주파/경기동부연합을 말했습니다.)에 대한 일방적 공세가 이어지자 당내 갈등이 격화됐습니다. 결국 2차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새로 구성되었고,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인 김인성 한양대 겸임교수에게 기술검증을 의뢰하게 됩니다.
김인성 교수팀은 투표관리 서버의 웹로그와 데이터베이스 로그를 분석했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블랙박스"를 열어본 것입니다. 1차 진상조사위(조준호)는 이 로그 분석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블랙박스를 안 보고 사고 여부를 판단한 셈"이라는 게 김인성 교수의 지적이었습니다.
분석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조직적 부정선거를 저지른 주체는 당권파(자주파·경기동부연합)가 아니라 다름아닌 참여계(유시민, 천호선, 오옥만 측)였습니다. 이걸 누구도 말하지 않습니다!

김인성 교수팀이 발견한 구체적 정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제주시의 한 상가건물에 있는 "M건설" 사무실에서 오옥만 후보(참여계)에게 270표의 "몰표"가 집중됐다. 이 사무실은 직원이 1명만 근무하는 조그만 곳이었다.
둘째, 이곳은 공식 현장투표소가 아니었음에도, 공식 현장투표소에서만 사용 가능한 "온라인투표 확인기능"이 6,019건 실행되었다. 투표 여부 확인 이후 730명의 온라인 투표가 진행되었고, 이 기능 실행 직후 같은 IP에서 152명의 온라인 투표가 실행되었다.
셋째, 정상적인 투표라면 나타나는 "헬프" 페이지 조회나 "뒤로가기" 등의 행동 패턴이 전혀 없었다. 대신 정확한 링크만을 찾아 기계적으로 클릭하는 패턴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최소 2인 이상의 "오퍼레이터(조작자)"가 작업했다는 정황증거가 되었다.
김인성 교수는 이 사례를 두고 "온라인 부정선거의 '끝판왕'이다. 합리적 의심을 뛰어넘는 명백한 부정의 사례"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만, 아무도 모르는 듯합니다. 그래서 알려 드립니다.
문제는 이 조사 결과가 진상조사위 내부에서 은폐되었다는 점입니다. 당시 진상조사위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구성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조사위원 6인 중 4인이 부정선거 의혹을 받은 후보들이 추천한 인사들이었고, 이들은 전원 참여계(신당권파) 소속이었습니다.
- 고영삼 조사위원: 오옥만 후보가 추천 (이후 함께 구속)
- 신 모 조사위원: 윤금순 후보(부정 의혹을 받은 인물)가 추천
- 엄 모 조사위원: 이영희 후보(구속영장 청구)가 추천
- 이 모 위원: 나순자 후보(이영희와 같은 국민파)가 추천

즉, 부정 논란의 당사자와 그들이 추천한 인사들로 진상조사위가 구성된 셈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직적 부정선거는 감추고, 경쟁상대였던 당권파(자주파) 인사들을 가해자로 몰아갔습니다.
김인성 교수팀이 작성한 기술검증보고서(이른바 "김인성 보고서")에는 참여계의 범죄행위가 고스란히 재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2년 6월 26일, 혁신비대위(참여계 주도)는 이 보고서를 표결을 통해 폐기했습니다.
이에 김동한 진상조사특별위원장은 결과 발표 2시간여를 앞두고 돌연 사퇴했습니다. 그는 "법학자의 양심에 기초해서 봤을 때 이번 조사는 객관성과 공정성이 철저히 보장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위원회 내에 충분한 논의와 원만한 합의도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진상조사특위는 이후 김인성 보고서 폐기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냈습니다. 특위는 "김인성 보고서의 사실 관계는 진상조사보고서에 반영됐고, 관련 당직자 진술이나 선거관련 규정에 벗어난 자의적 해석 부분만 제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김인성 교수에게 위임한 범위는 기술 검증에 국한된 것이었다"며 "검증 결과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한 것은 업무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인성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저를 죽일 수는 있어도 로그 정보에 기록된 사실까지 지울 수는 없다"며 "이 사실은 검찰도 곧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기 전에 이성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통합진보당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김인성 교수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2012년 11월, 검찰은 통합진보당 경선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전국 14개 지방검찰청에서 20명을 구속기소하고 442명을 불구속기소한 것입니다.
구속된 지도급 인사들은 전원 "탈당파"(참여계)였습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언론에 의해 경선부정의 "피해자"로 여겨졌지만, 검찰수사 결과 가해자로 드러난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이걸 아무도 모르는듯 합니다.
구체적으로 구속된 인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오옥만(비례후보 9번): 참여계 출신. 당내 경선 당시 불법 콜센터를 차려 수백여명의 대리투표를 한 혐의
- 고영삼(1차 진상조사위원): 오옥만 후보의 선거부정을 지휘한 혐의로 함께 구속
- 이영희(비례후보 8번):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 출신. 이경훈씨와 함께 200여표의 대리투표를 조직
- 이정훈(2차 진상조사위원): 이영희 후보의 선거부정을 도운 혐의
- 윤갑인재(비례후보 20번): 노동계 인사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사건은 한국 진보(사실 이 용어만큼 자학적인 건 없습니다.) 정치사의 가장 치욕적인 장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당권파(자주파)의 부정선거"로 왜곡되어 온 데에는, 유시민을 비롯한 참여계가 진상조사위를 장악하고 김인성 보고서를 폐기한 결과였습니다.
조준호 진상조사위는 경선 과정에서 선거부정을 감행한 인사들과, 선거부정에 연루된 후보자들이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사실상 "진상조사"를 방해한 셈입니다. 이들은 자신들과 경쟁해 온 구당권파를 향해 각종 의혹들을 제기했지만, 실제 경선과정에 대한 로그분석을 실시하자 이같은 의혹은 모두 허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반면 진상조사위는 오옥만 등 자파 후보들의 선거부정 의혹들은, 관련 증거 자료들과 외부 용역보고서까지 폐기하며 은폐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김인성 교수는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조사위 자체가 문제가 있다. 법정으로 치면 판사-변호사-검사가 있다고 하자. 조사위원회는 판사 노릇을 해야 한다. 양쪽의 주장을 조사하고 각자 보고서를 본 뒤 판사 역을 하는 분이 양심에 따라 진실을 판단해줘야 하는데 조사위원회 자체가 정파별로 구성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건은 유시민이 주도한 참여계의 기회주의와 무도함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자신들의 조직적 부정을 은폐하기 위해 진상조사위를 장악하고, 오히려 당권파를 "종북/패권주의"로 몰아 진보 정당을 분열시킨 것입니다.

부정선거의 진정한 피해자는 오히려 당권파(자주파)였습니다. 당권파 인사들은 "부정선거의 가해자"로 몰려 언론에 비난받았고, 결국 당권파만 남은 통합진보당은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으로 소멸했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유일한 정당 해산 사례였습니다....
진보당 계열(자주파)은 이후 정의당을 "분열의 핵심 주체"로, 유시민/심상정/노회찬 등을 ‘진보를 이용하다 버린 배신자’로 규정했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친문)이 2014년 통진당 해산 당시 "종북몰이" 프레임에 합세하거나 방관했다고 비판합니다. 이것이 민주당 외 진보진영이 친문을 비판하는 가장 큰 역사적 원한입니다.
반면, 유시민을 비롯한 참여계는 "셀프제명"으로 의원직은 유지한 채 당을 떠나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을 창당했고, 이후 "깨끗한 진보"라는 새 명함을 들고 정치를 계속합니다. 이것이 유시민이 한국 진보 정치사에 남긴 가장 큰 불결한 상처 중 하나인 것입니다.
진보당 계열(자주파)은 이후 정의당을 "분열의 핵심 주체"로, 유시민/심상정/노회찬 등을 "진보를 이용하다 버린 배신자"로 규정했지만 이미 때 늦은 푸념입니다. 이들은 민주당(친문)이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종북몰이" 프레임에 합세하거나 방관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이 민주당 외 진보진영이 친문을 비판하는 가장 큰 역사적 원한입니다. 만약 당신이 자주적인 본래의 진보주의자라면, 친문은 원수입니다. 가래가 돋는...
유시민은 "패권주의", "혁신 불가능"을 이유로 당무를 거부하며 탈당을 주도했습니다. 심상정은 "헌법 안의 진보 vs 헌법 밖의 진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당권파를 헌법 밖 종북 세력으로 규정했습니다. 노회찬은 당권파를 "지하 조직(RO)"이라고 반복해서 지칭했습니다.

유시민이 보여준 분열의 정치는 비단 통합진보당 해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쪼개놓은 진보 정치의 잔해 위에서 '정의당'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들고 청렴한 척했지만, 이내 정치적 단물이 빠지자 당원들을 뒤로한 채 '정계 은퇴'라는 무책임한 카드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문재인 정부의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며 조국 사태의 온갖 불법과 편법을 방어하는 스피커로 복귀했습니다. 과거 구치소에서 '영원한 양심'을 쓰던 청년은, 결국 진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실관계까지 비트는 노련한 권력의 호위무사로 늙어버린 것입니다.
5. 친문 세력의 세 축과 그 실상
또다시 언급합니다. 친문 세력은 크게 세 축으로 나뉩니다. 이 세 축은 문재인 정부 시절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비판 속에서 권력을 독점했고, 지금은 이재명 정부 아래에서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첫째 축: 청와대-내각-공공기관 고위직 그룹
이 그룹은 문재인 정부 시절 실제 권력의 핵심을 쥐고 있었던 인물들입니다. 주지하듯, 소위 "3철"로 불리는 임종석(초대 대통령비서실장, 참여정부 민정수석), 양정철(홍보기획비서관, 대선 캠프 핵심), 이호철(참여정부 민정수석, 문재인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여기에 조국(민정수석→법무부 장관), 장하성(정책실장), 김수현(사회수석·정책실장), 정의용(국가안보실장), 노영민(후임 비서실장), 윤건영, 한병도, 송인배 등이 포함됩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 수석 이상의 73%를 차지하며 "캠코더" 논란의 정점을 찍었습니다.
이 그룹은 임기 말에는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로 이어졌습니다. 국민의힘 조사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52개 기관 59명(기관장급 13명 포함)이 임기 말에 집중 배치됐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종호(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전 청와대 민정수석), 김제남(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전 시민사회수석), 정기환(한국마사회 회장, 정책기획위원 출신) 등이 지목됐습니다. 이들은 2024~2025년까지 임기가 보장된 "빼박(빼도 박도 못할)" 인사들로, 새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못'을 박아놓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둘째 축: 국회의원/싱크탱크 그룹 (민주주의 4.0)
2020년 11월 22일, 친문계 현역 의원 56명이 주축이 되어 민주주의 4.0 연구원이라는 싱크탱크를 창립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2.0" 정신을 계승해 "4기 민주정부" 출범을 위한 정책 연구를 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내부에서도 '친문 세력화', '권력 독점'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창립 당시 참여 의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4선: 홍영표, 윤호중
3선: 도종환(초대 이사장), 이광재, 전해철, 서영교, 민홍철, 김경협, 이학영
재선: 강병원, 권칠승, 김병기, 김영호, 김종민, 김승남, 김철민, 김정호, 맹성규, 박재호, 박정, 박주민, 박찬대, 서삼석, 송기헌(현 이사장), 신동근, 어기구, 최인호, 한병도, 황희
초선(청와대 출신 다수): 강득구, 강준현, 고영인, 고민정, 김병주, 김민철, 김승원, 김용민, 김영배, 민형배, 박상혁, 신영대, 신현영, 오기형, 이용선, 이용우, 이원택, 임호선, 장철민, 전용기, 정태호, 최종윤, 한준호, 허영, 홍정민
현재(2026년) 이사회는 송기헌(이사장)을 중심으로 강병원, 김종민, 박주민, 이광재, 전해철, 정태호, 최인호, 최종윤, 황희가 이사로, 김병기, 김영배가 감사로 활동 중.
이 그룹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유산을 계승하고, 차기 정권에서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핵심 조직입니다.. 민주당 내부에서 이들은 "친문 핵심"으로 분류되며, 이재명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독자적 노선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이건 수구보수들 의견만은 아닙니다.)
셋째 축: 미디어-여론 스피커 그룹
이 그룹은 직접적인 공직을 맡지 않으면서도, 방송과 유튜브, 팟캐스트를 통해 친문 정책과 인물을 대중적으로 방어/옹호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김어준 등 코메디언들은 2011년경부터 문재인을 강력하게 푸시해온 대표적 친문 스피커입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기 "충정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막강한 여론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문재인 본인도 그의 방송에 출연하고, 콘서트에 함께 등장하며 "형님-동생" 관계를 과시했습니다. 그의 처남 인태연이 청와대 자영업비서관을 맡으면서 "간접 영향력" 논란도 있었습니다.
유시민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알릴레오"(무엇을 알릴까요?)를 통해 친문 정책을 방어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그는 통합진보당 분열 과정에서 "분열 선수" 역할을 했고, "미국 51번째 주" 발언으로 리버럴(이게 욕인 걸 아세요)의 민낯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김진애(전 국회의원,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며 강성 친문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당선 직후 일부 친문 네티즌들이 "김의겸(전 청와대 대변인)에게 자리를 물려주라"며 사퇴 운동을 벌일 정도로 그녀의 친문 성향은 강력했습니다.
탁현민(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공연기획자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의 "이미지 정치"를 총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콘서트, 행사 연출을 담당하며 ‘문화 대통령’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습니다.
김의겸(전 청와대 대변인)은 공식 브리핑과 미디어 대응을 통해 친문 정책 방어의 최전선에 섰습니다. 이후 열린민주당 활동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역임했습니다.
6. 리버럴의 민낯: "미국 51번째 주"
2015년 7월경, 유시민은 서울대신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우리 국민 다수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에 찬성한다면, 그것이 민주주의다. 다수결 원칙에 따라 그렇게 해야 한다.
이 한마디는 그의 리버럴리즘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를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다수결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 존재한다는 것, 식민지가 된 조선을 다수결로 다시 주권 국가로 되돌릴 수 없었다는 사실, 일제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역사적 경험을 그는 완전히 외면한 것입니다. 자주파와 민족주의 진영은 이 발언을 "친미/굴종적 리버럴의 본질", "국가 주권과 민족 자주성을 다수결로 팔아넘기는 위험한 생각"으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발언이 더욱 의미심장한 이유는, 같은 서울대 동문들 사이에서 이 발언이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서울대 동문들끼리 맞장구" 치는 폐쇄적 학연 카르텔의 단면이 여기서도 드러났습니다.
7. 경제학 전공자의 무식: 암호화폐를 둘러싼 일련의 망언들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유시민은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이어진 이른바 "가상화폐 광풍" 당시, 자신의 전공 지식을 내세우며 암호화폐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경제학적 통찰이라기보다는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전형적 무식의 형태를 띠고 있었고, 이후 비트코인의 가치가 폭등하며 그는 끊임없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2017년 12월, 유시민은 JTBC <썰전>에 출연해 당시 1만 달러를 돌파하며 열풍을 일으키던 비트코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바다이야기(사행성 게임)처럼 도박과 같다. 도박의 모든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진짜 손대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그는 "화폐의 기본적인 조건은 '가치의 안정성'이다. 가치가 요동을 치면 화폐로서의 기능을 잃게 된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외생적 화폐론"의 시각이었습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정부가 보증하는 법정화폐만이 진정한 화폐라는 시각은 주류 경제학의 오랜 패러다임이었지만, 암호화폐가 제시하는 탈중앙화된 가치 저장 수단이라는 가능성 자체를 무시하는 발상입니다.
같은 달, 유시민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고등학생들까지 자기 돈을 넣고 있다. 거품이 딱 꺼지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사려들 것"이라며 "다 허황된 신기루를 좇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 사기꾼이 여기에 다 모여있다"며 정부와 지식인들이 나서서 투자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KAIST 교수이자 뇌과학자 정재승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유시민 선생님이 (발언의 수위가 센 데 비해) 블록체인이 어떻게 전 세계 경제시스템에 적용되고 스스로 진화할지 잘 모르시는 것 같다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는 당연히 부적절하지만 그 거품이 꺼지고 올바른 방식으로 진정되는 경험을 우리 사회가 가져야지, 정부가 거래소를 폐쇄하는 방식은 최악의 문제 해결 방법.
가장 치열한 논쟁은 1월 18일 JTBC <뉴스룸>의 "가상화폐, 신세계인가 신기루인가" 긴급토론에서 벌어졌습니다. 패널로는 유시민, 정재승 교수, 한호현 경희대 교수, 김진화 한국 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가 참여했습니다.
이날 토론에서 유시민은 "비트코인은 화폐가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프레임을 고정시켰습니다. 이에 김진화 대표는 "그게 왜 되어야 하죠?" 라고 반문하며 "비트코인 진영에서는 이것이 금, 화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적 없다. 법무부가 그렇게 오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유시민의 토론 방식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습니다. 한 사용자는 유시민이 세 가지 전략으로 토론을 주도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첫째, 오직 비트코인만 한정해서 이더리움이나 리플 등 다른 암호화폐는 "잘 모르겠다"며 배제했다.
둘째, "비트코인은 화폐다"라는 프레임만으로 진행했다.
셋째, 블록체인이 먼저고 비트코인은 여기서 파생된 부가물이라는 프레임을 짰다는 것.
이 분석에 따르면, 사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백서 제목은 "Block chain : Peer to Peer ledger"가 아니라 "Bitcoin : Peer to Peer coin"입니다. 비트코인이 메인이었고 블록체인은 비트코인을 돌아가게 만드는 기술에 불과했습니다. 유시민은 이 선후관계를 뒤바꿈으로써 비트코인을 "홍보용 장난감"으로 격하시킬 수 있었습니다. 블록체인의 확장성을 크게 넓힌 이더리움의 등장으로 인해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중요도를 뒤바꾼 유시민의 주장은 엄밀히 말해 "왕과 신하를 착각한 오류"였습니다.
8. 2018년 1월 30일: "인류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우아한 사기사건"
유시민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더욱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가상화폐를 "인류역사상 가장 난해하고 우아한 사기사건"으로 규정했습니다. 또한 "타짜(채굴업자 등)들이 다 판을 조작하는데, 순진한 도박에 끌린 사람들이 판돈을 넣고 있다"며 비트코인이 2100만 개만 발행 가능하도록 설계된 점에 대해서도 "그 전에 채굴 비용의 증가 등 때문에 데드크로스가 일어나면서 다운될 가능성이 99.999%"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실체적인 가치가 제로인데 가격을 지탱하기 위해서 무한히 투자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 이 시스템을 돌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비판할 자격 있다?
유시민은 자신의 무지를 지적하는 비판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어도 비판할 자격이 있다"는 논리로 일관했습니다. 앞서 '썰전'에서 박형준 교수가 "가상화폐 전문가가 아니시니까"라고 말하자, 유시민은 "꼭 전문가이고 꼭 다 알아야지만 비판할 자격이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를 분석할 때 우리가 꼭 식물학을 알아야 하냐"며 "비트코인을 둘러싸고 벌어진 투기 광풍을 분석하는데 블록체인 기술을 알아야 하냐"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아는 척하기(유시민의 주특기)의 변명입니다. 튤립 투기와 달리 암호화폐는 그 자체로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내장하고 있었고, 화폐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이를 이해하려면 최소한 블록체인 기술이 무엇인지, 왜 "탈중앙화"가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는지에 대한 기초적 이해가 필요했습니다. 유시민은 자신이 "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석사"로서의 권위만 내세운 채, 정작 시대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는 읽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2021년 2월, 비트코인 가격이 5만 달러를 돌파하자 유시민의 발언은 다시금 조명받았습니다. 머니투데이는 "유시민 말 안 듣고 비트코인을 샀으면 부자가 됐을 것"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농담 섞인 반응들을 전했습니다.
여권 관계자들의 증언도 흥미롭습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유 이사장이 발 벗고 나서서 정권에 부담이 되던 '가상화폐 광풍'을 잠재우는데 일조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에 부담을 덜어주려고 일부러 '센' 발언을 했던 것 아닌가"라며 "총대를 메고 광풍 분위기를 다운시키려고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2024년 11월, 비트코인은 국내 거래소에서 1억 3천만 원을 돌파했습니다. 유시민의 "99.999% 다운될 가능성"은 현실이 되지 않았고, "사기"라고 규정한 자산은 세계적인 투자 자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의 발언은 경제학 전공자로서의 무지를 여실히 드러낸 굴욕의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9. 문빠: 친문의 "온라인 칼날"
주지하듯, 세 축의 외곽에는 문빠(또는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 "문파")라는 온라인 극성 지지층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2016~20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무렵 본격화된 문재인 전 대통령의 극단적/열성적 온라인 지지층으로, 처음에는 일베저장소 등 보수 커뮤니티에서 비하 용도로 만들어진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어처구니 없게도 스스로를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벌꿀오소리처럼 공격적으로 문재인을 지킨다는 의미)로 부르며 긍정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문빠의 특징은 무조건적 지지와 공격적 활동입니다. "잘 되면 문재인 덕, 잘못 되면 나머지 탓"이라는 프레임, "머리가 깨져도 문재인"(대깨문)이라는 자조적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반문(反文) 인사나 정책 비판자에 대해서는 문자폭탄, 좌표 찍기, 인신공격, 집단 항의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문(非文)·온건 친문 의원(예: 금태섭 등)이 비판받을 때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젠틀재인, 문팬, 문사모, 노란우체통 등의 팬카페를 활동 거점으로 삼았으며, 회원 수는 합산 8만 명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공식 조직이 아니라 자발적/분산된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누가 문빠인가"라는 명단을 확정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문빠는 미디어 스피커들(김어준, 유시민 등)의 콘텐츠를 확산하며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특히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문빠의 "본진"이나 다름없는 구심점이었습니다. 친문 세력은 이 문빠를 "온라인 칼날"로 활용해 정치적 반대 세력을 압박하고, 당내 경쟁자들을 길들이는 데 이용해왔습니다.

9. 저열함의 연속성: 유시민 발언록
한국 언론은 유시민의 저열한 발언에 대해 유독 관대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관대하다기보다 "그의 발언 자체를 논란거리로 만들지 않는" 묵인에 가깝습니다. 그가 내뱉는 말이 아무리 상식을 벗어나도, 아무리 논리적 오류로 가득 차도, "그래도 유시민"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방어되거나, "그냥 말실수"로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의 발언과 저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일관된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의 청년" 프레임: 이재명 아들 도박/여성혐오 논란 두둔
2021년 12월, 제20대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의 아들이 인터넷에 남긴 글들이 논란이 됐습니다. 불법 도박 후기, 그리고 여성 아이돌 가수에 대한 극단적 여성혐오 표현(구체적으로 "여성의 성기에 젓가락을 꽂고 싶다"는 수준)이 문제가 됐습니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KBS "정치합시다2"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통의 청년이라면 그냥 넘어갈 문제다. 아버지가 대통령 후보라서 지금 어마어마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저열한 전원책마저 "혀를 끌끌 차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야 할 정도의 사건"이라며 언성을 높였지만, 유시민은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고 아직 아닌 것도 있는데 이러시면 토론이 어렵다"며 오히려 상대방을 토론 파괴자로 몰았습니다.
이 발언이 저열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불법 도박과 여성혐오적 폭력성은 "보통의 청년"이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그가 "보통의 청년"을 얼마나 낮게 보는지, 아니면 그가 속한 집단의 "보통"이 이미 이 수준인지를 드러냅니다.
둘째, "사실로 드러난 것도 있고 아직 아닌 것도 있다"는 변명은 이미 공개된 게시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희석하려는 태도입니다. 당사자 본인이 사과문을 발표한 사안에 대해, 그는 끝까지 "선량한 청년이 정치적으로 희생됐다"는 프레임을 고수했습니다.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권인숙도 같은 방송에서 "그런 식의 발언들은 저희가 너무 많이 경험해서 굉장히 안타깝지만 평범하다. 그래서 그것이 개인의 의식 등을 평가하고 대응할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 함께 비판받았습니다. 이 "평범하다"는 프레임은 유시민의 "보통의 청년"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여성혐오와 불법 도박이 "평범"하고 "보통"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가 더 나빴습니다.
"재래 언론" 프레임: 비판을 차단하는 마법의 주문
유시민이 최근 들어 가장 자주 사용하는 프레임이 "재래 언론"입니다. 2026년 3월, 그는 "ABC론"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지자 '매불쇼'(이 인터넷 방송은 결국 이재명의 이미지를 추락시킬 것입니다.)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어떤 분은 무죄받고 정치로 복귀했는데 막 "조중동"을 포함해 재래 언론에서 단독 인터뷰로 어마어마하게 띄우고 있다. 조심해야 된다. 그 사람들(언론인들)이 감별을 엄청 잘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해가 될 사람을 띄운다. 저는 판독기라고 본다.
그는 또한 "재래 언론에서 칭찬받는다는 건 되게 위험한 일"이라며, 언론이 특정 정치인을 "띄우는" 것은 그가 민주당에 "해가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발언이 저열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는 언론의 비판을 "의도"의 문제로 치환합니다. 특정 정치인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의 정책이나 행적 때문이 아니라, 언론이 "악의적으로" 그를 띄우기 때문이라는 식의 해석입니다. 이는 사실관계에 대한 논의를 차단하고, 모든 비판을 "적대 세력의 공작"으로 몰아가는 마법의 주문입니다.
문제는 그가 이 "재래 언론" 프레임을 사용할 때 자신이 출연하는 방송(매불쇼, 알릴레오 등)은 "재래 언론"의 범주에서 제외한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출연하는 유튜브는 "진실을 말하는 언론"이고, 자신을 비판하는 모든 매체는 "적대적 재래 언론"이 되는 이중구조입니다.
10. '국가란 무엇인가'의 지적 빈곤

유시민의 저작에 대한 비판은 오래되었습니다. 2017년, 한 독자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적 독후감을 남겼습니다.
내가 아는 한에서만 말할 때, 그가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스미스, 루소 등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 중 상당수는 오늘날 정치사상사의 논의를 참조한 독자들에겐 이미 논파된 지 반 세기 가까운 과거의 편견에 가깝다.
이 비판의 핵심은 유시민의 서구 정치사상 이해가 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독자는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홉스를 "국가주의=전제정의 옹호자"로, 마키아벨리를 "전제군주를 위한 매뉴얼 작성자"로, 로크를 "그저 자유주의+법치주의자"로, 스미스를 "자유로운 시장경제의 옹호자"로 설명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이 책이 2011년 초판, 2017년 개정판이 나왔음에도 당시 학계의 논의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독자의 말대로, 이 책은 "연구사는 고사하고 로크의 1차 문헌을 직접 읽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였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책이 "대중교양서"라는 명목으로 서구 정치사상의 복잡성과 논쟁사를 생략하고, 결국 "중도와 진보가 연합하여 보수를 제압하고 정치적 권력을 획득해야 한다"는 정처없는 결론으로 수렴된다는 점입니다. 400쪽이 넘는 분량으로 서구 정치사상을 훑고 나온 결론이 "범진보 연합"이라는 정치적 구호라는 것은, 이 책이 지적 탐구가 아닌 정치적 선전을 위한 도구였음을 방증합니다.
<나의 한국현대사>의 선택적 시각

2014년 출간된 '나의 한국현대사'는 상대적으로 호평을 받은 책입니다. 독자는 이 책에서 4/19와 5/16에 대해 "둘 모두 일정한 성공을 이루었다"고 평가했고,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긍정적 평가를 내렸습니다.
이는 보수 진영이 기대하는 발언이고, 진보 진영이 불편해하는 발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균형 잡힌 시각"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거사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의 친일 가계에 대해서는 "연좌제 금지"를 내세우며 일축했고, 자신이 연루된 1984년 "프락치 고문 사건"에 대해서는 항소이유서에서 "양심의 문제"로 승화시켰습니다. "보편적 역사 인식"을 이야기할 때는 냉정한 평가자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는 "시대의 과실"로 방어하는 이중성이 일관되게 드러납니다.
"정치 비평 은퇴"와 "복귀"의 장난스런 반복: 진정성 없는 수사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은 "범진보(참으로 유치찬란한 명명입니다.) 180석"을 예측했다가 논란이 되자 정치 비평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당시 민주당 인사들은 그를 향해 응원 메시지를 쏟아냈습니다. 김두관 의원은 "보수 언론이 집중적으로 왜곡 보도하면서 생긴 문제"라고 했고, 박수현 후보는 "낙선은 오로지 제 부족함 때문"이라며 그를 감쌌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치 비평 은퇴"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알릴레오, 매불쇼 등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냈고, 2026년 현재 "ABC론"을 둘러싼 논란의 정중앙에 서 있습니다.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는 이 패턴은, 그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불리해질 때마다 "은퇴"라는 퍼포먼스로 책임을 회피하고, 상황이 유리해지면 다시 "복귀"하는 진정성 없는 수사에 가깝습니다.
예측 : 이재명 정부를 향한 친문의 칼날
2026년 6/3 지방선거가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끝나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도 1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친문 세력의 준동이 다시 시작되고 있습니다.
ABC론과 송영길 발언
유시민이 제기한 이른바 "ABC론"(A는 진보 지지층, B는 중도층, C는 이재명 지지층)은 친문과 친명의 갈등을 재점화하는 도화선이 됐습니다. 이는 "진짜 진보"(A :친문 지지층)와 "외부 유입 세력"(C : 친명 지지층)을 구분하는 분열 논리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송영길 전 대표가 "친문이 이재명 낙선을 바랐다"고 발언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됐습니다. 친문 측은 이 발언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친문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것"이라고 반격했습니다. 양측의 신경전은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친문의 종특: 갈라치기 전략
친문 세력은 지금, 이재명 정부를 향해 다음과 같은 "갈라치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진짜 진보" vs "외부 유입 세력" 프레임입니다. 이는 ABC론에서 이미 드러난 바와 같습니다. 친문 스스로를 "진정한 민주 세력"으로 규정하고, 이재명 지지층(친명)을 "정치적 기회주의자"나 "외부에서 유입된 세력"으로 몰아가는 방식입니다. 이는 민주당 내부에서 "우리가 진짜 주인"이라는 심리적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입니다.
둘째, "노무현-문재인 유산 계승자" 프레임입니다. 친문은 스스로를 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정통성"을 가진 세력으로 규정합니다. 이 프레임을 통해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 "진보의 정통성"에서 벗어나 있다고 비판할 명분을 확보하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4.0 연구원의 활동이 바로 이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셋째,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의 "친문 후보 밀어주기". 친문 세력은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후보를 집중 지원하고, 친명 성향의 후보에 대해서는 "비문 횡사(非文 橫死: 비문계가 횡사한다는 뜻의 은어)"라는 프레임을 적용해 공격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친문 독식’ 논란을 겪은 바 있는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입니다.
문빠의 "온라인 투쟁" 재현
이러한 갈라치기 전략과 함께, 친문 세력의 외곽 조직인 문빠의 "온라인 투쟁"도 다시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빠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첫째, 'ABC론'에 대한 집단적 방어 및 확산. 유시민이 제기한 프레임을 문빠는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증폭시킬 것입니다. "A(친문 핵심 지지층)가 진짜 진보"라는 논리를 반복적으로 유포하며, 친명 지지층을 '정치 문외한' 또는 '이재명 개인 숭배자'로 몰아가는 댓글 전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친문 성향의 유튜브 채널 댓글창에서는 "C는 민주당이 아니다", "C는 이재명의 사병"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둘째, '송영길 발언'을 활용한 역공. 송영길 전 대표의 "친문이 이재명 낙선을 바랐다"는 발언에 대해, 문빠는 '배신자 프레임'으로 맞받을 것입니다. 즉, "친문을 비판하는 것이 곧 노무현-문재인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도식으로 댓글을 조직화하고, 송영길과 같은 '비문(非文)' 인사들에 대한 집중 비난전을 펼칠 것입니다. 과거 금태섭, 표창원 등 비문계 의원들이 '대깨문'의 공격으로 고전했던 패턴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셋째, 지방선거 후보들에 대한 '프락치 의혹' 제기. 친문 스피커들과 문빠는 친명 성향의 후보들에게 '일베-디시-클리앙 등 특정 커뮤니티 출신', '새누리당 출신', '경제 관료 출신' 등의 낙인을 찍으며 '가짜 진보' 프레임을 씌울 것입니다. 이는 대학 시절부터 통합진보당 시절 '프락치 수사'로 당내 경쟁자를 제거했던 유시민의 '과거 기술'이 지방선거 무대에서 재연되는 셈입니다.
넷째, '조중동 재래 언론' 프레임으로 언론 통제 시도. 유시민이 이미 시도한 이 프레임을 문빠가 확산할 것입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이나 친명 인사에 대한 부정적 보도가 나올 때마다 "재래 언론이 이재명 정부를 무너뜨리려 한다", "조중동이 친명 후보를 띄운다"는 식의 댓글 여론전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는 비판적 보도 자체를 '적대 세력의 공작'으로 규정하는 마법의 주문으로, 사실 검증보다는 감정적 결집을 유도합니다.
이재명 정부의 대응: '손실 최소화' 전략의 한계
이런 친문-문빠의 '갈라치기' 공세 앞에서 이재명 정부는 전형적인 '손실 최소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큽니다. 즉, 공개적 충돌을 피하면서 친문 인사들을 요직에서 서서히 배제하고, 자신의 인사권을 강화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분명한 한계를 지닙니다.
첫째, 친문 세력은 이미 공공기관과 민주당 내부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은 상태입니다. '빼박 인사'들이 2024~2025년까지 임기가 보장되어 있어,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내내 이들과 '공생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둘째, 유시민-김어준으로 대표되는 미디어 스피커 그룹은 여전히 막강한 여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재래 언론' 프레임을 동원해 이재명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때마다, 정부는 '진보 내전'이라는 프레임을 피하기 쉽지 않습니다.
셋째, 문빠의 '온라인 칼날'은 당내 경선에서 친명 후보들에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미 2022년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를 지지했던 젊은 당원들이 '친문 당원'들로부터 '이재명 사병', '친일파 후손' 등의 공격을 받았던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친문이라는 한국 정치의 '징크스'
글의 서두에서 우리는 유시민이라는 한 인물의 궤적이 한국 정치의 그늘을 드러낸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그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유시민의 삶은 '신식민지 엘리트'의 전형입니다. 식민지 교육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학연 네트워크로 진보 정당에 입문하고, '운동권'이라는 허구적 훈장을 두른 채, 자신의 과거는 '연좌제 금지'와 '양심의 문제'로 방어하면서 타인의 과거는 '종북몰이'로 단죄합니다. 그는 통합진보당을 분열시켰고, 자신의 무지를 '전문가 아니어도 비판할 자격 있다'는 논리로 포장했으며, '미국 51번째 주'라는 망언으로 자주성보다 다수결을 앞세우는 리버럴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ABC론'과 '재래 언론' 프레임으로 이재명 정부를 향해 '분열의 칼날'을 겨누고 있습니다. 그의 뒤에는 민주주의 4.0 연구원이라는 제도권 조직, 김어준·김진애·탁현민이라는 미디어 스피커, 그리고 '대깨문'이라 자처하는 온라인 군단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것이 친문 세력의 실상입니다. 그들은 '진보'를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는 혈연/학연/지연으로 똘똘 뭉친 '집단 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민주화'를 외치지만, 당내 경쟁자를 '프락치'로 몰아 제거하는 데 능숙합니다. 그들은 '개혁'을 주장하지만,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는 '시대 탓'으로 돌리며 최소한의 사과조차 하지 않습니다.
한국 정치가 진정한 진보를 이루려면, 이 '친문'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혈연/학연/지연에 기댄 '신식민지 엘리트'의 카르텔을 청산하고, 진정한 자주성과 민주적 절차에 기반한 정치를 재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유시민이라는 한 인물이 보여준 '분열-무도-저열'의 패턴은 앞으로도 한국 정치를 반복해서 휘저을 것입니다.
"저를 죽일 수는 있어도 로그 정보에 기록된 사실까지 지울 수는 없다" - 김인성 교수의 이 말은, 통합진보당의 부정을 넘어 친문 세력 전체에 대한 경고로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로그를 지우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는 것이, 이 그늘을 걷어내는 첫걸음이니까.

"역적인 반당 종파분자들을 파리 잡듯 박멸해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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