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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팁

붕괴하는 제국 질서, 그리고 땅과 물을 둘러싼 새로운 투쟁

이 글은 David Graeber Institute에서 진행한 "Finance, Sovereignty, and Colonial Histories" 대담을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대담에는 Michael Hudson, Anne Pettifor, Françoise Vergès 세 분이 참여하였으며, 현재의 글로벌 질서 붕괴와 남반구의 시각, 그리고 대안의 모색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들어가며

 

본 대담은 "현재의 제국 질서가 붕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진행자 Nika는 David Graeber Institute가 진행한 두 개의 강연 시리즈—식민 역사와 종말의 경제학—를 연결하여, 현재의 글로벌 질서가 어떻게 재편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올지 탐구한다고 소개합니다. 세 명의 발언자—Anne Pettifor, Michael Hudson, Françoise Vergès—는 각자 다른 지리적·역사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8s0ss4nCR7g

 

 

1. 남반구의 시각: 다른 지리, 다른 현실

 

Françoise Vergès는 레위니옹 섬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본 "세계 질서의 붕괴"는 유럽에서 보는 것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 이란, 걸프 왕국들, 아프리카, 인도, 중국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붕괴는 추상적 담론이 아니라 구체적 군사화로 다가왔습니다.

 

Vergès는 세 가지 중요한 변화를 지적합니다.

 

첫째, 디에고 가르시아의 미군 기지뿐 아니라 인도가 모리셔스에 건설한 새로운 군사 기지는 이 해양의 전략적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이곳을 통해 전 세계 석유의 20%와 해상 무역의 상당 부분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후 재앙이 이 군사화와 결합하고 있습니다. 마요트 섬을 휩쓴 사이클론 시도는 3년이 지나도록 복구되지 않았고, 마다가스카르에서는 젊은이들의 봉기가 일어났지만 배신당했습니다.

 

셋째, Vergès는 1960-70년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반제국주의 운동이 남-남 공간에서 재구성되고 있음을 목격합니다.

 

동시에 Vergès는 이스라엘이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앙골라 등에서 토지를 매입하고 경찰을 훈련시키며 무기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이 지역에 침투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가자나 이란 폭격과 별개로 진행되는 직접적 행동입니다. 그녀는 이 모든 상황이 우리에게 "세력과 반대 세력에 대한 새로운 지도 제작"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만든다고 강조합니다.

 

2. 19세기의 교훈: 독립의 대가

 

Michael Hudson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19세기로 돌아갑니다. 아이티, 멕시코, 그리스, 이집트 등은 정치적 독립을 쟁취했지만, 그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아이티는 해방된 노예들의 가치를 배상해야 했고, 그리스는 David Ricardo의 형제들로부터 차관을 도입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들 모두가 독립 후 자급자족을 위한 투자를 시작하자마자 거의 즉각적으로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는 점입니다.

 

그러자 19세기말, 채권국들은 총포함대를 동원했습니다. 프랑스는 막시밀리안 아래 멕시코를 침공했고, 영국은 이집트의 운하를 장악했습니다. 그리스는 영국 해군의 봉쇄를 받았습니다. 채권국들이 설치한 현지 통화 당국은 이들 국가의 세수입이 자국 경제 발전이 아닌 외국 채권자 상환에 우선 사용되도록 강제했습니다. Hudson이 지적하듯, 이렇게 해서 이들 국가는 정치적 독립을 얻었지만 경제적 주권을 상실했습니다.

 

Hudson은 미국의 사례도 추가합니다. 영국은 식민지들이 자국 통화를 발행하지 못하게 하고 외국 채권자들의 토지 담보 대출을 강요했습니다. 이 경험은 미국이 외국 은행가들(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미국 은행가들)에 대한 깊은 불신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Vergès는 아이티의 사례를 덧붙입니다. 프랑스는 흑인 공화국이 살아남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봉쇄, 제재, 그리고 독립 대가로 부과된 배상금—게다가 그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프랑스 은행에서 다시 빌려야 했던 이중 부채.

 

이것이 바로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와 "국제적 사랑"의 실체였습니다. 그녀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본 핵심적 사실을 지적합니다. 제국주의 세력은 차관, 긴축, 쿠데타, 암살, 부패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어떤 형태의 발전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중국의 예외: 다른 길, 다른 불균형

 

Anne Pettifor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예외를 제시합니다. 중국은 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습니다. 외화 차입 대신 국내 저축을 축적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는 중국 발전의 핵심 전략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전략이 소비를 억압하고 생산 잉여를 국가(결국 상위 1%)가 포착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중국 내 불평등은 미국이나 유럽과 맞먹는 수준에 도달했고, 과잉 생산과 과소 소비라는 구조적 모순을 낳았습니다.

 

Pettifor는 중국이 이 잉여를 전 세계에 수출했고,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서 이를 싼값에 흡수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붕괴하는 러스트 벨트가 만들어졌습니다. Trump 행정부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달러 약세를 시도했지만, 이란 전쟁은 달러 강세를 초래하여 전 세계 통화를 약화시켰습니다.

 

Pettifor는 중국과 베트남 같은 사례가 외화 차입 없이 발전한 예외임을 인정하면서도, 남아공을 비롯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달러화 부채는 여전히 착취적이고 불안정화를 초래한다고 지적합니다.

 

4. 달러 부채의 덫

 

Hudson은 여기서 핵심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채권국과 식민국들이 강요한 "수출 주도" 발전은 불균등 교환이었습니다. 남반구는 모국과 경쟁하지 않고 식량과 원자재만 생산하도록 강요받았고, 이는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와 외채를 낳았습니다. 문제는 이 외채의 대부분이 달러화로 표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이란 전쟁으로 에너지와 비료 가격이 폭등하면서, 남반구 국가들은 절박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국의 사회 지출(보건, 복지, 기반시설)을 삭감할 것인가, 아니면 채무 불이행을 선택할 것인가?"

 

Hudson은 역사적으로 서방이 세계대전 후 배상금과 동맹국 간 부채에 대해 지불 유예와 감축을 단행한 경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시아 외환 위기는 미국 기업들의 금융적 인수로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의 선택은 이 위기를 새로운 금융 식민주의의 인수 기회로 내줄 것인지, 아니면 저항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5. 붕괴인가, 폭력적 재편인가

 

Pettifor는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달러는 강세이고 미국 경제는 겉보기에 잘 돌아가는데, 정말로 붕괴하고 있는가?

 

Vergès는 "무언가는 붕괴하고 있지만, 제국 권력은 절대 조용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합니다. 붕괴의 과정은 극도로 폭력적일 것입니다. 그녀는 기후 재앙의 현실을 강조합니다. 비료 가격 상승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대홍수와 메가파이어가 발생 중이며, 부유한 국가들은 모든 기후 조치를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남서인도양의 치쿤구니아 유행은 바이러스 자체보다도 공중 보건 시스템의 붕괴, 대량 관광, 급속한 도시화, 빈곤 때문이었습니다.

 

Hudson은 미국의 내부 모순을 보여줍니다. Trump는 미래의 연료는 석유와 석탄이라고 선언하며 풍력과 태양광 투자를 중단시켰습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 석유 무역을 통제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의 에너지 수도를 차단해 미국의 냉전 정책에 복종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미국 내부에서도 파괴적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철강 관세는 농기계 가격을 폭등시켰고, 이란 전쟁은 비료 가격을 치솟게 했습니다. 그 결과 미국 농민들은 생산비가 수익을 초과하는 적자 상황에 직면했고, 정보 기술 회사들이 이들의 땅을 사들이는 새로운 부재지주 체제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농민들은 애국적으로 자신의 파산을 감수하면서도 Trump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Vergès는 여기에 전쟁 자체가 기후 재앙을 가중시킨다는 점을 덧붙입니다. 가자, 남레바논, 이란에 대한 폭격은 토양을 오염시켜 농사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무기들은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를 소비합니다. 제국주의 군대 자체가 거대한 기후 파괴자인 셈입니다.

 

6. 정치적 단절과 새로운 의식의 등장

 

Pettifor는 식량 가격 상승과 대규모 기아가 현실화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지 묻습니다. 민족주의적/파시스트적으로 변할까, 아니면 저항할까?

 

Hudson은 냉정하게 진단합니다. 대중은 미국의 전쟁에 반대하지만, 정치인들은 모두 찬성합니다. "우리는 심각한 정치적 단절을 겪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남반구의 정치 지도자들은 사실상 미국 국무부 등이 발굴하고 후원한 인물들입니다. 선거 민주주의는 죽었고, 금융 및 지대 추출 이익집단이 통제하는 과두제가 지배합니다. 영국과 독일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비판하는 것은 이미 범죄화되고 있습니다. 경찰 국가가 도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 봉기만이 대안이지만, 그것은 1776년이나 1917년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라고 Hudson은 말합니다.

 

그러나 Vergès는 남반구에서 전혀 다른 현실을 목격합니다. 탄자니아, 케냐, 마다가스카르, 아르헨티나, 멕시코 곳곳에서 거대한 봉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두주(억만장자 계급)와 정부, 그리고 국민 사이의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정치 교육의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젊은이들은 나크바(Nakba)를 이해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 연대를 범죄화하는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에서 벗어나 집단적 정치의식을 배우는 중입니다. 특히 "땅과 물"이 다시 정치적 질문으로 부상했습니다. 단지 인도적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말입니다. Vergès는 남아공 농민과 인도 농민, 남반구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기반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의 무기인 것입니다.

 

7. 제3차 세계대전

 

Pettifor가 이 전쟁의 종말을 묻자, Hudson은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습니다. 이것을 제3차 세계대전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1, 2차 대전이 각각 4년 걸렸듯, 이 전쟁도 4년은 갈 것입니다. 에너지를 둘러싼 전쟁이기 때문에 전 세계가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Hudson에 따르면 미국의 전략은 통제할 수 없는 외국 석유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란의 유전을 폭격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이란은 "우리의 석유를 파괴하면, 미국과 동맹한 아랍 OPEC 국가들의 석유도 모두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은 서유럽과 남반구에 보내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폭격하는 미국-이스라엘을 막지 않으면, 당신들의 산업은 마비되고 대공황에 빠질 것이다."

 

Hudson은 국제 체제가 이미 붕괴했다고 진단합니다. 유엔은 미국의 거부권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유엔, 새로운 IMF(긴축이 아닌 상호 이익 기반), 새로운 세계은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대중 봉기만으로는 이 다자간 체제를 만들 수 없습니다. 새로운 체제는 중국, 러시아, 이란을 중심으로 한 자급자족적 아시아 경제권을 중심으로 재건될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미국 기업들이 혼란을 틈타 자원을 약탈하는 대공황이 도래할 것입니다.

 

8. 땅과 물: 새로운 투쟁의 지평

 

그럼에도 불구하고 Vergès는 이 순간을 "풍요롭고 형성적인 순간"으로 봅니다. 미국이 차라리 혼란을 선호하지만, 사람들은 가격 상승과 이것이 전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이란만의 전쟁이 아니라 "전 세계에 대한 전쟁"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도의 농민, 칠레의 어부, 전 세계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Vergès는 이란이 저항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잔혹한 세력에게 문이 활짝 열립니다. 가자는 그들에게 인간 생명이 아무것도 아님을 증명했습니다. 남반구에서는 인권, 자유, 평등, 우애라는 서구의 가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이해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습니다. BRICS는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남반구 사람들 사이의 연결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Pettifor는 이 연결의 구체적 사례로 "물"을 듭니다. 영국에서도 사유화된 상수도 회사들이 강과 바다를 오염시킨 것에 대한 분노는 정치 스펙트럼 전체에 걸쳐 있습니다. 이것은 아프리카, 인도, 전 세계 가뭄 지역과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나의 공통된 요구(땅과 물 보호) 아래 전 세계가 연대하면서도 각 지역의 특수성을 유지할 수 있는 운동을 조직하느냐입니다.

 

Pettifor는 과거에 중앙 위원회 없이 분권화된 권력 기반을 가진 운동을 시도한 경험을 떠올립니다. 땅과 물은 애리조나와 페루, 차드와 니제르, 인도와 카슈미르, 폴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생존 문제입니다.

 

결론: 개혁인가, 붕괴인가

 

Hudson은 David Ricardo의 교훈을 상기시킵니다. Ricardo는 지대(rent)를 과세하지 않으면 영국 산업에 이윤이 남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오늘날 금융 부문의 "화폐 지대"도 동일합니다. 유럽과 미국이 탈공업화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Hudson은 우리가 19세기 고전 경제학자들이 묘사한 길(반고전/반사회주의 혁명 이전)로 세계를 재건하지 않으면, 개혁 아니면 붕괴, 개혁 아니면 기아라는 것을 보여주는 서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Vergès는 이 투쟁을 해방 정치학으로 재정의합니다. 혁명은 항상 "우리는 식량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괜찮은 삶이 필요하다"는 기본적인 필요에서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가 끊임없이 차단해 온 "생존의 필수 조건"에 대한 투쟁입니다. 남아공과 아프리카의 모든 독립운동은 땅, 물, 식량, 교육, 보건을 요구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해방을 위한 정치적 투쟁의 지형입니다.

 

Pettifor는 우리가 미국과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하는 일을 세계가 보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당신들에게 다가올 일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합니다. '희망'은 전략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청년들에 대한 신뢰와 인간의 연결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능력은 변혁적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땅과 물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제국 질서가 붕괴하는 순간, 우리 앞에 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독자를 위해 마이클 허드슨 교수의 사상과 이론을 쉽게 풀어 보겠습니다.

 

 

 

당신이 매달 갚는 그 빚, 사실은 '가공의 숫자'입니다.

 

 

 마르크스와 허드슨이 들려주는 '빚 경제' 이야기

은행에서 돈을 빌려본 적이 있으신가요? 집을 살 때, 차를 살 때, 아니면 사업을 시작할 때... 우리는 당연하게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은행이 당신에게 건네주는 그 '돈'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 이야기는 그 '돈'의 정체를 파헤친 두 사람, 카를 마르크스와 마이클 허드슨이 들려주는 현대 자본주의의 민낯입니다.


 

1. 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숫자'를 만듭니다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은행은 당신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은행이 하는 일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1억 원을 대출 받으러 왔습니다. 은행 직원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그러면 당신의 계좌에 1억 원이라는 '숫자'가 찍힙니다. 그게 끝입니다. 은행 금고에서 현금 뭉치가 나온 적도 없고, 다른 사람의 예금이 당신에게 옮겨간 적도 없습니다. 그냥 숫자가 생겼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숫자'를 '가공 자본(fictitious capital)'이라고 불렀습니다. '가짜 자본'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은행에 갚아야 하는 1억 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그저 컴퓨터 화면 속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 가짜 숫자를 갚기 위해 진짜 노동을 하고, 진짜 땀을 흘리고, 진짜 소비를 포기합니다.

이게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첫 번째 비밀입니다.



 

2.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경고한 '가짜 자본'의 폭주

 


마르크스는 1867년부터 1894년까지 세 권의 책을 썼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자본론> 1권은 '노동자가 착취당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자본론> 2권과 3권에서 더 무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로 '돈이 돈을 낳는' 세계, 금융 자본의 세계입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은행 자본의 더 큰 부분은 순전히 가공적이다. 그것은 채무 증서, 정부 증권, 그리고 생산의 미래 수익에 대한 청구권인 주식으로 구성된다.

 

 

쉽게 풀어볼게요. 여러분, 국채를 생각해보세요. 정부가 "10년 후에 100만 원으로 갚겠다"는 약속을 적은 종이입니다. 그 종이 자체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정부가 미래에 세금을 거둬서 갚겠다는 '약속'일뿐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금융 시장에서 수천억, 수조 원에 거래됩니다. 이게 바로 '가공 자본'입니다.

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의 미래 이익에 대한 '청구권'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 청구권이 실제 회사의 가치보다 몇 배, 몇십 배 비싸게 거래됩니다.

마르크스는 이 '가짜 자본'이 너무 커지면 경제가 병들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고리대금(usury)'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고리대금은 생산 양식을 바꾸지 않는다. 기생충처럼 생산 양식에 달라붙어 그것을 비참하게 만든다. 피를 빨아들이고, 신경을 마비시킨다.

 

 

150년 후, 마이클 허드슨은 이 경고가 현실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3. 허드슨이 발견한 현실: 산업 자본을 잡아먹은 금융 자본

 


마이클 허드슨은 미국의 경제학자입니다. 그는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미국 은행이 빌려주는 돈의 약 80%가 부동산 모기지(담보 대출)입니다. 공장을 짓거나, 기계를 사거나, 기술을 개발하는 데 쓰이는 돈은 20%도 안 됩니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이미 이해하셨죠? 이때의 "돈"은 숫자일 뿐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금융 시스템이 '생산'을 돕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산의 가격을 부풀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허드슨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3권을 다시 읽으면서 깨달았습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가공 자본'이 이제 경제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마르크스 자본론 3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이 현재 마르크스를 해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전문가가 3권을 해설하는지 먼저 살피세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르크스 시대의 어떤 관찰자도 금융 자본이 산업 자본을 압도하고 해체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마르크스는 산업 자본이 고리대금 자본을 정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4. '빚'은 어떻게 '자산'으로 둔갑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그럼 이 '가짜 자본'이 어떻게 다시 "돈"을 버는 걸까요?

여러분, 은행이 여러분에게 1억 원을 빌려줄 때, 은행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앞으로 20년 동안 갚을 원금과 이자. 그것이 내 자산이다."

맞습니다. 은행의 대차대조표에는 여러분의 부채가 '대출 채권'이라는 이름의 자산으로 기록됩니다. 그래서 금융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의 부채는 다른 사람의 자산이다."

허드슨은 이 말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합니다. 왜일까요?

첫째, 갚을 수 없는 부채는 자산이 아닙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억하시나요? 은행들은 온통 '자산'이라고 불렀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고위험/고금리 주택담보대출, 저소득층에 고리릏 뜯어내는 은행의 파렴치함에 절정) 채권들이 순식간에 '독성 쓰레기'로 변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채무자들이 갚을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 '자산'은 말 그대로 휴지 조각이 되었습니다.

허드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산은 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이다.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부채는 미래 현금 흐름이 0이므로, 그 현재 가치는 0이다.

 

 

 

둘째, 부채는 강제하지만 자산은 보장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빚을 지면, 당신은 법적으로 갚을 의무가 있습니다. 월급에서 강제로 공제될 수도 있고, 재산이 압류될 수도 있습니다. 빚은 채찍입니다.

그런데 은행이 가진 '자산'(여러분의 대출 채권)은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갚지 않으면, 그냥 사라집니다.

허드슨의 비유를 들어볼까요?

"부채는 자산이다'라는 말은 마치 '총도 방어 수단이다'라는 말과 같다. 기술적으로는 맞다. 그러나 그 말이 '총은 살인 도구다'라는 사실을 가리지는 않는다.

 

 

 

셋째, 부채가 너무 많아지면 "모두"가 망합니다.

이것이 허드슨의 가장 중요한 통찰입니다. 당신이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줄인 소비는 동네 가게의 매출 감소로 이어집니다. 가게는 직원을 해고합니다. 해고된 직원은 자신의 빚을 갚지 못합니다. 은행의 다른 대출이 위험해집니다.

이게 바로 '부채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입니다. 한 사람이 빚을 갚으려 할수록, 다른 사람들은 빚을 갚기 더 어려워집니다.

허드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경제 성장은 산술적으로만 증가한다. 언젠가는 부채가 경제를 질식시킨다. 그때가 되면 '자산'으로서의 부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5. 고대인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진리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허드슨은 경제사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고대 근동 사회(수메르, 바빌로니아, 고대 이스라엘)를 연구했습니다.

이 고대 사회들은 우리보다 훨씬 현명했습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부채 탕감(clean slate)'을 시행했습니다. 왕이 즉위할 때마다 모든 농민의 빚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부채가 너무 많아지면 농민들은 땅을 빼앗기고 노예가 된다는 것을. 노예가 된 농민들은 세금도 내지 않고, 군대도 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면 왕국은 망한다는 것을.

허드슨은 씁쓸하게 말합니다:

고대인들은 현대 경제학자들보다 더 현명했다. 그들은 '부채도 자산이다'라는 말의 함정을 알고 있었다. 부채가 너무 많아지면, 그 '자산'은 현금 흐름이 아닌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된다.

 

 

 

 

 6. 그래서 허드슨이 말하는 '빚 경제'란 무엇인가

 


자, 이제 허드슨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볼까요?

 

"갚을 수 없는 빚은 결국 갚지 않게 된다."

 

이것이 허드슨이 평생 반복한 문장입니다. 너무 당연해 보이지 않나요? 그런데 이 당연한 진리를 현대 경제학은 의도적으로 무시합니다.



허드슨이 말하는 '빚 경제', 또는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가공 자본의 지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1. 은행이 컴퓨터 키보드로 만든 '숫자'가 경제의 주인입니다.
2. 이 숫자는 생산이 아닌 기존 자산(주로 부동산)의 가격을 부풀리는 데 사용됩니다.
3. 부풀려진 가격은 다시 담보로 더 큰 대출을 만듭니다. 악순환입니다.
4. 사람들은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입니다. 경제는 위축됩니다.
5. 그런데 빚을 갚으면 갚을수록, 다른 사람의 소득이 줄어들어 빚을 갚기 더 어려워집니다.
6. 결국 대규모 채무 불이행이 발생합니다. '자산'이었던 대출 채권들은 휴지 조각이 됩니다.
7.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합니다. 10년마다, 길게는 20년마다 이 사이클이 반복됩니다.

 

허드슨은 말합니다. 이 사이클을 깨는 유일한 방법은 고대인들이 했던 것처럼 정기적인 부채 탕감이라고. 그리고 부채가 다시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 '가공 자본'의 원천인 지대(rent)에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7.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으신 당신, 아마도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허드슨의 대답은 조금 씁쓸합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당신이 빚을 최대한 줄이고, 소비를 아끼고, 현금을 비축하는 것. 그것이 개인의 생존 전략입니다.

그러나 시민으로서, 유권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있습니다. '빚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것. 그리고 이 지식을 나누는 것.

허드슨은 말합니다:

고대인들은 정기적으로 빚을 탕감했다. 그들은 부채가 경제를 파괴하기 전에 청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르지 않다. 갚을 수 없는 빚은 탕감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은행이 무한정 숫자를 찍어낼 수 없도록 규제해야 한다.

 

 


물론 현실은 쉽지 않습니다. 금융 자본은 정부를 장악했고, 언론을 장악했으며, 심지어 경제학과까지 장악했습니다. 그들은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도덕을 가르칩니다. '빚을 탕감하면 도덕적 해이가 온다'고 말합니다.

허드슨은 반문합니다. 

 

 

"누가 더 부도덕한가?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빚을 포장해서 전 세계에 팔아치운 은행인가? 아니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빚을 탕감받으려는 서민인가?"



 

마치며: 가공 자본의 숲에서 길을 찾다

 

우리는 지금 '가공 자본'이라는 숲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은행이 만든 숫자들이 주식, 채권, 파생상품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주변을 떠다닙니다. 이 숫자들은 실물 경제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금융 자산의 가치는 실물 경제의 6배입니다. 전 세계로 보면 그 차이는 더 큽니다.

마르크스가 150년 전에 경고했고, 허드슨이 지금 증명하고 있는 사실은 이것입니다. 가공 자본은 결코 실물 경제를 대체할 수 없다. 언젠가는 현실과 대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면의 순간이 바로 '위기'다.

그러나 허드슨은 완전한 비관론자는 아닙니다. 그는 말합니다. 위기는 또한 기회라고.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는 뉴딜 정책이 왔고, 금융 규제가 생겼으며, 노동자의 권리가 강화되었습니다. 2008년 위기 이후에도 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씨앗은 이미 뿌려졌습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빚'이 무엇인지, '가공 자본'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조종하는지 아는 것. 그래야 그 게임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드슨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합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은 결국 갚지 않게 된다. 그것은 자연법칙이고, 물리 법칙이고, 경제 법칙이다. 아무리 많은 법률과 경찰과 감옥을 동원해도, 없는 돈을 짜낼 수는 없다. 그런데 현대 금융 체제는 정확히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이 체제의 광기이자, 동시에 우리의 희망이다. 왜냐하면 광기는 언젠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와 허드슨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입니다. 가공 자본의 숲에서, 진짜 길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