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릅니다.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명분과 이란 정부가 주장하는 내용은 정반대입니다. 하나씩 나누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ㅡ 미국의 명목상 이유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이유)
미국 정부가 이 전쟁을 시작한 공식적인 명분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미국의 주장)
첫째, 핵무기 위협입니다. 미국은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를 장착한 이란 정권은 중동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에게도 견딜 수 없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이란이 핵무기를 가지면, 북한의 김정은처럼 어떤 미국 대통령도 강제로 굴복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하노이에서 북한과의 협상이 실패한 경험을 했고, 그 교훈을 이란에 적용한 것입니다.
둘째, 임박한 위협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미국군을 곧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렇게 되면 이란이 미군을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면서 "우리가 선제공격을 하지 않았다면 미군 사상자가 훨씬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이 '임박한 위협' 증거는 매우 부실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 상원의원 팀 케인은 "두 개의 위원회에서 수많은 기밀 정보를 볼 수 있는데, 미국에 대한 임박한 위협은 없었다"고 말했고, 마크 워너 상원의원도 "이란이 미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임박했다는 어떤 정보도 보지 못했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셋째, 미국 자산 보호입니다. 미국은 이란의 대리 세력(예: 예멘의 후티 반군, 레바논의 헤즈볼라)이 중동 전역에서 미군 기지를 위협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란 자체를 타격해서 이러한 위협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ㅡ 이란이 주장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범죄'
이란의 입장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이란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 범죄자'라고 주장합니다.
첫째, 무력 침략 자체가 범죄입니다. 이란 외교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에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저지른 일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범죄이며, 전쟁 범죄이자 인도에 대한 범죄"라고 말했습니다. 이란은 자국에 대한 어떤 선제 공격도 없었는데, 미국과 이스라엘이 갑자기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합니다. 바가에이 대변인은 "그들의 전쟁 정당화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민간인 학살과 학교 폭격입니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고의로 민간인 시설을 폭격했다고 주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나브시의 샤자레 타이예베 초등학교 폭격입니다. 이 공격으로 170명 이상의 어린이와 민간인이 숨졌습니다. 이란 적십자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13만 개의 민간인 시설(주택, 학교, 병원, 상업 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하며, 35건의 전쟁 범죄 파일을 국제기구에 제출했습니다.
셋째, 지도자 암살입니다. 2026년 2월 28일 첫 공격에서 이란의 최고 지도자였던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습니다. 이란은 국가 원수의 암살은 국제법상 가장 중대한 범죄 중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넷째,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입니다. 이란 외교부는 "전쟁 범죄'라는 용어조차 이러한 만행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서, 미국과 이스라엘 관리들이 이란인 전체에 대한 적대적 발언을 한 점을 들어 '이것은 제노사이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란은 유엔에 보낸 공식 서한에서 1,3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9,669개의 민간 시설이 파괴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어느쪽 주장에 손을 들어주실래요?
배후에 숨은 진짜 이유들(대중매체의 분석)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진짜 이유가 공식적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다를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적인 원한입니다. 트럼프는 수십 년간 이란에 대해 깊은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79년 주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부터 시작된 이 적대감은, 두 번째 임기 중 이란 요원들이 트럼프에 대한 암살 음모를 꾸몄다는 정보로 더욱 깊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를 잡기 전에 그가 나를 잡으려고 했다. 내가 그를 잡았다"고 말하며 이 전쟁을 개인적인 복수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영향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가 트럼프를 설득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트럼프는 이미 이란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스라엘은 '문을 살짝 밀어준 것'일뿐, 이미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중국과의 경쟁입니다. 이것이 가장 냉혹한 현실 분석입니다. 이란은 중국에게 할인된 가격에 원유를 공급하는 중요한 에너지 동맹입니다. 또한 이란, 러시아, 중국, 북한은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반미 축'의 한 축입니다. 이란을 공격함으로써 미국은 이 축의 핵심 연결고리를 끊고, 중국의 값싼 에너지 공급망을 차단하며, 동시에 러시아의 중동 내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즉, 이란 전쟁은 사실상 '중국과의 대리전쟁'이라는 분석입니다.
넷째, 정권 교체입니다.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정권 교체 전쟁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펜타곤의 피트 헤그세스 장관은 "이건 소위 정권 교체 전쟁은 아니지만, 정권은 확실히 바뀌었고 세상은 그 덕분에 더 나아졌다"고 말해 모순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를 제거한 후, 이란의 전 대통령이었던 마흐무드 아마디네자드를 새 지도자로 앉히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미국은 '핵과 임박한 위협'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진짜 속내는 개인적 원한(사실 이 분석은 호사가들의 주장 같습니다.), 이스라엘 이해관계, 중국과의 패권 경쟁, 그리고 정권 교체가 뒤섞인 복잡한(하이브리드) 전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2.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자, 이란은 약속한 대로 보복에 나섰습니다. 이란이 한 말입니다.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는 미국 편을 들지 않는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 시설과 수송 능력을 전부 파괴하겠다.
여기서 '아랍 산유국'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오만 같은 나라들입니다. 이 나라들은 모두 미국의 동맹국이거나 미국과 우호적인 나라들입니다. 이란은 자기 나라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들의 석유 시설도 부수겠다고 협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협박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원유가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갑시다.
원유가 부족해지면 흔히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떠올립니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장바구니 물가도 오르니까요. 하지만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석유 부족의 진짜 결과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생산 중단'과 '불황'입니다.
왜 그럴까요? 석유는 단순히 자동차 연료나 난방 연료가 아닙니다. 석유는 현대 산업의 피와 같습니다. 석유가 없으면 공장이 돌아가지 않습니다. 공장이 돌아가지 않으면 물건을 만들 수 없습니다. 물건을 만들 수 없으면 회사는 돈을 벌 수 없고,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들은 은행에 진 빚을 갚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급 충격(supply shock)'입니다. 수요가 많아서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공급 자체가 사라져서 경제가 마비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리를 올려서 수요를 줄이는 방식(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일반적인 방법)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요가 아니라 공급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금리를 올려서 수요를 줄이는 방식(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는 일반적인 방법)을 더 부연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것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때 쓰는 가장 기본적인 무기입니다. 그런데 이 무기가 왜 지금 상황에서는 통하지 않을까?
.
인플레이션은 물건 값이 계속 오르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1000원이었던 라면이 올해는 1200원이 되고, 내년에는 1500원이 되는 식입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겁니다.
인플레이션이 왜 생길까요?
가장 흔한 이유는 '돈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많이 쥐고 있으면, 물건을 많이 사려고 합니다. 그런데 물건은 그대로인데 사려는 사람이 갑자기 많아지면, 물건 값이 올라갑니다. 이것을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장사가 너무 잘 돼서 가격이 오르는 겁니다.
그러면 중앙은행은 어떻게 이걸 막을까요?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립니다. 금리가 오르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세 가지 경로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기업들의 투자가 줄어듭니다. 금리가 높으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이자가 비쌉니다. 기업들은 "이자 내는 돈이 너무 많아서, 새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사도 남는 게 없네" 하고 투자를 포기합니다.
둘째, 가계의 소비가 줄어듭니다. 금리가 높으면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의 이자가 올라갑니다. 사람들은 "대출 이자 내느라 빠듯한데, 외식이나 여행 같은 건 줄여야지" 하고 지갑을 닫습니다.
셋째, 저축이 늘어납니다. 금리가 높으면 은행에 돈을 맡겨도 이자를 많이 줍니다. 사람들은 "쓰지 말고 그냥 은행에 넣어둘까" 하고 소비를 줄입니다.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시장에 있는 '돈'의 양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물건을 덜 사게 됩니다. 물건을 덜 사면 가격 상승 압력이 줄어듭니다. 이것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서 인플레이션을 잡는 원리입니다.
이제 왜 지금 이란 전쟁 후의 상황에서는 이 방법이 통하지 않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일어난 일은 '수요가 많아서' 물가가 오른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석유 시설이 파괴되면서 공급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동네에 빵집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빵을 너무 많이 사서 빵 값이 올랐습니다. 이때 중앙은행의 방법은 금리를 올려서 사람들이 빵을 덜 사게 만드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난 일은 빵집 자체가 불에 탄 겁니다. 빵을 만들 수 있는 공급처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려서 '빵을 덜 사게'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빵 자체가 없는데요.
더 나쁜 것은, 금리를 올리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된다는 점입니다.
석유 부족으로 이미 공장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금리까지 올라가면, 아직 버티고 있는 기업들도 대출 이자를 못 내게 됩니다. 이자는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인데, 공장이 멈춰서 돈을 못 버니까요. 결국 그 기업들도 도산합니다.
즉, 금리 인상은 '수요를 줄여서 물가를 잡는 약'이 아니라, '이미 쓰러진 환자에게 독을 주사하는 행위'가 됩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는 '너무 많이 사서' 생긴 인플레이션이 아닙니다. 그것은 '만들 수 있는 것 자체가 사라져서' 생긴 불황입니다. 그리고 중앙은행들이 아직도 이걸 인플레이션으로 착각하고 금리를 올리려 한다면, 그것은 경제를 완전히 죽이는 길입니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들이 문을 닫게 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화학 제품 공장입니다. 화학 제품의 원료는 대부분 석유에서 나옵니다. 석유가 없으면 화학 공장은 그냥 빈 건물이 됩니다.
둘째, 비료 공장입니다. 비료도 화학 제품입니다. 비료 공장이 멈추면 농사를 지을 비료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식량 생산 자체가 위협받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산업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밥상 문제입니다.
셋째, 광산 회사입니다. 광석을 캘 때는 황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황산은 석유로 만드는 화학 제품입니다. 석유가 없으면 황산이 없고, 황산이 없으면 광석을 캘 수 없습니다. 석유 부족은 지하의 광물까지 못 캐게 만듭니다.
넷째, 알루미늄 생산 공장입니다. 알루미늄을 만드는 공정은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합니다. 그 전기를 만드는 방식 중 상당수는 석유나 가스에 의존합니다. 또한 알루미늄 공정 자체에도 석유 제품이 필요합니다. 알루미늄이 없으면 자동차, 비행기, 음료수 캔, 창문 틀도 못 만듭니다.
다섯째, 유리 생산 공장입니다. 유리를 녹이는 화로는 엄청난 열이 필요합니다. 그 열을 내는 연료가 바로 석유나 가스입니다. 유리가 없으면 건물 창호, 자동차 앞유리, 스마트폰 화면, 병도 못 만듭니다.
여섯째, 플라스틱 제조 공장입니다. 플라스틱의 원료는 나프타라는 석유 제품입니다. 플라스틱이 없으면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것이 멈춥니다. 전자제품 케이스, 장난감, 일회용 컵, 수술용 장갑, 배관, 전선 피복... 거의 모든 것이 플라스틱입니다.
이 공장들이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첫째, 그 공장에 다니던 수백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됩니다. 해고된 사람들은 집세도 못 내고, 대출 이자도 못 갚고, 식료품도 못 삽니다.
둘째, 이 공장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학 공장이 멈추면 비료 공장도 멈추고, 비료 공장이 멈추면 농사도 멈춥니다. 이것을 '생산 연쇄 중단'이라고 부릅니다. 하나가 무너지면 다음 것이 무너지고, 그 다음 것이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납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회사들이 은행과 채권자(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장이 멈춰서 돈을 못 벌면, 그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빚을 못 갚으면 은행이 담보(공장, 땅, 건물, 기계)를 압류합니다. 그리고 압류된 자산은 경매에 넘어가고, 독성 펀드 같은 투기 자본들이 헐값에 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산 이전'입니다. 좀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은행 이외의 채권자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과 기관들이 있습니다.
첫째, 회사채 투자자들입니다. 회사가 돈이 필요할 때 은행에서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회사채'라는 증서를 발행해서 돈을 빌리기도 합니다. 이 회사채를 산 개인 투자자, 연기금(국민연금, 교직원공제회 등), 보험회사, 뮤추얼 펀드(주식형 펀드와 반대 개념으로,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 등이 모두 채권자입니다.
둘째, 연기금(공적 연금)입니다. 국민연금, 군인연금, 공무원연금 같은 곳은 매달 받는 보험료를 운용해서 수익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연기금들은 주식보다는 안전한 채권에 많이 투자합니다. 그래서 연기금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 지방채, 공사채(한국토지주택공사 같은 공기업이 발행하는 채권), 회사채 등의 큰 손입니다. 즉, 여러분이 내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사실은 채권을 사는 데 쓰이고, 여러분은 간접적으로 채권자가 되는 셈입니다.
셋째, 보험회사입니다. 생명보험, 손해보험 회사는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운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험금은 비교적 예측 가능한 미래에 지급해야 하므로, 안전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보험회사들도 국채, 회사채, 자산유동화증권(ABS, 앞으로 들어올 돈을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 등에 엄청난 돈을 투자합니다.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모르지만, 자신의 보험료가 은행 말고 다른 채권자(보험회사)를 통해 회사에 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자산운용사(펀드)입니다. 블랙록, 뱅가드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채권 펀드'라는 상품을 만들어서 일반인들의 돈을 모아 채권에 투자합니다. 이 펀드에 가입한 개인 투자자들은 간접적으로 채권자가 됩니다. 또한 헤지펀드 중에는 특히 부실 채권(distressed debt, 망해 가는 회사의 채권)을 싸게 사들여서 이익을 내는 펀드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앞서 말한 '독성 펀드'의 정체입니다.
다섯째, 해외 투자자들입니다. 중동의 국부 펀드(석유 돈으로 운영하는 펀드, 예: 아부다비 투자청), 중국의 외환 보유고(중국이 미국에 수출해서 번 달러로 산 미국 국채), 개인 해외 투자자들도 채권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개인 투자자가 미국 국채를 샀다면, 그 일본인은 미국 정부의 채권자입니다.
여섯째, 일반 개인 채권자입니다. 개인이 친구나 가족에게 돈을 빌려주고 차용증을 받았다면, 그 개인도 채권자입니다. 또한 개인이 '국민주택채권' 같은 공채를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경우(아파트를 살 때 떼는 채권)도 채권자입니다. 그리고 전세보증금도 엄밀히 말하면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빌려준 무이자 대출이므로, 세입자도 채권자입니다. 하지만 이런 개인 채권자들은 위기 때 은행이나 독성 펀드처럼 조직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글의 문맥에서 '채권자'라고 할 때는 주로 첫째부터 다섯째까지의 기관 투자자들을 가리킵니다.
정리하자면, 은행 이외의 채권자는 회사채 투자자, 연기금, 보험회사, 자산운용사(펀드), 해외 투자자, 그리고 일반 개인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이들 모두에게 회사들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공장이 멈춰서 회사가 망하면, 이들 모두가 손실을 본다는 점입니다.
이 '자산 이전'의 핵심은, 일반 개인 채권자나 연기금(국민의 돈)은 손실을 보고, 독성 펀드 같은 일부 투기 자본만 헐값에 자산을 인수해서 이익을 본다는 데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가 '석유 부족이 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결과'였습니다.
3. 그런데 주식 시장은 왜 계속 오릅니까?
이상하게도 주식 시장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금리도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미디어와 많은 투자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금리가 오르는 것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위험에 대비해서 투자자들이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금리 상승은 오히려 이미 진행 중인 경제 붕괴에 대처하는 능력을 더욱 떨어뜨립니다. 금리를 올리면 기업들은 대출 이자를 못 갚게 되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결국 금융 시장 전체가 무너집니다.
왜 이런 착각이 생기는 걸까요?
보통의 경제 교과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인플레이션이 오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린다. 그러면 채권(정부나 기업이 발행하는 차용 증서)의 이자율이 올라가니까, 투자자들은 채권을 사면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주식은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에 기대는 투자다. 채권이라는 '안전한 투자처'의 수익률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위험한 주식에서 돈을 빼서 안전한 채권으로 옮긴다. 그래서 주가가 떨어진다.
이것이 정상적인 시장의 논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리가 올라가는데도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투자자들이 단기적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행정부(한국은 주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 종주국을 봐야 합니다.)는 전쟁이 나서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곧 평화가 올 거야"라는 소문을 흘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러시아가 중재에 나섰다", "중동의 주요 왕실이 미국과 이란의 중재에 나섰다" 같은 루머들입니다. 이런 루머가 나올 때마다 투자자들은 "아, 곧 전쟁이 끝나고 예전처럼 석유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겠구나" 하고 단기적으로 주식을 매수합니다. 마치 도박장에서 "다음 판에는 내가 딸 거야"라는 희망으로 계속 돈을 걸어대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더 무서운 설명은 이것입니다. 주식 시장이 더 이상 실물 경제(실제로 물건을 만들고 파는 경제)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주식 시장은 기업의 이익이나 경제 성장과는 거의 상관없이, 오직 '중앙은행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풀지'에만 반응합니다. 2008년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를 거의 0%로 만들고, 엄청난 양의 돈을 찍어내서 채권을 사들였습니다. 그 돈은 실물 경제로 가지 않고, 바로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경제는 침체인데 주식은 폭등하는 'K자형'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투자자들은 이미 '중앙은행이 결국 또 돈을 풀어서 시장을 살려줄 거야'라는 믿음, 즉 '풋옵션(put option)'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나쁜 뉴스가 나와도 "중앙은행이 곧 구제해줄 거야"라는 생각에 주가가 쉽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풋옵션은 일종의 '보험'입니다. 주식 투자자들이 '만약 주가가 떨어지면, 나는 미리 정한 가격에 이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를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드리겠습니다.
내가 지금 10만 원짜리 주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일 주식 시장이 폭락할까 봐 불안합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이런 계약을 합니다. "내일 주가가 아무리 떨어져도, 나는 내 주식을 9만 원에 팔 수 있게 해 줘." 이것이 풋옵션입니다. 쉽게 말해, '떨어지면 내가 손해 보는 건 정해진 한도까지다'라는 안전장치입니다.
이 풋옵션이 왜 문제가 되느냐 하면, 투자자들이 이걸 '중앙은행이 해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중앙은행은 금리를 0%로 내리고 엄청난 돈을 찍어내서 주식 시장을 살려줬습니다. 2020년 코로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경험을 통해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중앙은행이 결국 나서서 주식을 다시 띄워준다'라고 배웠습니다. 즉, 중앙은행이 투자자들에게 공짜로 '풋옵션'을 제공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어떤 나쁜 소식이 나와도 겁내지 않습니다. "걱정 마, 연준(미국 중앙은행)이 또 구제해줄 거야." 이것이 주식 시장이 계속 오르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릅니다. 이번 위기는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위기가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찍어내도, 이란이 파괴한 석유 시설은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은 여전히 '중앙은행의 풋옵션'을 믿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험한 착각'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지금 위기는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서 해결할 수 있는 종류의 위기가 아닙니다. 돈을 아무리 찍어내도, 석유 시설이 파괴되어서 사라진 석유는 다시 생기지 않습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아무리 내려도, 공장이 멈춰서 해고된 사람들은 다시 고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여전히 과거의 패턴에 갇혀서 "걱정 마, 중앙은행이 살려줄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의 저자가 말하는 '비합리적 낙관론'입니다.
정리하자면, 지금 주식 시장이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곧 전쟁이 끝날 거야'라는 희망적인 루머에 기대는 단기 투자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은행이 결국 또 구제해 줄 거야'라는 과거의 경험에 갇힌 착각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현실과는 거리가 멀며, 곧 무너질 환상입니다.
4. 그럼 '금리 상승 = 인플레이션 대비'라는 믿음은 어디서 왔나?
이 믿음에는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믿음은 사실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이 아니라, 채권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도덕적 정당화
처음에는 이런 논리였습니다. 채권자, 즉 "을 빌려준 사람은 자신의 돈이 물가가 올라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권리가 있다." 그러니 그 위험에 대한 보상으로 이자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빌려준 100만 원이 나중에 물가가 올라서 80만 원어치밖에 안 되면 안 되니까, 그 차액 20만 원을 이자로 받겠다"는 주장입니다. 언뜻 듣기에 아주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돈 빌려준 사람도 손해를 보면 안 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교묘한 속임수가 숨어 있습니다. 이 논리는 빚을 진 사람, 즉 채무자의 입장은 완전히 무시합니다. 채무자가 그 돈으로 무언가를 생산해서 이익을 냈다면 모를까, 단순히 생존을 위해 혹은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는 상황에서는 이 논리가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논리는 "채권자의 권리"라는 이름 아래, 마치 당연한 원리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2) 서구 18세기 현실과 한국의 현재
그런데 18세기에 이미 채권자들의 실제 행동을 예리하게 관찰한 비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채권자들은 이자로 받은 돈의 대부분을 다시 새로운 대출에 재투자합니다. 다시 말해, 받은 이자를 소비하지 않고, 또 다른 사람에게 빌려줍니다. 그들이 실제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에 돈을 쓰는 '실물 경제'에 지출하는 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일부를 쓸 때도, 주로 두 가지에 씁니다. 첫째는 런던, 파리, 뉴욕 같은 금융 중심지의 고급 부동산을 사는 것입니다.(네. 강남 부동산 같은 것이죠.) 둘째는 명품, 사치품을 사는 것입니다. 18세기에는 그 사치품이 주로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비단, 보석, 예술품, 가구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만약 초사치성 물건들이 마치 대중 문화인 것처럼 여겨진다면, 그런 사회는 이미 끝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채권자들은 "우리는 물가 상승으로부터 내 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자를 받는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받은 이자를 다시 금융 시스템에 집어넣어서 더 많은 이자를 벌거나, 극소수만 자기들의 사치를 위해 쓸 뿐입니다. 그들의 이자 수입이 일반 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지키는 데 쓰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돈의 가치 보호'는 명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돈으로 돈을 버는' 구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라는 것입니다.
(3) 19세기의 이상한 이론
19세기에 들어서자 오스트리아 학파라는 경제학자들이 나타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입니다.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아주 이상한 이론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이렇습니다. "인간은 현재의 소비보다 미래의 소비를 더 선호하는 '시간 선호(time preference)'라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소비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참아주는 사람에게는 그에 대한 대가를 줘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당장 돈을 쓰지 않고 참아줬으니 그 대가로 이자를 달라"는 논리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돈을 빌리는 사람은 '참지 못하고 당장 쓰고 싶어 하는 참을성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미래를 위해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이 됩니다. 빚은 '참을성 없음'의 대가이고, 이자는 '참을성'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엄청난 부를 가진 은행가나 자본가들입니다. 그들은 '참을성이 많아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자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카를 마르크스는 아주 명확하게 비꼬았습니다. "그렇다면 로스차일드 은행 가족은 유럽에서 가장 절제력이 뛰어난 가족이겠네요."
로스차일드 가문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은행 가문이었습니다. 전쟁 자금을 대주고, 국가 채권을 매집하고,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참은' 사람들이라는 말은 터무니없는 조롱거리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한마디로 뵘-바베르크의 '시간 선호 이론'을 완전히 무력화시켰습니다.
(4) 이 이론들이 진짜 하는 일
이렇게 '도덕적 정당화', '18세기 현실 왜곡', '19세기 이상한 이론'을 거치면서, '금리 상승 = 인플레이션 대비'라는 믿음은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진짜 역할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채권자들이 이자를 받는 행위를 '정당한 권리'로 포장하고, 채무자들이 빚에 시달리는 현실을 '개인의 참을성 부족'이라는 도덕적 문제로 바꿔치기하는 것입니다. 빚은 구조적인 문제인데, 마치 개인의 성격 문제인 것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금리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식'이라고 믿어온 것들이 사실은 채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도 엉뚱한 처방(금리 인상)으로 위기를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논리를 개미 투자자(개인 투자자)와 시장의 큰손(기관 투자자, 초고액 자산가)의 관계에 그대로 대입해 좀 더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참을성 부족'이라는 비난의 진짜 정체입니다 : 뉴스나 경제 유튜브, 증권사 보고서를 보면 개미 투자자들에 대해 항상 이런 비판이 나옵니다. "개미들은 손절을 못 한다", "개미들은 추격 매수를 한다", "개미들은 변동성에 약하다", "개미들은 장기 투자보다 단기 트레이딩을 좋아한다". 요약하면 '참을성이 부족하고, 비전문적이고, 감정적으로 투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바꿔봐야 합니다. 개미들이 왜 참을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가? 개미들은 대부분 매달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투자합니다. 그 돈은 생활비와 비상금을 빼고 남은 '잉여'입니다. 그런데 이 돈이 20%, 30% 빠지면? 아이들 학원비, 대출 이자, 집세, 병원비가 걱정됩니다. '참을성'을 발휘해서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큰손들은 다릅니다. 큰손들은 손실이 나도 다른 자산에서 버틸 수 있고, 오히려 "떨어졌을 때 사면 되지" 하면서 추가 매수합니다. '참을성'은 돈 많은 사람의 특권이지, 도덕적 미덕이 아닙니다.
둘째, '참을성 없는 사람 = 채무자'라는 공식입니다. : 뵘-바베르크의 '시간 선호 이론'이 빚 진 사람을 '참지 못하고 당장 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것과 똑같은 논리가 개미 투자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큰손들은 말합니다. "개미들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려고 하니까 손해 보는 거야. 우리는 인내심 있게 장기 투자하잖아."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개미들이 단기 투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투자 기간'이 원래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자금, 내 집 마련, 노후 준비... 인생의 큰 지출이 몇 년 안에 다가오는데, 어떻게 20년 장기 투자를 하겠습니까? 이 또한 '참을성'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셋째, '비전문성' 비난 뒤에 숨은 정보 불평등입니다 : 개미들은 '전문성 부족'이라고 비난받습니다. 기술적 분석을 못 하고, 재무제표를 못 읽고, 매크로 경제를 예측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말이죠. 하지만 큰손들은 수십억 원짜리 퀀트(계량 분석) 시스템을 돌리고, 전 세계 최고의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가장 먼저 받아보고, 심지어는 기업의 CEO와 직접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정보의 속도와 깊이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서 '전문성'은 개미들의 노력 부족 문제가 아니라, '돈으로 사는 정보'의 문제입니다.
넷째, '도덕성' 비난은 가장 교묘한 함정입니다 : 개미들이 손절을 늦게 하면 '욕심이 많다'고 비난받고, 손절을 빨리 하면 '겁쟁이'라고 비난받습니다. 수익을 내면 '운이 좋았다'라고 하고, 손해를 보면 '공부를 안 했다'라고 합니다. 즉, 어떤 결과가 나와도 개미의 '도덕성'이 비난받는 구조입니다. 반면 큰손들은 손실을 봐도 '시장의 변동성 탓'으로 돌리고, 이익을 보면 '뛰어난 안목'으로 칭송받습니다. 같은 행동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금리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상식'이 채권자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졌듯이, '개미들의 참을성 부족, 비전문성, 도덕성 문제'라는 비난 역시 큰손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효과는 하나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구조'가 아닌 '개인'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석유 가격이 올라서 공장이 문 닫는 것은 '구조적 위기'인데, 이를 '참을성 없는 개미들의 과도한 투자' 탓으로 돌리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금리가 올라서 개미들의 주식 계좌가 녹아내리는 것은 '큰손들이 만든 금리 정책' 때문인데, 이를 '개미들의 손절 타이밍 실패'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개미들이 '참을성 부족, 비전문성, 도덕성 부족'이라는 비난을 받는 구조는, 채무자들이 '시간 선호가 높은 참을성 없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는 구조와 정확히 같은 논리입니다. 이는 모두 '강자가 약자를 통제하고 비난하는 프레임'입니다.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지미 카터 행정부 말기에 폴 볼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금리를 20% 이상으로 올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은행에 100만 원을 맡기면 1년에 20만 원을 이자로 받는 시대였습니다. 당연히 기업들은 대출을 감당할 수 없었고, 경제는 급속도로 얼어붙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미국은 물가 상승률이 10%를 넘나드는 고인플레이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볼커는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서 수요를 죽여야 한다"는 논리를 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합리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플레이션과 맞서 싸운 용사'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진짜 목적은 달랐습니다. 볼커의 진짜 타깃은 물가가 아니라 '임금'이었습니다.
당시 배경을 설명하겠습니다. 미국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은 전쟁을 하면서도 사회 복지 지출을 줄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전쟁 비용과 사회 복지 비용을 동시에 늘리는 정책을 '건즈 앤 버터(guns and butter)', 즉 '총과 버터' 정책이라고 부릅니다. 전쟁을 하면서도 국민들의 생활 수준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정책을 경제학자들은 '군사적 케인즈주의(military Keynesianism)'라고 부릅니다. 케인즈주의란 정부가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는 이론입니다. 그런데 그 돈을 전쟁에 쓴다는 점에서 '군사적'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는 전쟁으로 돈을 풀었고, 그 돈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업률은 낮아졌고, 노동자들의 협상력은 강해졌습니다.
이 상황이 자본가들과 은행가들에게는 매우 불편했습니다. 임금이 오르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볼커는 원래 체이스 맨해튼 은행 출신의 은행가였습니다. 즉, 그는 월가(월스트리트, 미국의 금융 중심지)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진짜 목표는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꺾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금리를 올리면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고, 공장을 닫고, 사람들을 해고합니다. 실업자가 많아지면 노동자들은 "회사를 그만두면 다른 데 갈 데가 없는데" 하고 임금 인상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업군(reserve army of labor)'을 만드는 전략입니다.
볼커는 이 전략을 실행에 옮겼고, 그는 성공했습니다. 금리가 20%까지 올라가면서 경제는 깊은 침체(경기 폭락)에 빠졌습니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망했고, 수백만 명이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임금 상승은 완전히 멈췄고, 그 이후 40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제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금리 인상은 언제나 '약자(노동자, 중소기업, 채무자)에게는 독이 되고, 강자(은행가, 대자본, 채권자)에게는 이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볼커의 사례는 이 진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글의 저자는 지금의 금리 인상도 같은 논리라고 말합니다. 다만 지금은 타깃이 '임금'이 아니라 '부채로 버티는 전체 경제 시스템'일뿐입니다.
6. 그렇다면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겉보기에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금리 인상의 표면적 목표는 볼커 때와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볼커는 공개적으로 "임금을 깎겠다"고 말하지 않았고, 지금의 연준 의장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라는 똑같은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효과는 똑같습니다. 금리 인상은 경제 전반의 위험을 극도로 높입니다. 산업도, 고용도, 심지어 금융 부문 자체에도 해롭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들은 대출 이자를 못 갚고, 부동산 가격은 폭락하고, 연쇄 도산이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올립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서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금리는 단순한 '이자율'이 아닙니다. 금리는 은행가들이 경제 전체를 주무르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왜 그런지 하나씩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금리는 '누가 돈을 얻고, 누가 돈을 잃는가'를 결정합니다.
금리가 낮으면 돈을 빌리는 사람(채무자, 기업, 집 사는 사람)이 유리합니다. 이자를 적게 내니까요. 반대로 금리가 낮으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채권자, 은행, 연기금)은 불리합니다. 받는 이자가 적으니까요.
금리가 높으면 정반대입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유리하고, 돈을 빌리는 사람이 불리합니다. 이자를 많이 받으니까요. 즉,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는 행위 자체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행위입니다. 은행가들은 이 무기를 쥐고 있습니다.
둘째, 금리는 '자산 가격'을 결정합니다.
금리가 낮으면 사람들은 은행에 돈을 맡겨봐야 이자가 없으니,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위험 자산으로 돈이 몰립니다. 그래서 주가와 집값이 오릅니다. 금리가 높으면 반대로, 은행에 돈을 맡겨도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을 팔고 현금이나 채권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주가와 집값이 내려갑니다.
누가 이 결정을 하느냐?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 위원회입니다. 그 안에는 은행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셋째, 금리는 '누가 살아남고, 누가 망하는가'를 결정합니다.
금리가 낮은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이미 부채가 많은 기업들도 이자 부담이 적어서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리가 갑자기 올라가면, 그 기업들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산합니다. 그러면 그 기업들의 자산(공장, 토지, 건물, 특허)이 경매에 넘어갑니다. 그리고 현금을 많이 쥐고 있는 큰 손들(독성 펀드, 대형 자산운용사, 부자들)이 그 자산을 헐값에 사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산 이전'입니다. 금리 인상은 '경제적 정리해고'의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합니다.
넷째, 문제는 이 무기가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경제 교과서에는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과 '고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금리를 중립적으로 운용한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금리 결정권을 쥔 사람들은 은행권 출신이거나 금융 자본과 이해관계가 깊은 사람들입니다. 폴 볼커가 체이스 맨해튼 은행 출신이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금리를 올릴 때 '이게 은행과 큰손들에게 유리한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노동자와 중소기업은 다음입니다.
다섯째, 그래서 금리는 '계급 무기'입니다.
이 표현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지만, 금리는 은행가 계급이 채무자 계급(노동자, 중소기업, 집 산 사람)을 통제하는 무기입니다. 금리를 올리면 채무자들은 더 많은 이자를 내야 하고, 못 내면 자산을 빼앗깁니다. 금리를 내리면 채무자들은 숨통이 트이지만, 그때는 채권자들의 이자 수입이 줄어듭니다. 누구의 편에서 누구를 상대로 이 무기를 쓰느냐가 문제인데, 지금까지의 역사는 금리가 항상 채권자(은행가)의 편에서 사용되어 왔습니다.
지금 이란 전쟁 이후의 상황을 다시 보겠습니다. 석유 파괴로 인한 위기는 '공급 충격'입니다. 금리 인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올리려고 한다면, 그 이유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산 이전을 가속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행가들에게는 노동자와 중소기업이 망하는 것이 '기회'입니다. 그들의 자산을 싸게 살 수 있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금리라는 하나의 숫자로 은행가들이 경제 전체를 주무르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무기에 의해 지금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7. 그러면 정부는 왜 금리를 낮춘다고 말합니까?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금리를 낮춰서 은행의 신용 창출을 늘리고,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
이 말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들리게 만듭니다.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들이 돈을 싸게 빌려서 새 공장도 짓고, 직원도 더 뽑고, 연구개발도 하고, 그러면 경제가 살아난다." 아주 듣기 좋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 아래에서 은행들은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첫째, 은행들은 '생산'이 아닌 '이미 있는 자산'에 돈을 빌려줍니다.
은행들은 새로운 공장을 짓거나,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연구 인력을 채용하려는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 대출은 위험하고, 수익이 나기까지 오래 걸리며, 담보로 잡을 것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은행들은 '이미 존재하는 자산'을 담보로 대출해줍니다. 예를 들어, "이미 지어진 아파트", "이미 발행된 회사채", "이미 상장된 주식"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자산들은 가격이 이미 형성되어 있고, 시장에서 팔기 쉬우며, 담보 가치를 산정하기 쉽습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안전합니다.
둘째, 그 돈은 어디로 갑니까?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면, 그 돈으로 무엇을 살까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거나 공장을 짓는 데 쓰지 않습니다. 그 돈은 또 다른 부동산(아파트, 빌딩, 땅)을 사거나, 또 다른 채권을 사거나, 또 다른 주식을 사는 데 쓰입니다. 즉, 빌린 돈으로 '이미 있는 자산'의 가격을 올리는 데 사용됩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 은행 시스템은 '새로운 부(wealth)'를 만드는 생산에 돈을 공급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존 부'의 가격을 서로 경쟁해서 올리는 '자산 거품(asset bubble)'에 돈을 공급합니다.
셋째,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면 소비자 물가, 즉 장바구니 물가(라면, 우유, 달걀, 휘발유 값)는 거의 오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생산 부문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았으니까요. 공장도 그대로, 생산량도 그대로입니다.
대신 자산 가격, 즉 집값, 주가, 채권 가격이 폭등합니다. 강남 아파트 값은 하늘 높이 뛰고, 주식 시장은 연속으로 신고가를 갱신하고, 채권 가격도 오릅니다(채권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혜택을 볼까요? 이미 부동산과 주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즉 상위 10%의 부자들입니다. 그들은 자산 가격이 오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도 수백, 수천억 원의 자산 증가를 경험합니다.
그렇다면 정부와 중앙은행의 진짜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부채 레버리지'를 통해 금융 자산과 부동산 가격을 다시 부풀리는 것입니다.
'부채 레버리지'란 무엇인지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1억 원짜리 아파트가 있는데, 이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8000만 원을 빌립니다. 그 돈으로 또 다른 8000만 원짜리 부동산을 삽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총자산은 1억 원에서 1억 8000만 원이 됩니다. 이렇게 빚을 이용해서 자산 규모를 키우는 것을 '레버리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진짜로 생산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빚이 늘었을 뿐입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진짜 목표는 이 '레버리지'를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금리를 낮춰서 사람들이 더 쉽게 빚을 내게 하고, 그 빚으로 자산 가격을 더 올리고, 올린 자산을 담보로 또 빚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의 핵심 목표입니다.
여기서 '거대한 폰지 사기' 구조가 나옵니다.
폰지 사기란 원래 이런 것입니다. 어떤 사기꾼이 투자자들에게 "돈을 맡기면 높은 수익을 주겠다"고 속입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실제로 수익이 나네?"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맡깁니다. 그러면 사기꾼은 또 새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을 지급합니다. 이렇게 계속 새로운 투자자가 들어오는 한, 이 거품은 유지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투자자가 끊기면? 그 순간 폰지 사기는 무너집니다.
지금 우리 경제 전체가 바로 이 상태라는 것입니다.
빚으로 자산 가격을 올립니다. 올린 자산을 담보로 또 빚을 냅니다. 그 빚으로 또 자산 가격을 올립니다. 이렇게 계속 새로운 빚이 들어오는 한, 이 거품은 유지됩니다. 하지만 새로운 빚을 낼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면? 그 순간 전체 시스템이 무너집니다.
중요한 것은, 이 폰지 사기의 '주인공'이 특정한 사기꾼 개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은행가 개인이 사기꾼이라기보다는, 금융 시스템 자체가 이렇게 돌아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이 폰지 사기를 가능하게 하는 '장본인'입니다. 그들은 금리를 낮춰서 새로운 빚을 계속 만들어내고, 위기가 올 때마다 돈을 찍어내서 거품을 다시 부풀립니다.
이제 2008년 이후의 미국 상황을 돌아보면 이 구조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기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중앙은행은 금리를 거의 0%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돈을 찍어내서 은행과 금융 기관을 구제했습니다.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요? 실물 경제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다시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으로 들어가서, 다음 거품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2008년 이후,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고, 노동자와 중산층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집값은 폭등했지만,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주식 시장은 사상 최고치를 찍었지만, 주식을 가진 상위 10%만 그 혜택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K자형 경제'입니다.(K자 들어간다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나는 이른바 "국뽕"을 우려합니다만,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결론적으로,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춰서 기업 투자와 고용을 늘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거짓말입니다. 그들의 진짜 목표는 자산 가격을 부풀려서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고, 이미 부유한 계층의 자산을 더 불려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전체 경제는 빚더미 위에 세워진 '폰지 사기'로 변질되었습니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구조가 된 것입니다.
8. 2008년 금융위기 복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무능력자에게 해준 집값 대출) 사기로 인해 은행들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오바마 행정부는 ZIRP(Zero Interest-Rate Policy, 제로 금리 정책) 을 도입했습니다. 금리를 거의 0%로 내린 것입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은행들의 자본이 마이너스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 시스템 전체에 낮은 금리의 부채를 떠 안겨주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습니까? 사상 최대의 채권 시장 붐이 일어났습니다. 채권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는 산업과 노동자를 위한 붐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경제는 K자형 경제가 되었습니다.

'K자형'이라는 것은, 위쪽으로 가는 선(상위 1%)과 아래쪽으로 가는 선(나머지 99%)이 갈라지는 모양을 뜻합니다. 상위 1%와 그다음 상위 10%까지는 재산이 급격히 불어났지만, 산업 경제는 계속해서 침체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임금과 산업 이익이 FIRE 부문(Finance, Insurance, Real Estate, 즉 금융, 보험, 부동산)으로 빠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오바마 케어라는 민영 건강보험도 포함됩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국의 제로 금리 정책은 전 세계에 돈을 풀었고, 그 돈의 상당 부분이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서 한국의 주식과 부동산을 샀습니다. 한국은행도 미국을 따라 금리를 낮췄습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K자형 경제를 구체적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첫째, 부동산입니다. 2008년 이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특히 강남, 한남동, 여의도, 목동 같은 '금융 중심지'와 '강남 3구'의 집값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습니다. 정부는 계속해서 "집값을 잡겠다"라고 말했지만,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대는 정책 자체가 집값을 띄우는 주범이었습니다. 결국 집값 상승의 혜택은 이미 집을 한 채 이상 가진 사람들, 즉 상위 10%에게만 돌아갔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영원히 집을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둘째, 주식 시장입니다. 코스피(KOSPI, 한국 종합 주가 지수)는 2008년 이후 꾸준히 상승했습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는 폭등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거래소의 통계를 보면, 개인 투자자들의 수익률은 기관이나 외국인에 비해 훨씬 낮았습니다. 또한 상장사들의 배당금 대부분은 외국인 투자자와 상위 1%에게 돌아갔습니다. 주식 시장이 올라도,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 혜택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셋째, 금융과 보험입니다. 한국의 금융 지주 회사들(하나, 신한, KB, 우리 등)의 주가는 2008년 이후 크게 올랐습니다. 보험사들(삼성생명, 한화생명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의 이익은 어디서 나올까요? 서민들의 대출 이자와 보험료에서 나옵니다. 금융과 보험 부문이 성장할수록, 일반 국민들의 부채 부담과 보험료 부담도 커졌습니다.
넷째, 민영 건강보험입니다. 원문에서 '오바마 케어'를 민영 건강보험의 예로 들었듯이, 한국에서도 실손 의료보험(실제 병원비를 보전해 주는 민영 보험) 시장은 2008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부분을 민영 보험이 커버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은 매달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의 추가 보험료를 내고 있습니다. 그 돈은 그대로 보험사들의 이익이 됩니다.
다섯째,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몰락입니다. 부동산, 주식, 금융, 보험에 돈이 몰리는 동안, 한국의 제조업과 중소기업은 점점 쇠퇴했습니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임대료(부동산)는 폭등했고, 대출 이자(금융)는 내내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보험료(보험)도 빠져나갔습니다. 자영업자들이 실제로 물건을 팔아서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아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영업자들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코로나 이후에는 줄도산했습니다.
한국의 K자형 경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위쪽 가지(상위 10%): 강남 등 좋은 지역의 부동산 보유자, 대기업 주식 보유자, 금융 및 보험사 주주, 외국인 투자자. 이들은 자산 가격 상승의 혜택을 보았고, 오히려 부채(빚)를 활용해서 더 많은 자산을 모았습니다.
아래쪽 가지(나머지 90%): 무주택자, 자영업자, 중소기업 노동자, 청년 세대. 이들은 집값 상승으로 좌절했고, 대출 이자에 허덕였으며, 보험료 부담이 늘었고,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미국의 제로 금리 정책과, 그 물결을 그대로 따라간 한국은행의 정책, 그리고 FIRE 부문(금융, 보험, 부동산)을 키우는 데 집중한 결과입니다. 이것이 '폰지 사기'라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물론 이 폰지 사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래쪽 가지의 90%이고, 이 90%는 이러한 사실에... 둔감합니다.
9. 문제는, 그때 이미 너무 많은 빚을 졌다는 점입니다
2008년 이후, 우리는 '빚으로 빚을 버티는' 식으로 버텨왔습니다. 쉽게 말해, 카드 돌려 막기로 연명해 온 것입니다.
반복되지만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은행들이 무너지려 하자, 중앙은행은 금리를 0%까지 내렸습니다. 그리고 돈을 찍어내서 은행들을 살려줬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어디로 갔을까요? 실물 경제, 즉 공장과 일자리로 가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다시 부동산, 주식, 채권 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낮은 금리를 이용해서 빚을 내고, 그 빚으로 집을 사고, 주식을 샀습니다. 그러면 집값과 주가가 올랐습니다. 올린 집을 담보로 또 빚을 내고, 또 다른 집을 샀습니다.
이것이 '부채 레버리지'입니다. 빚을 이용해서 자산 규모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서 실제로 생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공장이 지어진 것도 아니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 것도 아니고,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빚만 눈덩이처럼 불어났을 뿐입니다.
그 결과, 경제 전체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정부부채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빚을 낼 여력이 없습니다.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야 하는 악순환의 끝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OPEC(석유 수출국 기구)의 석유와 가스 거래가 중단되는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것도 전면적으로, 장기간에 걸쳐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물가가 올라서 인플레이션이 오는 것 아니야?" 하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지금 일어난 일은 '수요가 많아서'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닙니다.
석유 부족이 왜 일어났는지 돌아보겠습니다. 이것은 경기가 좋아서 공장이 많이 돌아가고,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휘발유를 많이 썼기 때문에 생긴 부족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란이 "미국이 나를 공격하면, 나는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시설을 전부 파괴하겠다"라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실행했기 때문에 생긴 부족입니다. 즉, '공급 자체가 물리적으로 사라진' 것입니다.
석유 부족의 진짜 결과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디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은 물건 값이 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일은 물건 값이 오르는 것을 넘어서, '물건 자체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빵집이 불에 타서 빵 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빵집 자체가 없어져서 빵을 살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공장들이 문을 닫습니다. 화학 공장, 비료 공장, 알루미늄 공장, 유리 공장, 플라스틱 공장이 멈춥니다. 공장이 멈추면 물건을 만들 수 없습니다. 물건이 없으면 물건을 살 사람도 없습니다. 물건을 살 사람이 없으면 소비자의 '수요' 자체가 사라집니다. 이것이 디플레이션입니다. 시장이 증발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공장이 멈추면 그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들이 해고된다는 점입니다. 해고된 사람들은 돈이 없으니, 다른 물건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다른 공장도 물건을 못 팔아서 또 문을 닫습니다. 이것이 연쇄 도산입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모든 회사들이 은행과 채권자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공장이 멈춰서 돈을 못 버는 회사는, 은행에 갚기로 한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빚을 못 갚으면 은행이 담보로 잡은 자산(공장, 땅, 건물, 기계, 심지어 회사가 보유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압류합니다.
압류된 자산은 경매에 넘어갑니다. 그런데 경매에 참여할 사람이 있을까요? 불황에 빠진 경제에서, 현금을 쥐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바로 '독성 펀드(vulture funds)'입니다. 이 펀드들은 위기를 예상하고 미리 현금을 비축해 두었다가, 이런 순간이 오면 헐값에 자산을 싹쓸이합니다. 그들은 회사채를 싸게 사서 채권자가 된 다음, 회사가 망하면 담보 자산을 가져갑니다. 아니면 경매장에 직접 뛰어들어서 공장과 땅을 10% 가격에 사들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것이 바로 '자산 이전'입니다. 빚을 못 갚는 사람들(중소기업, 자영업자, 노동자)로부터, 현금을 쥔 자본(독성 펀드, 큰손들, 은행가)으로 부와 자산이 이동하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겠습니다.
2008년 이후, 우리는 빚으로 자산 가격을 띄우는 폰지 사기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이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란 전쟁으로 인한 석유 공급 중단이라는 '물리적 충격'이 더해졌습니다. 공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회사들은 빚을 갚을 수 없습니다. 빚을 못 갚으면 담보 자산이 압류되고, 경매를 통해 독성 펀드 같은 투기 자본에게 헐값에 넘어갑니다.
결국, 이 위기의 승자는 독성 펀드와 현금 부자들입니다. 패자는 빚에 짓눌린 중소기업, 자영업자, 그리고 해고당한 노동자들입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10. 지금(2026년) 금리가 너무 높습니다
지금 미국의 금리 수준을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미국 30년 국채(정부가 30년 만기로 빌리는 돈의 이자율)는 5% 이상입니다. 미국 10년 국채는 4.6% 이상입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집을 살 때 받는 주택 담보 대출(모기지) 금리는 약 7%입니다.
이 숫자들이 얼마나 높은지, 비교를 해드리겠습니다. 2021년만 해도 주택 담보 대출 금리는 2-3% 수준이었습니다. 30년 국채 금리는 1-2%였습니다. 지금은 그 두 배에서 세 배로 뛰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3억 원짜리 집을 살 때, 2% 금리로 30년 동안 돈을 빌리면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원금+이자)은 약 110만 원입니다. 그런데 금리가 7%로 오르면, 같은 3억 원을 30년 동안 빌려도 매달 갚아야 할 금액이 약 200만 원으로 뛰어오릅니다. 거의 두 배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집인데, 매달 내는 돈이 90만 원이나 더 많아집니다. 일반 월급쟁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이제 문제는 곧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점입니다.
'만기'란 대출을 빌린 기간이 끝나는 날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5년짜리 대출을 받았다면 5년 뒤에 원금을 모두 갚거나, 다시 대출을 연장(차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시절인 2020-2021년에 금리가 거의 0% 일 때, 엄청난 양의 대출이 이루어졌습니다. 기업들은 "금리가 이렇게 싼데, 지금 많이 빌려두자" 하고 장기간 돈을 빌렸습니다.
그 대출들의 만기가 2025-2026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즉, 지금(2026년) 바로 지금, 수많은 기업들과 부동산 소유자들이 "이제 빌린 돈을 갚거나, 다시 빌려야 한다"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상업용 부동산 대출입니다. 이것은 사무실 빌딩, 쇼핑몰, 호텔, 물류 창고 같은 '장사하는 건물'을 지을 때 받는 대출입니다.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빌딩의 수요는 이미 줄어들었습니다. 거기에 금리까지 7%로 치솟았습니다. 빌딩 주인들은 세입자들로부터 받는 월세로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 하는데, 월세는 그대로인데 이자는 두 배로 뛰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이 부실화되고 있습니다.
둘째, 사모펀드(Private Equity) 대출입니다. 사모펀드는 큰 손들의 돈을 모아서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 펀드입니다. 그들은 회사를 살 때 대부분 돈을 빌려서 삽니다(레버리지). 그런데 금리가 2% 일 때는 "빌려서 사고, 회사를 개선해서 팔면 돈이 남는다"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런데 금리가 7%가 되면, 이자만 내도 빠듯합니다. 게다가 그들이 산 회사들은 지금 석유 부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돈을 못 버니 이자를 못 갚고, 결국 사모펀드도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런 높은 금리에서는 어떻게 차환(만기 연장, 다시 대출받는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차환'이라는 것은 만기가 된 대출을 다시 새로운 대출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 금리로 100억 원을 빌린 기업이, 만기가 되어서 다시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금리는 7%입니다. 같은 100억 원을 빌려도, 매년 내는 이자가 2억 원에서 7억 원으로 뛰어오릅니다. 이 기업의 연간 영업이익(공장 돌려서 번 돈)이 5억 원이라면, 2%일 때는 2억 원을 내고 3억 원이 남았지만, 7% 일 때는 7억 원을 내야 하니 오히려 2억 원이 부족합니다. 은행은 이런 기업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기업은 도산합니다.
같은 논리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도 새로 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금리가 7%이면, 앞서 예시처럼 매달 내는 돈이 너무 많아집니다. 그래서 집값이 떨어져도, 사람들은 "이자는 너무 부담스러운데" 하면서 사지 않습니다. 그러면 집값은 더 떨어집니다. 건설 회사는 새 아파트를 지어도 팔 수 없으니, 건설 자체를 중단합니다. 그러면 건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높은 금리 때문에 대출을 연장하지 못해 도산합니다. 상업용 빌딩 주인들은 이자를 못 내서 빌딩을 은행에 넘깁니다. 사모펀드는 투자한 회사들이 망해서 원금을 잃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높은 금리 때문에 집을 살 수 없어서 전세나 월세로 버팁니다. 건설사는 새로 짓는 걸 멈춥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에, 석유 부족이라는 '방아쇠'가 당겨졌습니다. 공장들은 원자재가 없어서 이미 문을 닫고 있습니다. 금리까지 높아서 대출도 못 갚습니다. 경제는 '이중고'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2026년)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또 올리려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금리 인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병든 환자에게 독을 주사하는 행위입니다.
11. 정부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정부들은 늘 그래왔듯이 금융 부문만 구제 금융(bailout)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베일 아웃(bailout)'이라는 말을 쉽게 풀면 '살려내기'입니다. 배가 물에 빠지려 할 때 '물을 퍼내는(bail out)' 것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은행이나 큰 금융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하면, 정부가 세금을 풀거나 돈을 찍어내서 그들을 구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부가 누구를 구제하느냐입니다. 정부는 '금융 부문'만 구제합니다. 즉, 은행, 보험사, 대형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같은 곳들입니다. 반면 '실물 경제'는 내버려 둡니다. 실물 경제란 실제로 물건을 만들고, 운송하고, 파는 일을 하는 곳들입니다. 자영업자, 중소기업, 공장, 농장,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입니다. 이 글의 저자는 '실물 경제는 이미 빚의 십자가에 못 박혀 있다'는 강한 표현을 씁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베일 아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가상의 시나리오입니다. 큰 은행인 '월가은행'이 있습니다. 이 은행은 망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유는 상업용 빌딩 대출과 사모펀드 대출이 부실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빌딩 주인들이 이자를 못 내고, 사모펀드가 투자한 회사들이 망하면서, 이 은행도 같이 무너지려 합니다.
정부가 나섭니다. 두 가지 방법으로 구제합니다.
첫째, 금리를 0%로 내립니다(이미 높은 금리를 다시 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은행은 싼값에 돈을 빌려서, 부실 대출을 때울 수 있습니다.
둘째,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은행의 '부실 자산'을 직접 사들입니다. 예를 들어, 은행이 가지고 있는 망한 빌딩의 대출 채권을 정부가 1조 원에 사줍니다. 그런데 그 채권의 실제 가치는 1000억 원도 안 됩니다. 정부는 1조 원을 주고 쓰레기 같은 자산을 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은행은 그 돈으로 대차대조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보너스를 주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산 그 쓰레기 자산은 결국 누구의 돈으로 산 것일까요? 바로 납세자들, 즉 국민들의 세금입니다.
이것이 2008년에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은행들은 구제받고, 그 비용은 국민들이 떠안습니다. 은행 임원들은 "우리는 구조적으로 중요하다(너무 커서 망하게 놔둘 수 없다)"고 말하면서 수백억 원의 보너스를 받아갑니다. 반면 같은 동네에서 공장이 문 닫은 중소기업 사장은 "너는 중요하지 않으니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2008년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2008년에는 그래도 '더 많은 빚을 내서 부채에서 벗어나자'는 방식이 통했습니다. 즉, 정부가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서, 사람들이 다시 빚을 내게 하고, 그 빚으로 자산 가격을 다시 띄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8년의 위기는 '연기'되었습니다. 빚을 탕감해 준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빚을 떠 안겨서 위기를 미룬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은 지난 17년 동안(2008년부터 2025년까지) 이미 그렇게 해왔습니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정부부채 모두 그때의 두 배, 세 배로 불어났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빚을 낼 여력이 없습니다. 국민들은 이미 대출 한도에 도달했고, 이자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기업들은 이미 빚으로 숨 쉬고 있습니다. 정부도 이미 엄청난 적자입니다.
2008년에는 '빚을 더 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빚을 더 낼 '여유'조차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여기서 연방준비제도(미국 중앙은행)의 행동을 봐야 합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이미 트럼프 정부의 폭발적인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엄청난 양의 국채를 사들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설명하겠습니다.
정부는 돈이 필요합니다. 전쟁 비용도, 베일 아웃 비용도, 복지 비용도 모두 돈이 듭니다. 그런데 세금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빌립니다. 그런데 이 국채를 누가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평소에는 연기금, 보험사, 외국 투자자들이 삽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도 다 빠듯합니다.
그래서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직접 나서서 국채를 삽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산다는 것은, 사실상 '돈을 찍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컴퓨터를 켜고 숫자를 입력해서, 없는 돈을 만들어내서 정부에게 줍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정부의 국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돈 찍어내기'가 초래하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첫째, 돈을 찍어내면 물가가 오르지 않을까? 일반적인 경제학 교과서에는 '돈을 많이 풀면 인플레이션이 온다'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찍어내서 실물 경제(국민들에게 직접 지급)에 풀면 인플레이션이 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찍어낸 돈을 은행 구제와 국채 매입에만 쓰면, 그 돈은 실물 경제로 가지 않습니다. 그 돈은 금융 시스템 안에서만 맴돕니다. 그래서 소비자 물가(장바구니 물가)는 오르지 않습니다. 대신 자산 가격(주식, 채권, 부동산)이 오릅니다. 즉, 돈을 찍어내면 부자들만 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결국 이자는 누군가가 내야 합니다. 정부가 빚을 내면, 그 이자는 납세자들이 냅니다. 그런데 정부가 중앙은행에 진 빚은 사실 '우리 자신에게 진 빚'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면, 그 이자는 정부가 중앙은행에 지급하고, 중앙은행은 그 이익을 다시 정부에 환원합니다(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수익을 재정 당국에 납부합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이자가 없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빚'이라는 관계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찍어낸 돈이 결국 상위 1%의 자산 가격을 부풀리는 데 사용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셋째, 가장 심각한 결과는 '환율'과 '신뢰' 문제입니다. 미국이 돈을 무한정 찍어내면, 다른 나라들은 달러의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원유를 사는 데 필요한 달러 가격이 올라가고, 그게 다시 인플레이션을 부릅니다. 결국 한계가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아무리 돈을 찍어내도, 석유와 식량이라는 '실물'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장이 '미국 정부의 빚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 국채 금리가 폭등하고 달러가 폭락하는 '신뢰 위기'가 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권자인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까요?
정부가 상위 1% 부자들만 챙기고, 은행만 구제해 주고, 나머지 국민들은 내버려 둔다면? 공장이 문 닫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집값은 폭락했는데, 은행 임원들은 보너스를 받아간다면? 국민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자명합니다. 지금의 방식은 지속 불가능하며, 언젠가는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폭발의 형태는 경제적 위기를 넘어 정치적 사회적 격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2. 이상적인 해결책이 있었다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예)
기원전 1750년경, 함무라비 왕 시대의 바빌로니아에는 현대 경제학자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제도는 단순한 자선이나 구제가 아니라, 경제 시스템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현명한 설계'였습니다.
함무라비 법전과 그 시대의 칙령들에 따르면, 만약 폭풍의 신 아다드(Adad)가 홍수나 가뭄을 일으켜서 농작물이 실패하면, 농민들이 그해에 지고 있던 곡물 빚은 전부 취소되었습니다. 이 빚들은 대부분 궁전이나 관료들에게 진 빚이었기 때문에, 채권자들이 반란을 일으킬 일도 없었습니다. 물론 상인들 간의 사업상 빚은 그대로 남겼습니다. 핵심은 농업 생산이 마비된 농민들의 '개인적 생존 채무'만 면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쉽게 비유하면, 태풍이 불어서 농사를 망쳤다고 가정해 봅시다. 농민들은 씨앗을 살 때, 농기구를 살 때, 심지어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빚을 졌을 겁니다. 만약 이 빚을 그대로 놔두면, 농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자신과 가족을 노예로 팔 수밖에 없습니다. 함무라비 왕은 "올해는 예외다. 모든 개인 채무를 탕감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 제도가 왜 필요했을까요?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경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자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경제 성장은 S자 곡선을 그리며 증가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현대의 복리 이론과 같은 원리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아무리 부지런한 농민이라도 몇 년만 흉년이 들면 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빚에 짓눌린 농민이 늘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첫째, 군대가 약해집니다.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전쟁터에서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둘째, 인프라가 무너집니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운하를 파거나 성벽을 쌓는 공공 노동(corvée)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셋째, 사회가 양극화됩니다. 소수의 채권자들이 막대한 땅을 모으고, 나머지는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채무 면제'를 정기적인 의식으로 삼은 이유입니다. 함무라비 왕은 자신이 태양신 샤마쉬(Shamash)의 정의를 집행한다고 믿었고, 수메르 시대의 여신 난셰(Nanshe)는 부자들의 오만(허브리스, hubris)을 벌하고 가난한 자를 보호하는 신이었습니다. 즉, 채무 면제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신성한 정의'이자 '사회 재생의 의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양 문명은 이 지혜를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원전 8세기경,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인들에게서 알파벳을 배울 때, 함께 '이자 계산법'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자'라는 개념만 받아들였을 뿐, '정기적인 채무 면제'라는 균형 추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비극적이었습니다.
아테네의 귀족들은 빚을 못 갚는 농민들을 노예로 만들었고, 결국 솔론(Solon)이라는 지도자가 무장봉기 직전에 '씨스아크테이아(seisachtheia, 짐을 벗어주기)'라는 강제적인 채무 탕감을 단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솔론의 개혁은 일회성 혁명이었을 뿐, 함무라비처럼 정기적인 시스템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더욱 심각했습니다. 한니발 전쟁(2차 포에니 전쟁, 기원전 218-201년) 이후, 로마의 부유한 귀족들은 '애국적으로' 전쟁 자금을 대 준 대가로 공공 토지(ager publicus)를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빼앗아 '라티펀디움(latifundium, 대규모 노예 농장)'을 만들었습니다. 플리니우스 장로(Pliny the Elder)가 "라티펀디움이 이탈리아를 망쳤다(latifundia perdidere Italiam)"고 한탄한 이유입니다. 결과적으로 로마 시민들은 땅을 잃었고, 군대는 용병으로 채워졌으며, 제국은 내전과 붕괴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그렇다면 현명한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피의 혁명'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현명한 설계'로서의 '클린 슬레이트(Clean Slate)'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돈을 찍어내서 은행을 구제하는 것(베일 아웃, bailout)은 결국 빚만 늘릴 뿐입니다. 독일이 그리스에 요구했던 긴축(austerity)은 경제를 더욱 파탄 냈을 뿐입니다. 여기서 제안되는 것은 '개인 파산'과 같은 미시적 해결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정상화'입니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현명한 대책은 무엇일까요?
첫째, '악성 부채'와 '생산적 부채'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석유 파동으로 망해가는 중소기업의 빚,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가 진 빚, 청년 세대의 학자금 대출은 '생존을 위한 빚'입니다. 이것들은 마치 함무라비 시대의 '곡물 빚'과 같습니다. 반면, 부자들의 투기성 부동산 대출이나 사모펀드의 레버리지 대출은 '사업적 빚'입니다. 전자는 탕감하고, 후자는 책임을 지우는 것입니다.
둘째, '부채 레버리지'를 멈추는 것입니다. 정부는 더 이상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거품을 부추기기 위해 금리를 낮추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부채 모라토리엄(상환 유예)'을 선언하고, 국민들에게 '숨 쉴 틈'을 주어야 합니다.
셋째, '공공 옵션'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너무 리치해서(채권자들의 저항이 너무 강해서) 완전한 채무 면제가 어렵다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출을 해주거나(Public Banking), 파산 절차를 획기적으로 완화하는 것이 대안입니다.
이것은 혁명이 아닙니다. 이것은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이미 수천 년 동안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경제의 균형 유지' 전략입니다. 서양 문명이 망각한 이 지혜를, 우리는 지금 다시 꺼내야 합니다.
동아시아에도 채무 면제의 지혜가 있었지만, 그것이 정기적인 법전으로 굳어지지 못한 것이 한계였습니다. 그 결과, 한국과 중국도 현대에 들어서면서 서양식 금융 자본주의를 도입한 이후, 채권자 과두제(oligarchy)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가 특별했던 이유는 '채무 면제'를 왕의 '신성한 의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태양신 샤마쉬(Shamash)가 정의의 상징이었고, 왕은 매년 또는 특정 시기에 '신 앞에서' 빚을 탕감하는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종교적 계명'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왕권(王權)'은 '신권(神權)'보다는 유교적 도덕에 기반했기 때문에, 함무라비 같은 정기적이고 의례적인 채무 면제 시스템을 발전시키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 그런데 서양 문명은?
서양 문명은 고대 바빌로니아나 메소포타미아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중앙 권력에 의한 정기적 채무 면제(clean slate)' 전통이 아예 없었습니다. 서양 문명의 근간인 그리스와 로마는 사실 '채무 면제'라는 안전판을 버린 대가로, 내부 붕괴의 씨앗을 스스로 심은 문명입니다.
먼저, 서양 문명의 '출발점'이 무엇인지부터 명확히 합시다.
우리가 흔히 '서양 문명의 요람'이라고 배우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사실 당시 세계의 '변방'이었습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경제 성장을 시작한 기원전 8세기경,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이미 3,000년에 달하는 '채무 관리'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와 로마는 이웃 문명으로부터 이자 계산법과 상업 관행은 배웠지만, 그 시스템의 '안전장치'인 정기적 채무 면제 의식은 배우지 않았습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무시했습니다.
이것이 '채무자의 영구적 노예화'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군주(왕)가 강력한 중앙 권력의 위상으로 채권자 과두제가 생겨나는 것을 철저히 막았습니다. 왕은 채무자가 빚 때문에 땅을 빼앗기고 노동력을 상실하면, 군대가 약해지고 인프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서 주기적으로 채무를 탕감해 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원리를 간결하게 요약했습니다.
민주정 아래에서 채권자들이 대출을 늘리고 채무자들이 갚지 못하면, 채권자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모으고 결국 민주정을 과두정으로 바꾼다. 그리고 과두제는 세습되어 귀족정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 특히 로마는 달랐습니다. 로마의 법 체계는 '채권자의 권리'를 절대적 우선순위에 두었습니다. 시케로(Cicero)는 "공직자들은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자신의 것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채무 면제를 반대했습니다. 반면 플루타르코스(Plutarch)는 이런 채권자들의 탐욕을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채권자들의 탐욕은 그들에게도 즐거움도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그들이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망칠 뿐이다. 그들은 채무자들에게서 빼앗은 밭을 갈지도 않고, 쫓아낸 집에서 살지도 않는다".
로마가 서양 문명에 남긴 가장 치명적인 유산은 이것입니다.
로마의 계약법은 채권자의 청구권을 채무자의 재산권보다 우선시하는 서양 법철학의 기본 원칙을 확립했다. 오늘날 이를 우회적으로 '재산권의 안전'이라고 부른다. 사회 복지를 위한 공공 지출은 최소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시장에 맡겨라'고 말하는 방식이다
즉, 로마가 물려준 것은 '민주정'이 아니라 '채권자 과두제의 법률적 틀'입니다: 채무자(대부분의 국민)가 빚을 갚지 못하면 그들의 땅과 주택, 심지어 신체까지 압류하는 시스템. 이것이 바로 '서양식 자유의 개념'입니다. 로마식 자유는 과두제가 나머지 인구를 채무로 묶어 수탈하고, 그들의 생계 수단과 토지 접근권을 박탈할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민주정"이라는 통치체제가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되고, 채권자의 "자유"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가 되는 세뇌 교육에 지배를 받는 현실을 알아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런 교육이 행해지지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혁명 이외의 방법으로는...)
서양 문명은 이미 고대에 '붕괴'했습니다.
'붕괴'는 게르만족의 침략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500년 넘게 이어진 '내부의 부패'입니다. 로마는 정복 전쟁을 통해 막대한 전리품과 공공 토지를 확보했지만, 이는 결국 '군수 산업 복합체'와 귀족들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1년, 카르타고와의 전쟁) 때, 부유한 가문들은 '애국적으로' 전쟁 자금을 대신 받고, 로마 정부가 갚을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인 공공 토지를 통째로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거대 라티펀디움(latifundium, 대규모 노예 농장)은 자영 농민을 압살 했고, 자영 농민의 상실은 곧 군대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플리니우스 장로(Pliny the Elder)는 "라티펀디움이 이탈리아를 망쳤다(latifundia perdidere Italiam)"고 한탄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더 이상 약탈할 땅이 없고, 더 이상 약탈할 금속이 없을 때 무너졌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현대 서구 사회는 로마의 '채권자 우선' 법철학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습니다.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올려서 은행은 구제하고 국민은 내버려 두는 행위, IMF와 세계은행이 빚을 이유로 가난한 나라들에 긴축을 강요하는 행위는 모두 로마의 과두제가 했던 일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이미 서양 문명은 내부에서 '붕괴'했습니다. 단지 그 붕괴의 최종 단계가 느리게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극심한 빈부격차, 붕괴하는 중산층, 감당할 수 없는 가계부채, 무의미해진 선거(돈으로 좌우되는 정치)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서양은 이미 과거 로마처럼 '돈이 사람을 소유하는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정직한 진단이며, 이제 답을 동양, 특히 중국식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서구 과두귀족들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14. 2026년에 일어날 일
현실은 훨씬 냉혹합니다. 아무도 '바빌로니아식 해결책', 즉 채무 일괄 취소를 말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은 감히 "모든 빚을 탕감하자"는 말을 꺼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말을 하는 순간, 은행과 금융권이 "당신은 경제를 파괴하는 포퓰리스트"라고 공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도 같은 프레임으로 포장합니다. 그래서 서양의 법체계는 여전히 '빌린 돈은 무조건 갚아야 하고, 못 갚으면 담보를 빼앗기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빚을 진 개인이나 기업의 '생존'보다, 채권자의 '권리'가 우선입니다.
이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시간 순서대로 구체적으로 그려보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 연쇄 도산입니다.
석유 부족으로 이미 공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화학 공장, 비료 공장, 알루미늄 공장, 유리 공장, 플라스틱 공장이 멈췄습니다. 이 공장들은 서로에게 원자재를 공급하는 연결망 속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가 멈추면 다음 것이 멈추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화학 공장이 멈추면 비료 공장이 멈추고, 비료 공장이 멈추면 농사가 멈춥니다. 이는 단순히 '한 업종의 위기'가 아니라, 경제 전체의 순환사(循環死)입니다.
이 공장들에 다니던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됩니다. 그들은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시적 휴직'이라는 이름으로 내보내집니다. 하지만 그 휴직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휴직입니다.
두 번째 단계, 채무 불이행의 파도입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더 이상 주택 담보 대출 이자를 갚을 수 없습니다. 문 닫은 기업들은 은행에 진 대출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없습니다. 상업용 빌딩 주인들은 세입자들이 떠나면서 월세가 끊겼고, 은행에 갚아야 할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사모펀드는 자신들이 인수한 회사들이 줄도산하면서, 그 회사들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합니다.
이것은 '특정 부실기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전체의 지급 불능' 상태입니다. 은행의 대출 채권 중 30%, 40%, 50%가 한순간에 부실 채권으로 변합니다. 은행은 예금자들의 돈을 빌려서 대출을 해주는 곳인데,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으니, 은행 자신도 지급 불능 상태에 빠집니다.
세 번째 단계, 은행의 담보 압류와 경매입니다.
은행들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법원은 서양 법체계에 따라 '채권자의 손을 들어줍니다'. 은행은 기업의 공장, 땅, 건물, 기계, 특허, 그리고 심지어 다른 회사에 대한 채권까지 모두 압류합니다. 개인들의 집, 차, 통장도 압류합니다.
압류된 자산은 공개 경매에 부쳐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매에 참여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과 기업은 이미 망했거나, 현금이 없습니다. 은행들도 현금이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한 부류가 있습니다. 바로 '독성 펀드(vulture funds)'입니다.(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네 번째 단계, 독성 펀드의 약탈입니다.
독성 펀드라는 이름은 '대머리수리(청소부)'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들은 죽어 가는 동물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그 동물이 완전히 쓰러지는 순간 달려들어 시체를 뜯어먹습니다. 경제 위기는 이들에게 가장 좋은 '사냥감'입니다.
이 펀드들은 위기를 예측하고 수년 전부터 현금을 비축해 왔습니다. 수십억, 수백억 달러의 현금을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경매장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작년만 해도 1000억 원짜리 공장이 경매에 나왔습니다. 아무도 살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경매 가격이 500억 원으로 내려갑니다. 그래도 없습니다. 300억 원, 200억 원, 마지막에는 100억 원에 독성 펀드가 '싹쓸이'합니다. 시장 가격의 10%도 안 되는 가격에, 수백 개의 공장, 수만 평의 땅, 수천 채의 아파트를 한꺼번에 사들입니다.
이 펀드들은 단순히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투기꾼이 아닙니다. 그들은 변호사, 회계사, 구조조정 전문가 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 자산을 기업을 다시 운영해서 팔 수도 있고, 바로 조각내서 팔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땅만 남겨두고 건물은 철거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경제 회생'이 아니라 오로지 '수익'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 자산 이전의 완성입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을까요?
전에는 중소기업주가 가지고 있던 공장과 땅, 자영업자가 가지고 있던 상가와 집, 노동자들이 힘들게 모은 퇴직금과 예금... 이 모든 것이 '독성 펀드'와 '큰손'들에게로 넘어갑니다. 국민들의 부는 증발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주머니로 옮겨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산 이전'입니다.
이것은 마치 1997-98년 아시아 외환 위기 때 일어난 일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당시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IMF의 구제 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자국의 은행과 기업을 외국 자본에 개방해야 했습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론스타 같은 외국계 펀드들은 한국의 망해 가는 은행과 기업을 헐값에 인수했습니다. 1조 원짜리 은행을 1000억 원에 사서, 5년 후에 2조 원에 되팔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외국 자본'의 역할을 하는 주체가 다를 뿐입니다. 이번에는 '독성 펀드'가 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피해지는 이번에는 '아시아'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남에게 했던 짓을 이제는 자기가 당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사회와 정치의 붕괴입니다.
자산 이전이 끝나면, 중산층은 사실상 사라집니다. 집 없는 사람, 일자리 없는 사람, 희망 없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웁니다. 정부는 돈이 없습니다. 세금은 이미 다 걷혔고, 은행 구제에 다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긴축'을 요구합니다. 연금을 삭감하고, 의료비를 올리고, 교육비를 내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평화롭게 참을까요? 아니면 거리로 나설까요? 역사는 후자를 말해줍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그랬고, 2008년 아이슬란드에서 그랬고, 2011년 월가 점령 시위 때 그랬습니다.
서양의 법체계는 이런 '자산 이전'을 막을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이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법원은 채권자의 손을 들어주고, 정부는 독성 펀드의 진입을 막지 않으며, 중앙은행은 여전히 은행만 구제합니다.
이제 선택의 순간이 왔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사회는 폭발할 것입니다. 아니면, 정부가 '바빌로니아식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서양 문명에는 그런 전통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수 없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생각할 수 없던 것'이란, 바로 '갚을 수 없는 빚은 결국 갚지 않게 되어 있다'는 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결론: 생각할 수 없던 것을 생각하라
1945년 이후, 우리는 경제가 자동으로 자정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배워왔습니다. 즉, 경기 침체가 오면 시장이 알아서 회복된다는 '경기 순환(business cycle)' 신화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금융 자본주의의 우회로였을 뿐입니다. 시장에는 자동으로 자신을 고치는 힘이 없습니다.
해결책은 시장 시스템 바깥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주류 경제학이나, 대처-레이건식의 '자유 시장(규제 없는 민영화)' 이데올로기가 인정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미래는 우리에게 '생각할 수 없던 것'을 생각하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은, 결국 갚지 않게 되어 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닌 강제다
이것이 올해(2026년) 현실이 될 것입니다.
'꿀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딥시크와 미국의 AI범죄 (1) | 2026.05.24 |
|---|---|
| 로스차일드 가문 (0) | 2026.05.24 |
| TSMC: 전 세계 첨단 칩의 90%가 폭발 위험이 높은 섬에서 생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0) | 2026.05.19 |
| 유대인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던 모든 것 (0) | 2026.05.17 |
| 러시아 유대인에 대한 모든 진실(별첨) (0) | 2026.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