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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팁

대한미국의 "극우"

많은 분들이 태극기 부대와 혐중 시위 등에 나타나는 극우 세력에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돌아볼 기회로 삼길 바랍니다. 내 안의 극우 근성을 발견하세요.

 

우선, 극우라는 용어부터 살펴볼까요?

사전적인 의미에서 극우(極右)란 정치적 스펙트럼상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이념이나 운동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기존 사회 질서를 강하게 유지하거나 복원하려는 태도를 보이며, 변화나 진보적 가치를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한국 맥락에서 극우는 주로 반공주의, 권위주의, 북한 및 좌파에 대한 강한 적대감을 특징으로 하며, 종종 국가주의, 한미동맹 강조, 국가보안법 유지, 민주주의 비판 등이 결합됩니다. 물론 이것은 오래된 사전적인 정리일뿐입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해 비록 정확히 아는 바도 없고, 겪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강한 반공/반좌파입니다.  북한이나 좌파를 '국가의 (주)적'으로 간주하며, "종북"이나 "빨갱이" 같은 낙인을 사용합니다.(예: 한국의 태극기 집회, 전광훈 목사 주도 단체.)

 

불교도들이지만 빨갱이는 죽여도 된답니다.

 

 

그밖에 권위주의를 지지한다거나(강력한 리더십, 군사적 통제, 법질서 강조 등), 전통/국가주의/ 전통적 가치, 국가 중심 사고를 중시하며, 외국인/다문화에 적대적일 수 있지만, "극우"로 특징지어지는 전형이 아닙니다. 민족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좌파 등에서도 얼마든지 관찰되기 때문에 오직 한 가지, 즉 반공입니다.

 

한국 극우의 독특한 점은 유럽 극우(반이민, 백인우월주의)와 달리, 분단과 냉전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반공 정책, 국가보안법, 그리고 WACL 같은 국제 반공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아, 좌파를 "국가 반역자"로 낙인을 찍으며, 국가보안법은 이를 정당화하여, 오히려 극우는 "애국자"로 환각됩니다.
 
 
최근에는 뉴라이트, 태극기 부대, 일부 유튜버들이 '민주당=종북' 프레임을 통해 극우 이념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 자신을 애국자로 확신하겠죠?
 
 
 
 
 

세계반공연맹(WACL)과 반볼셰비키 국가연합(ABN):

 
 
냉전 시대의 어두운 네트워크와 한국 극우의 접점이 명백합니다. 세계반공연맹(World Anti-Communist League, WACL)과 반볼셰비키 국가연합(Anti-Bolshevik Bloc of Nations, ABN)은 냉전 시기 반공주의를 명분으로 파시스트, 전범, 마약 밀매자, 죽음의 부대 등 극우 세력을 결집시킨 국제 네트워크로, 한국의 소위 "극우" 세력과도 깊은 역사적·이데올로기적 접점을 형성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완전 무지합니다.
 
 
WACL은 1954년 한국전쟁 직후 아시아반공인민연맹(APACL)에서 시작되어 글로벌 조직으로 확장되었으며, ABN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야로슬라프 스텟스코(Yaroslav Stetsko)가 주도하며 나치 협력자들을 통합한 핵심 지부였습니다.
 
 
특히 한국은 APACL의 창설국으로서 WACL의 초기 기반을 제공하며, 반공주의를 국제화한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이 글은 WACL과 ABN의 역사, 구조, 주요 인물 및 사건을 정리하고, 한국 극우와의 접점을 역사적/현대적 맥락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WACL의 기원과 역사

 
 
WACL은 1966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설립된 국제 반공주의 조직으로, 1954년 한국전쟁 직후 대한민국 이승만 대통령, 중화민국의 장제스 총통, 필리핀의 엘피디오 키리노(Elpidio Quirino)가 주도한 APACL의 글로벌 확장 형태입니다. 냉전 초기 소련과 중국의 확장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CIA와 동맹국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으며 설립되었으며, 1966년 11월 7일 서울에서 열린 APACL 12차 회의에서 32개 조항의 헌장을 채택, "공산주의 타도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핵심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초기 회원국은 아시아, 유럽, 라틴아메리카 등 60개국 이상으로, 연례 총회를 통해 반공 전략을 조율했습니다.(현재의 한국 자유총연맹이 WACL의 후신입니다.)
 
이것이 반공의 본산입니다. 해맑죠?
 
 
 
 
 
 
1960-70년대에는 반공 선전과 직접적인 무장 지원 중심이었습니다.  베트남전과 라틴아메리카 독재 정권 지원에 집중했습니다. 한국은 조선민족청년단(1946년 설립) 같은 극우 단체를 통해 WACL의 심리전 훈련(대만 정치전 간부 아카데미)을 도입하며 반공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인터넷 상에 어디든 퍼져있는 대만의 극우(즉, 파시스트)와 한국 극우는 셋트처럼 움직입니다.

 

1980년대(레이건 시대)는 WACL의 황금기였습니다. 이란-콘트라 스캔들과 연계되어 니카라과 콘트라,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등 "자유 투사"(물론 테러리스트)를 지원했으나, 나치 잔당과 죽음의 부대 연루로 스캔들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은 박정희-전두환 정권 하에서 WACL 총회에 적극 참여하며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소련 붕괴 후 1990년 세계자유민주연맹(World League for Freedom and Democracy, WLFD)으로 이름을 변경하며 "민주화" 홍보로 재편되었으나, 과거 전범 연루로 영향력이 감소했습니다. WACL은 1986년 스콧 앤더슨(Scott Anderson)의 책 Inside the League에서 "테러리스트, 나치, 라틴아메리카 죽음의 부대가 침투한 조직"으로 폭로되었으며, 영국 지부 리더 제프리 스튜어트-스미스(Geoffrey Stewart-Smith)는 WACL을 "나치, 파시스트, 반유대주의자들의 집합체"로 비판하며 탈퇴했습니다.


 
 
 

WACL의 구조와 지역 지부

 
 
WACL은 명예 의장, 의장, 집행위원회, 사무국으로 구성된 집행 구조를 가지며, 8개 지역 조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각 지부는 현지 극우 세력을 동원해 반공 활동을 주도했으며, 한국은 APACL을 통해 아시아 지부의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이런 조직도는 한국 극우들에게 모델입니다.)
 
 
지역 지부주요 특징 및 인물활동 예시
아시아-태평양(APACL)
대만 KMT(장제스), 한국 박정희 정권, 일본 전범 료이치 사사카와(Ryoichi Sasakawa)·요시오 코다마(Yoshio Kodama), 문선명 통일교 주도.
한국전쟁 후 반공 연맹 형성. 사사카와와 코다마는 마약·무기 밀매 네트워크 활용. 문선명은 1970년 WACL 총회에 140만 달러 기부. 한국은 1950년대 '세계자유의 날'(1월 23일)을 WACL 선전으로 기념하며, 한국전쟁 포로 송환을 '반공 영웅'으로 미화.
북미(NARWACL/USCWF)
존 싱글로브(John Singlaub) 장군 주도. 1981년 대만 대출 2만 달러로 설립.
콘트라 무기 지원. 로저 피어슨(Roger Pearson, 나치 백인우월주의자)이 잠시 이끌었으나 극우 논란으로 추방.
유럽(ECWF)
유럽자유평의회. 이탈리아 네오파시스트 스테파노 델레 키아이(Stefano Delle Chiaie) 등.
글라디오(Gladio) 네트워크와 연계된 테러 지원.
라틴아메리카(CAL/FEDAL)
멕시코 테코스(Los Tecos, 나치 지지자 그룹) 주도. 오퍼레이션 콘도르와 직결.
1970년대 아르헨티나·칠레 독재 지원. 마리오 산도발 알라콘(Mario Sandoval Alarcon, 과테말라 MLN 지도자) 등 죽음의 부대 리더 참여. 1979년 아순시온 총회에서 "아르헨티나 솔루션"(대량 학살 정책) 채택.
아프리카(AOFD)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 지원. 짐바브웨·앙골라 반란군 무장.
RENAMO(모잠비크 반란군)에 5만 벌 제복 공급.
중동(MESC)
이스라엘 동맹국(아르헨티나·대만) 중심.
사우디 자금 유입.
ABN(동유럽)
야로슬라프 스텟스코 주도. 나치 협력자 통합.
우크라이나·동유럽 민족주의자 네트워크. 포로국가 주간 로비.
청년부(WYFL)
청년 극우 세력 훈련.
파라밀리터리 캠프 운영.
 
 
WACL은 CIA와 긴밀히 협력하여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니카라과 콘트라, 앙골라 반란군 등에 무기·자금 지원을 주도했으며, 한국은 이 과정에서 반공 선전과 훈련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
 
 
 
 
 

ABN의 역할과 야로슬라프 스텟스코

 
 
ABN은 1946년 야로슬라프 스텟스코가 MI6(영국 정보국) 지시로 설립한 동유럽 반공 네트워크로, WACL의 핵심 지부입니다. 헝가리 화살십자, 루마니아 철위대, 크로아티아 우스타셰 등 나치 협력자들을 통합하며 "소련 분열"을 목표로 했습니다. 스텟스코는 1941년 OUN/B(반데라 파) 지도자로 나치와 협력해 리비우 포그롬(7,000명 유대인 학살)을 주도한 전범으로, 전후 뮌헨에서 ABN 본부를 운영했습니다.

 

 

ABN은 1943년 OUN 주도의 지하 회의에서 시작되어 35개 민족(우크라이나, 발트, 코사크 등)을 대표했습니다. 1986년 스텟슨코 사망 후 그의 아내 슬라바 스텟슨코(Slava Stetsko)가 계승했으며, 1996년 소련 붕괴로 ABN이 해산된 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회의(KUN)로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1959년 미국 의회에서 포로국가 주간(Captive Nations Week)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WACL 총회에서 동유럽 반란군 지원을 조율했습니다. 스텟슨코는 "유대-볼셰비키 음모"를 주장하며 반유대주의를 유지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지부(CAL)와 오퍼레이션 콘도르

 
 
라틴아메리카 지부(CAL, 라틴아메리카 반공연맹)는 1970년대 멕시코 과달라하라 자율대학의 테코스(Los Tecos, 나치 지지자 그룹)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테코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멕시코 파시스트 조직으로, 반유대·반공 선전을 주도했습니다. CAL은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파라과이, 브라질의 군사 독재를 연결하며, 오퍼레이션 콘도르(Operation Condor)의 핵심 네트워크가 되었습니다.
 
 
이 콘도르 계획은 1975년 칠레에서 시작된 다국적 테러 작전으로, WACL/CAL이 정보 공유와 공동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최소 5만 명 이상이 사망 및 실종되었으며(아르헨티나 3만 명 포함), CIA 지원 하에 유럽/미국 내 망명자를 암살했습니다(예: 1976년 오를란도 레텔리에 차량 폭탄 테러). 1980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총회에서 "아르헨티나 솔루션"(대량 고문·학살)을 확산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요 인물로는 라임운도 게레로(Raimundo Guerrero, 테코스 리더), 로베르토 다우비손(Roberto D’Aubuisson, 엘살바도르 죽음의 부대 창설자, "블로토치 밥" 별명)이 있었습니다.
 
 
 
 
 

존 싱글로브와 레이건 시대 WACL

 
 
존 싱글로브(John Singlaub, 1921-2022)는 OSS/CIA 출신으로, 1981년 WACL 미국 지부(USCWF)를 설립했습니다. 베트남전에서 피닉스 프로그램(베트콩 암살 8만 명)을 주도한 후, 1977년 카터 대통령의 한국 주둔군 철수 비판으로 퇴역했습니다. 레이건 캠페인에서 콘트라와 반란군 자금 모금을 주도하며 WACL의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싱글로브는 이란-콘트라를 연계했습니다. 1984년 레이건 지시로 올리버 노스(Oliver North)와 협력해 WACL을 통해 콘트라에 2,000-3,000만 달러 규모의 무기·보급품을 지원했습니다. 싱글로브의 비영리 단체는 백악관 은폐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1985년 댈러스 총회에서는 콘트라와 무자헤딘이 공동 무대에 등장했으며, 슬라바 스텟스코가 참석했습니다. (이것이 자유세계의 민낯입니다.)
 
 
스텟스코-커크패트릭도 연결했습니다. 1983년 싱글로브는 스텟스코 부부를 백악관으로 초대해 레이건 대통령, 부시 부통령, 유엔 대사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과 회동하게 했습니다. 레이건은 "너희 투쟁은 우리의 투쟁"이라며 ABN의 반공 운동을 지지했으며, 이는 레이건의 "롤백(rollback)" 정책(공산주의 타도)을 상징했습니다. 1987년 이란-콘트라 폭로로 WACL은 타격을 입었으며, 싱글로브는 입으로는 "나치 청소"를 주장했으나 ABN 등 극우 나치 세력 유지에 공로가 매우 큽니다.
 
 
 
 
 
 

한국 극우와 WACL

 
 
한국의 극우는 유럽식 민족주의나 반이민 포퓰리즘(예: 프랑스 국민연합)과 달리, 냉전 시대 반공주의와 군사 독재 유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는 1945년 해방 이후 '적색 테러'와 매카시즘적 공포가 소련-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사회를 통제한 결과로, WACL은 한국 극우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제화하는 핵심 고리였습니다.
 
 
APACL 설립 (1954년): WACL의 전신인 APACL은 한국전쟁 임시 수도 진해에서 이승만 대통령(칭호 붙이는데 힘이듭니다.)의 주도로 창설되었습니다. CIA 지원을 받아 '반공 자유진영' 결속을 명분으로 했으며, 한국은 초기 총회를 주최하며 반공 선전과 무장 지원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국가보안법(1948년 제정)과 연계되어 정치 반대파를 '종북·빨갱이'로 낙인찍는 데 지금까지도 활용됩니다.
 
 
 
 한국 내 반공 단체: WACL은 조선민족청년단(1946년 설립) 같은 극우 청년 단체와 연계되어 '반공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이 단체들은 파시즘적 요소(권위주의, 반공 폭력)를 띠며, 대만의 정치전 간부 아카데미에서 제공된 WACL 심리전 훈련을 도입했습니다. 1950년대 '세계자유의 날'(1월 23일)은 WACL 선전으로 기념되었으며, 한국전쟁 포로 송환(중국 대신 대만)을 '반공 영웅'으로 미화했습니다.
 
끔찍합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1960-80년대 한국 극우는 WACL의 아시아 지부(APACL)를 통해 대만, 필리핀, 일본의 독재 정권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특히 문선명 통일교는 1970년 WACL 총회에 140만 달러를 기부하며 한국 극우와 WACL의 연결고리를 강화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삼청교육대 같은 반공 폭력을 정당화하며 WACL의 '제3의 길(Third Way, 누구 생각나시는지요?)' 이데올로기를 수용했습니다.
 
 
 
한국 극우는 '글로벌 극우'와 달리 반공-분단 중심으로, WACL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부화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극우는 민족주의보다는 '반공주의'가 핵심이며, 북한과 좌파를 죽여도 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주요 접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 극우 세력/특징WACL과의 구체적 접점예시/영향
반공 청년·민족 단체 (e.g., 조선민족청년단, 대동청년회)
WACL의 APACL 훈련 프로그램 참여. 반공 '제3의 길' 이데올로기 도입.
1940-50년대 이승만 정권 하에서 WACL 선전 활용, 반공 폭력(삼청교육대) 정당화.
기독교 우파 및 뉴라이트
WACL의 미국 지부(USCWF)와 연계된 반공 기독교 네트워크. 문선명 통일교(WACL 후원자) 영향.
1980년대 노태우·전두환 정권 시기 WACL 총회 참석, 반공 '자유민주주의' 강조.
극우 정당 (e.g., 우리공화당, 자유통일당)
WACL의 '포로국가 운동' 유산 계승. 반공·한미동맹 강조.
2020년대 윤석열 지지 세력, WACL 스타일 '반국가 세력' 낙인(종북·빨갱이).
현대 극우 운동 (e.g., 태극기 부대, 백골단)
WACL의 글로벌 네트워크(미국 극우·CPAC)와 온라인 연결. 반공 음모론(중국 공산당 침투).
2024년 계엄 사태 시 '반공 쿠데타' 옹호, WACL 유산인 '자유 투사' 프레임 사용.
 
 
 
뉴 라이트를 아셔야합니다.  2000년대 '자유시장·반공' 이념을 내세운 뉴 라이트는 WACL의 경제 자유주의를 계승하며, 일본 극우(닛폰 카이기도)와의 연결과 역사 왜곡(식민지 긍정)으로 비판받았습니다. 이는 WACL의 아시아 지부(대만·한국·일본 동맹) 유산을 반영합니다.
 
 
 
2020년대 극우와 WACL 유산 : 소련 붕괴 후 WACL은 WLFD로 재편되었으나, 한국 극우는 WACL의 반공 음모론을 유지합니다. 2024년 윤석열의 계엄령 선언은 WACL 스타일 '반국가 세력(좌파·북한 동조자) 타도'를 연상시킵니다.
 
 
극우 세력 부상: 태극기 집회(2016년~), 전광훈 목사 주도의 기독교 우파, 윤석열 지지 유튜버들은 WACL의 '반공 자유주의'를 빌려 '민주당=종북' 프레임을 사용합니다. 2025년 설문에서 극우 지지자는 한미동맹 강화, 국가보안법 유지, 민주주의 비판을 보였습니다.
 
 
 
글로벌 연결: 한국 극우는 미국 CPAC(보수 정치 액션 컨퍼런스)에 참가하며 트럼프 지지자 및 극우 기독교와 연대합니다. 이는 WACL의 미국 지부(존 싱글라브 주도)와 유사한 네트워크입니다. '백골단' 같은 신규 파시스트 그룹은 WACL의 과거 무장 지원(콘트라 등)을 연상시키는 폭력을 위협합니다.
 
 
 
 

 

너 극우지?

 
 
WACL은 냉전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며, 반공 명분 아래 마약, 테러, 학살 네트워크를 키웠습니다. ABN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뿌리로, 나치 협력자들을 통합해 소련 붕괴에 기여했으며, 오늘날에도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한국 극우는 WACL의 APACL 창설국으로서 반공주의를 국제화한 '씨앗'을 제공했으며, 이는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반공주의로 이어졌습니다.
 
 
현대 한국 극우는 태극기 집회, 기독교 우파, 뉴라이트를 통해 WACL의 '반공 프레임(종북·빨갱이 낙인)'을 계승하며, 2024년 계엄 사태와 같은 정치 불안정을 증폭시킬 잠재력을 보입니다. 이는 유럽 극우(반이민 중심)와 달리 분단과 냉전 유산에 뿌리박힌 한국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당신이 반공주의자라면 극우입니다. 네, 파시스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