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프로메테우스가 되어 있었다. 바위에 묶여 있고, 독수리가 날아와 내 간을 쪼아 먹는다. 그런데 아프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아픔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감각처럼 느껴졌다. 몸이 움찔할 때마다 소름이 돋았고, 그 감각이 어딘가 기묘하게 반가웠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다. 꿈이었지만, 완전히 꿈 같지는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미 여러 번 저 독수리를 만나왔던 게 아닐까. 다만 그때마다 이름을 달리 불렀을 뿐. 피곤함, 귀찮음, 불안, 허전함. 그런 것들로.
알람이 울리고, 나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킨다. 이불 속은 여전히 따뜻하고, 바깥은 여전히 차갑다.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히 불쾌한데, 그렇다고 누워 있는 게 더 낫다고도 말할 수 없다. 계속 누워 있다 보면, 편안함은 점점 무색해지고, 대신 어떤 희미한 공허가 자리를 채운다. 그래서 결국은 일어난다. 별다른 결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커피를 내린다. 첫 모금을 마시는 순간, 짧게 숨이 놓인다. 아, 이거다 싶은 기분. 그런데 그 기분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금세 옅어지고, 사라지고, 나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잔을 생각한다. 하루에 몇 번이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 나는 그걸 별 생각 없이 ‘일상’이라고 부른다. 사실은 같은 원을 계속 맴도는 일인데도.
며칠 전 동물원에서 본 기린이 떠오른다. 우리 안을 천천히, 아주 일정하게 오가던 그 기린. 오른쪽으로 몇 걸음, 멈추고, 다시 왼쪽으로 몇 걸음. 옆에 있던 아이가 왜 저러냐고 묻자, 어른은 이렇게 대답했다. 원래 넓은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여기가 좁아서 그렇다고.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하게 마음이 걸렸다. 나는 어디서 살고 있는 걸까. 충분히 넓은 곳에 있는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우리 안을 오가고 있는 걸까. 더 넓어지면 괜찮아질 거라고 믿으면서, 사실은 같은 자리만 되풀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늘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불편한 건 바꾸고 싶고, 아픈 건 멀리하고 싶다. 그런데 지나간 시간을 떠올려보면, 또렷하게 남아 있는 순간들에는 어김없이 어떤 통증이 섞여 있다. 너무 좋아서 불안했던 순간, 잃을까 봐 겁이 났던 순간, 끝내고 나서야 겨우 숨이 쉬어지던 순간들.
그때의 감정은 분명 쉽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다시 떠올리면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때가 더 선명하게 살아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견딜 수 있는 어떤 형태의 고통 아닐까. 나를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남기는 쪽의 고통.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반복이 아니라, 작게라도 흔적을 남기는 시간들.
물론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귀찮고, 피하고 싶고, 더 편한 쪽으로 기울어진다. 커피를 또 마시고,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같은 자리를 맴돈다. 달라진 건 거의 없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또렷하게 느끼는 것은 있다.
완전히 편안하기만 한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아무런 불편도 없는 상태를 계속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편안함조차 의미를 잃는다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평소처럼 일어난다.
완전히 원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덜 흐려지기 때문이다.
독수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나는 이제 그것을 전부 피해야 할 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그 독수리와 너무 멀어지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잡아먹히지도 않은 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아직 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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