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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들은 선교사인가, 간첩인가?

이 글을 읽으실 분들에게 알립니다.

 

우리는 조선 민족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국호는 조선(朝鮮)이어야하고, 우리는 조선민족이어야 합니다. 조선은 오천 년 전 우리나라와 민족의 한아바님이신 단군께서 지으신 국호이며, 그 뜻도 참신하고, 곱고, 아름답게 빛나는, 아침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조선인이지, 韓족도 倭족도 아닙니다.

세계최고의 우리 글, 훈민정음을 지으신 세계적인 성군의 나라도 조선입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도 자신을 조선인이라 자부했으며,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 어른들도 우리나라를 조선이라고 칭했습니다. 미제와 이승만이 남조선에 영구적 군사기지 겸 식민지인 대한미국을 조작해내기 전까지는 이승만 역도도, 김구도, 심지어 미국놈들도, 일본놈들도 우리나라를 조선이라고 불렀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조선의 의미는 아주 명백합니다. 중국인들은 조선, 조선족, 조선어, 조선반도, 조중관계, 조미회담... 등으로 칭하며, 명백히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입니다.

그러나 중국위키에 韓이란 글자는 1) 중국漢족과 조선족이 사용하는 하나의 성씨 2) 韓이란 중국 전국시대 7 제후국들 중 하나이며, 3) 조선과 관련된 의미로서는 기껏해야 조선반도 남쪽에 경상도, 전라도 지역을 지칭하는 삼韓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중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조롱을 합니다.

1) 대한민국, 한국이란 그야말로 조선민족의 역사에 거대한 오점, 수치, 아픔인 괴뢰국명이다. 만주를 침략한 일제가 조작해낸 대만주국과 똑같은 지위를 갖는 치욕적인 쓰레기국명이다.

2) 상해임시정부 좋아하시네. 장개석 똘마니, 그 잘난 임정인물들도 그나마 모조리 죽임을 당하거나 배제되고 오직 일제의 충견들, 미제의 충견들에 의하여 조작된 그 개놈들과 후손들이 모든 땅과 재산과 권력을 장악한 식민지 주제에! 

임시정부 법통은 그 놈들 밥통이지.

3) 예전에 몽고 제후국으로 몽고가 망하고도 일한국, 오고타이한국이니 하는나라들이 유라시아에 있었지. 

한국도 표기 한자는 다르지만 제후국이란 저의로 누가 장난을 친 건지, 좀 규명할 필요가 있겠네.

4) 그러게요. 7 제후국들 중 하나가 "韓"이였는데도 그런 국호를 사용하는 게 수치스럽지도 않은가 봐요.

5) 한, 칸 모두 같은 겁니다. 오고타이칸이 되죠. 고대 마한, 진한, 변한이라는 삼한도 같은 뿌리일걸요?.

6) 그니까 몽고와 흉노 같은 유목민들이, 정복전쟁을 하면서 봉토를 준 장군을 각간(khanate)이라 불렀던 것처럼, 한국도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닐까요? 저도 전부터 한국에 이 한자가 왜 이렇게 붙여졌나 궁금했었어요. 삼한에서 왔다면 그럴 법하네요.

7) 신라의 왕을 마립간 거서간 등으로 부르던 시절이 있죠. 북방민족의 전통이 남아 있던 시절일텐데 칸에서 유래했다고 하네요.

8) 상해 임시정부도 알고보면 7개의 임시정부 가운데 하나였지,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9)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임정에서 찾고 있으나, 한량들의 감투놀이터였던 임정 역시 장개석 국민당의 괴뢰였지요. 이승만과 함께 민족분단의 주역을 했던 김구와 장개석 간에 체결된 9개준승이 그것입니다.

 

 

 

북녘 인민들은 북<한>이라는 쓰레기어를 아주 싫어합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개소리 및 사용하는 인간들을 경멸하고 증오합니다. 북<한>이란 말을 대단히 모욕적으로,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북녘 사람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치욕적이고 모욕적인 괴뢰국명으로 여깁니다. 미군정과 이승만이 애국자들을 학살/암살하면서 매국노들과 함께 세운 괴뢰국호이며 친일친미매국노들의, 친일친미매국노들에 의한, 친일친미매국노들을 위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민족의 비굴과 굴종과 노예화와, 침략자에 의한 수탈과 유린과 강간과 역사-문화말살과, 미제강점군의 영구 군사기지와 양공주미군성노예의 나라, 학살당한 수백만 우리민족의 원한에 피가 묻은,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더러운 말이 바로 한(韓)이기 때문이겠죠.

나이가 50이 넘은 사람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7, 80년대 초까지 이 미국종속국에서는 중국을 중공(中共)이라고 불렀었습니다. 대중매체들은 물론, 교과서에도 중공이라 불렀죠. 서방놈들이 China라고 부르기를 거부하고 Red China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일부 저열한 인지부조화 환자들을 제하곤 누구도 중공이라고 부르지 않고 중국이라고 부르죠.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이 자신의 국호를 바꾸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중공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왜 계속 중공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남들이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나도 그렇게 부른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일제시대에 "천황폐하 만세!"를 부르는 게 옳았다는 식의 생각입니다. 만일 그런 식이라면, 박근령이 천황폐하 운운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요? 80년대까지도 조선을 북<괴>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미디어들은 물론, 교과서에도 그런 식으로 호칭했습니다. 그게 북 <한>으로 고쳐진 것이 90년대 이후입니다.

중국은 처음부터 중국이였고, 조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조선입니다. 부르는 사람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옳고 그름을 따져서 옳은 것을 선택하기보다는 남들이 하는 대로, 잘못인데도 그냥 따라 하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일제강점기에도 일제는 일제였지, 대일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미제는 미제이며, 중국은 중국이고, 조선은 조선입니다.

혹자는 북과 남이 유엔에 동시가입할 때 사용한 국명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과 대한미국(한꾹)이 둘 다 옳으며, 이 둘을 동격으로 여겨야 한다고 믿는 듯합니다. 이것에는 유엔이 마치 절대적인 기준이라도 된다는 듯한 편견과 착각이 강력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과연 유엔이 공정한 기구이며 유엔의 결의라는 것들을 모두 표준으로 삼을만할까요?

유엔이 중국을 Red China라고 부르던 시기, 유엔은 중국을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아 회원국 지위조차 주지 않았으며, 대신에 대만을 중화민국이라고 칭하면서 중국을 대신하여 안보리 자리에 앉혔던 기관입니다. 유엔은 당시 16개국 사냥개들을 몰고 조선을 침략하여 수백만 동포를 살상하고, 전국을 히로시마처럼 초토로 만든 불법양아치집단입니다. 유엔은 오직 미제와 이스라엘 및 서구양아치들의 이익에만 복무해 왔습니다. 유엔은 세계 진보적 국가 인민들을 악마화하며, 그들의 침략과 파괴와 학살과 전복을 정당화하고 지원한 악마기구입니다. 이스라엘을 꽂아주고 그 지역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쫒은 기관도 유엔입니다. 유엔은 지금도 조선과 러시아에 "인권문제"라는 걸 들씌워 경제제재를 가결하며, "앵글로-자이오니스트"라 불리는 세력의 만행에는 단 한 번도 반대를 하거나 저지를 하지 않는, 지극히 사악한 존재입니다.

유엔의 결의, 미제의 결의를 표준으로 삼는다면, 조선을 둘로 가르고, 남녘땅에 군사기지를 설치하고, 괴뢰정권을 세운 것을 모두 정당하다고 인정하고 이를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일제가 만주침략 후 만주에 세운 "대만주국"이 중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괴뢰국이였듯, 미제가 조선의 남부를 강점하여 조작해 낸 "대한민국"도 지극히 치욕적이며 정통성 없는 괴뢰식민지 국호입니다. 대만주국이 사라졌듯, 대한민국이란 국호도 반드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걸핏하면 조선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라고 말하는 양놈들 중, 어쩌다가 조선동해(Korean East Sea)로 말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높은 역사지식과 교양 수준과 고매한 사상적 성향과 도덕성을 단번에 알아보게 됩니다.

당신은 조선인입니까, 한국인입니까. 

분명히 아십시오. 

당신들은 조선인이어야합니다.

 


 

지난 11월 2일, 통일부는 조선에 장기간 억류된 남측 국민의 가족을 "납북 피해자"로 지정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영어판에는 납치 피해자) "피해자" 4명의 가족은 가족당 1,500만~2,000만 원을 받게 됩니다.

통일부가 북한에 억류된 이들의 가족을 ‘납북피해자’로 인정해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통일부는 "2일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전후납북자법) 제6조에 따라 '납북피해자보상및지원심의위원회'를 열어, 위로금 지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피해위로금은 한 가족에 1500만원~2000만원 정도라고 통일부는 덧붙였다.

통일부는 "북한 당국은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를 포함하여 여섯 명을 장기간 강제로 억류하고 중형을 선고한 채 생사 확인 등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억류자·납북자·국군포로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 국내외 관심을 환기시키는 한편 국제사회와 긴밀히 공조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지난 8월, 시민단체가 김영호 장관에게 "북한 납치피해자" 가족에게 한국법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지위를 부여해 줄 것을 청원한 지 3개월 만에 내려진 것입니다.

 

현재 조선에는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등 총 6명의 남측 인원이 억류되어 있다고 합니다. 김정욱은 2013년에 억류된 뒤 국정원 간첩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014년에는 김국기와 최춘길 씨가 구금됐으며, 2016년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난민 3명이 구금됐습니다.

납치 피해자?

 



한국 언론은 조선이 이들의 안녕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있어 억류자들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보도했지만, 이들의 석방 요구는 거듭됐습니다. 2023년 10월 8일, 한국 정부는 조선에 김정욱 외 시민 5명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구금 기간이 "불법적이고 비인륜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에 따르면, 정부는 종교계, 시민단체와 협력해 억류자들의 행방을 파악하고 송환을 모색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와도 협력해 상황 해결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조선에 억류된 국군 억류자, 납북자, 국군포로를 감독하기 위해 통일부에 태스크포스가 구성됐습니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무자비한 땅이었다. 특히 한국 신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는 표현이 김정욱 체포 이후 10년 동안 계속 나타납니다. 한국과 달리 미국, 캐나다, 호주 출신의 목회자들 중에는 2010년대 초반부터 조선에서 간첩 등 반국가 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 외교적 논의를 거쳐 최종 석방된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또한, 통일연구원의 이규창 선임 분석가는 한국인들도 고문을 당할 가능성이 높으며 당국이 이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서울 소재 NGO인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ransitional Justice Working Group)의 법률 분석가인 신희석은 "지난 20년 동안 일본 정부는 유엔 총회에서 자국민 납치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정부는 억류자들과 관련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김정욱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체포되기 전 5년여 동안 그는 중국 국경 도시 단둥에서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을 수행하며 그곳에서 조선인 방문객과 탈북자들에게 음식과 기타 생필품을 제공했습니다. 기독교 선교사들과 활동가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 근처에 있는 조선 주민들에게 음식과 기타 지원을 제공합니다. 참고로 조선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체제를 방해하려는 시도로 간주되는 종교 활동은 금지됩니다.

 

2013년 11월 7일, 조선 당국은 사회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 목적으로 조선에 입국한 남조선 간첩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KCNA 통신에 따르면, 구금된 사람은 기독교 선교사로 가장한 국가정보원 직원이었으며, 6년 동안 주변 국가에서 간첩 활동에 참여해 왔습니다. 김정욱(50)은 간첩이 아니라 "스스로 체포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을 돕는 일에 종사하는 장로교 선교사"라고만 밝히며, 교인들이 체포 사실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2월 27일, 김정욱은 외부 언론과 대화를 나누고 조선 정부에 사면을 요청했습니다. 김 씨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실제로 2013년 10월 7일 밀수선을 타고 조-중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었다가 조선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된 한국 정보국 요원이었다는 것입니다. 확인된 서류에 따르면 그는 남조선 정보기관의 자금과 지시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김씨 왕조 기념물 대신 기독교 교회 건설을 옹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노력은 실제로 정보국 전략의 일부였으며, 조선과 중국 국경을 따라 활동하는 비슷한 유형의 선교사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김씨는 종교선전이 조선의 국가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믿었고, 그의 목표는 기존 조선정부와 정치체제를 무너뜨리고 "기독교 국가"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전국에 500개의 비밀교회가 나타나면 정권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욱은 단둥에서 정보기관이 공급한 돈으로 동조자를 모집할 목적으로 지하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조선 주민들과 함께 일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얻어 한국 정보국에 보냈습니다. 또한, 목격자 진술로 활용될 수 있도록 조선 주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서면으로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예배 도중 참석자들에게 조선에 반대하는 기도를 하게 하거나 조선을 비판하는 글을 쓰게 함으로써 조선 정치구조를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이나 미국 방문객들이 단둥 시내에 도착했을 때, 그는 또한 신도들이 "반체제 시위"에 참여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조선에 관한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는지를 시사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번 경우에는 김정욱 선교사의 영향력이나 심리적 압박, 금전적 유인을 받은 다수의 사람들이 "조선 반체제 인사들"로 묘사되어 비뚤어진 소식을 한국과 서방 언론에 제공하라는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그는 지하교회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조선 주민들이 음란물을 포함해 100개가 넘는 한국 케이블 TV 채널을 시청할 수 있는 장소로도 사용되는 건물을 임대했다고 합니다. 

 

 

 

김 씨는 자신이 국경을 넘은 경위와 음란물 CD, 메모리 카드, 성경, 수백 개의 MP3 플레이어, 의료 장비, 응급처치 용품 등이 담긴 수하물을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메모리 카드에는 종교와 신앙에 관한 문학 작품, 기독교 교회가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에 기여한 모습을 그린 영화, '반공 드라마' 전통을 따르는 한국 TV 쇼 등이 담겨 있었습니다. 외설물은 특히 활동적인 회원에게 보상으로 주고, 암시장에 디스크를 팔아 돈을 벌게 하거나, 새로운 회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디스크를 무료로 복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카메라는 평양의 폐쇄된 지역을 촬영하고 “기독교 저항 활동”을 필름에 기록하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포르노를 보라고 권유하다가 반조선 활동을 하게 된 상황은 중국에서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조선 내에서도 같은 책략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김 씨는 라오스 등 제3국을 거쳐 북에서 남으로 난민을 이동시키는 인신매매에도 연루됐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10월에는 수수료를 받고 탈북자 4명이 제3 국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들의 운명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이 진짜 난민이라면 이름을 밝히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그들의 운명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중국 국민을 제3국을 거쳐 한국으로 데리고 가서 탈북자로 신분을 세탁하는 대가로 돈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이번 공개사과식 발언은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제시된 가시적 증거의 양이 너무 많았고, 서구 양심수 명단에 김정욱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다른 두 목사님들도 훌륭했습니다. 2015년 3월 26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외교단원들과 국내외 언론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부 관리들은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북한으로의 출장 여행자들, 그리고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던 두 명의 한국 정보원 김국기(61)와 최충길(56)을 체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구금자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정보요원들이 조선이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돕기 위해 사람들을 모집했다고 주장합니다. 허위 정보 캠페인을 주도한 것은 미제국주의자들과 그들의 동맹자들이었고, 이들 역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2014년 12월 30일, 최충길 씨가 조선 영토에 불법 침입했다가 국경수비대에 체포됐습니다. 한 설명에서 김국기는 조선 영토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됐지만, 다른 설명에서는 중국 당국이 단둥에서 구금했고, 간첩으로 추정되자 이후에 조선에 넘겨졌습니다.

 

어느 쪽 설명이든 김국기는 2003년 단둥에 세운 지하교회에서 중국 조선족들에게 설교했습니다. 그는 2005년 한국 정보부에 채용됐고 이듬해부터 유료로 일하는 전문 간첩이 됐습니다.

 

그는 중국과 조선 국민, 특히 조선에 거주하는 중국인 사이에서 간첩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효과적이었으며, 중국인들은 돈을 받고 그에게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용 가능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는 조선의 군사 기반시설의 발전과 조-중 간의 군사 및 경제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김국기 씨는 철도 인프라 사진을 찍고, 조선과 중국 간 철도 통행량과 ​​종류를 모니터링해 기밀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김 씨는 2010년 조선 지도자 김정일의 중국 방문 일정과 단둥 체류를 포함한 세부사항을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북한을 비판하는 세속적, 종교적 저작물의 보급에도 참여했습니다. 자료의 대부분이 조선의 고위 지도자들을 조롱하는 연재만화였으며, 직접 컴퓨터로 만들었거나 한국 정보기관이 인쇄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들의 다른 활동들도 궁금하실 겁니다. 실제로 '기독교 저항'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선전 자료에는 '탈북자 고백'과 조선 내에서 '기독교 저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동기 부여 이야기가 모두 나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김 씨와 같은 공작원들이 만든 전단지들은 한국 정당이 인쇄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언론인이나 외국 단체들에게 김 씨는 자주 멘토 역할을 해왔습니다. 결국, 이러한 지지자나 학자 중 다수는 중국 국경 지역을 비롯한 가능한 모든 곳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김씨는 대리인과의 만남을 주선해 팩트보다는 기만적인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김국기는 조선이 위조달러를 제조했다고 비난하면서 외화를 조선으로 밀수입하고 원산지를 알 수 없는 고품질 조선 지폐(대부분 위조임이 확실)를 조선으로 밀반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조선의 소액권 위조화폐를 제조하는 일에도 관여했는데, 이 돈을 중국 공민의 개인 소지품에 숨겨서 100~1,000장씩 조선에 넘겨주었습니다. 정보 제공자에게 보상을 하는 동시에 경제를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해 수행된 임무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증언에 따르면, 조선 당국은 해외에서 제조된 위조품을 근절하기 위해 고액 지폐의 디자인을 변경해야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최춘기는 2003년부터 중국에 있었고 2011년에 채용되어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을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요원들의 도움으로 영변 시험장 주변의 이미지와 방사성 토양 샘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부하들은 군사 시설을 사진으로 찍고, 조선 당국자들의 군 신분증과 군복을 훔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파괴 공작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또한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민과 조선족을 모집하여 그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하 선교과정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는 또한 '사상전복'을 이유로 조선을 자주 방문하는 중국인들을 통해 음란물과 남조선 영화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얘기가 서방이나 한국 사회에 알려질 리 없고 목격자와 중국 및 러시아 소식통을 통해 알게 되기 때문에 "선교자 또는 간첩"이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