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꿀팁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도시 : 시티, 800년의 권력과 그 역사적 해체

 

 

제 의견은 여러분의 의견, 심지어는 옳은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말이죠.

 

 

이 글은 다음 세 가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 런던 시티(City of London)는 단순한 금융 지구가 아니라, 자체 정부, 법률, 경찰, 국기, 그리고 영국 의회와 정부로부터 독립된 운영 체계를 가진 하나의 제도적 실체입니다. 면적은 약 2.6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이곳은 800년 넘게 영국이라는 국민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국가 속의 국가'로 기능해 왔습니다.

 

둘째, 이 실체의 가장 핵심적인 생존 전략은 '눈에 띄지 않는 것'입니다. 얼굴 없는 위원회, 이름 없는 펀드, 공개되지 않는 예산, 그리고 대중 앞에 서지 않는 의사 결정자들. 19세기 로스차일드 가문이 '너무 유명해진 대가'로 금융 패권을 상실한 교훈을 시티는 완벽하게 내면화했습니다. 오늘날 시티에는 설립자도, 대변인도, 단일한 소유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셋째, 이 실체는 현재 해체되고 있습니다. 해체의 주체는 하나의 정당, 하나의 운동, 혹은 한 명의 정치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국 주도의 구조적 전환입니다. 영국 계약법의 지배력은 뉴욕법으로, 로이드 보험의 해상 독점은 미국 보험사들로, 런던금속거래소의 가격 결정권은 COMEX로, 영란은행이 모델을 제공한 중앙은행 체계는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 위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티가 만든 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틀 안에 담기는 내용물은 서서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미국으로 이동 중입니다.

 

그 해체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동시에, '왜 해체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묻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얼굴 없는 시스템은 반격할 수도 없습니다.

 

1. 시티의 정체성 : '이름 없음'의 역사적 기원

 

런던 안의 런던 아닌 도시

 

런던에는 '런던'이면서 '런던이 아닌' 하나의 도시가 있습니다.

 

면적은 약 2.6 km².비유하자면 '한국의 시티' 격인 여의도 크기입니다. 'City of London(이하 CITY)'는 자체 경찰력, 자체 법원, 자체 법률, 자체 국기, 그리고 영국 정부보다 수백 년 앞선 역사를 가진 독자적인 정부를 갖추고 있습니다. 런던 시장도, 의회도, 총리도 그곳에서는 아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이 도시는 1067년, 정복자 윌리엄이 런던을 장악한 직후 발급한 헌장에 의해 설립 칙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누가 이 도시를 설립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로마 시대부터 앵글로색슨, 노르만 시대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치 공화국'과 같은 이 성격은 우연도, 자연적인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의도된 것입니다.

 

마그나카르타 속의 특별 조항

 

CITY는 현존하는 마그나 카르타 사본들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1297년에 작성되었으며 에드워드 1세의 인장이 찍힌 이 사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City of London이 육지와 해상에서 누려온 모든 오랜 자유를 그대로 유지한다.

 

더 중요한 것은, CITY 마그나 카르타에서 '특별 보호를 받는 유일한 주체'로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1215년, 존 왕은 반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런던 거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는 그들에게 매년 시장을 선출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몇 주 후, 같은 반란으로 인해 존 왕은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티는 이 혼란을 틈타 영구적인 특권을 확보했습니다. 영어권 세계에서 '개인의 자유'의 토대가 된 이 문서는, 사실 시티를 어떠한 침해로부터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작성된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그나 카르타는 '개인의 자유'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원래는 봉건 영주들의 특권을 보호하기 위한 문서였습니다. '자유민'은 당시 인구의 10~15%에 불과했던 토지 소유 귀족과 성직자였습니다. 이 전통은 대서양을 건너 뉴욕 식민지로 이어져, 토지 소유 백인 남성만이 누리는 '뉴욕시의 자유'로 재탄생했습니다. 마그나 카르타에 선언된 그 자유는 '뉴욕시의 자유'와 같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다른 누구의 자유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교훈

 

한때 CITY에는 '눈에 띄게 존재했던' 한 가문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스차일드 가문은 영국 정부의 나폴레옹 전쟁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왕실이 금을 공급할 수 없게 되자, 웰링턴 장군의 군대에 금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1825년, 영란은행의 금 보유고가 바닥나 파산 직전에 놓였을 때, 이 사기업 가문이 영란은행을 구했습니다. 국가 통화를 관리해야 할 기관이 살아남기 위해 사기업 가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때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모든 거래에, 모든 정부 대출에, 모든 군대에 대한 보조금에, 모든 전쟁을 위해 발행된 채권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연락책들은 정부보다 빠르게 움직였고, 그들의 정보망은 유럽의 어떤 정보기관보다도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모습이 그들을 파멸시켰습니다.

 

 

1828년, 영국 의회 의원 한 명이 일어나서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유럽의 신용을 좌우하고 전쟁과 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단호하게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팸플릿, 신문, 정치 연설, 선전물에 등장했습니다.

 

이름이려지면 표적이 됩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유럽 금융 지배력은 1870년대에 무너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금이 고갈되어서가 아닙니다. 금융 시스템이 그들 없이도 자신의 기능을 재현하는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중앙은행이 과거 사설 은행 가문들이 담당했던 역할을 이어받았습니다. 기능 자체는 유지되었지만, 어떤 가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시티는 이 교훈에서 철저히 배웠습니다.

 

'기억 담당관'이라는 제도

 

이제 CITY에는 가족 이름도, 설립자도, 그들의 얼굴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067년에 세워진 헌장뿐입니다. 누구를 지칭할 수도 없고, 홍보 책자에 실을 인물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800년 동안 축적된 부는 어떤 투명성 법률의 적용도 받지 않는 기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그 부를 관리하는 많은 손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아니면 전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한때 로스차일드 가문은 눈에 보이는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제 시티는 아예 여기에 '개입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러한 ‘이름 없음’의 전략은 하나의 제도로 구체화되었습니다. 1571년 이후, 시티는 의회에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사를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그의 직함은 '상기시키는 사람'이라는 뜻의 '기억 담당관(City Remembrancer)'입니다.

 

기억 담당관의 임무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내리는 모든 결정이 시티의 권리와 특권을 보장하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법안을 감시합니다. 그의 부서에는 잠재적 법안을 조사하고 특별 위원회에서 증언하는 6명의 변호사가 있습니다. 2011년 기억 담당관의 예산은 600만 파운드였습니다.

 

소설 '보물섬'의 작가 니콜라스 삭슨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기관 로비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이름은 기억되지만, 그가 누구를 대표하는지는 기억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티가 로스차일드에게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이 '기억'의 실체를 추적하려는 자들은 곧 벽에 부딪힙니다. 기억 담당관의 예산은 CITY의 800년 기금인 'City's Cash'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2012년, 오큐파이 운동의 압박에 못 이겨 CITY가 처음으로 공개한 이 기금의 규모는 13억 파운드(약 2조 2천억 원)였습니다. 로드 메이어의 호화로운 해외 순방과 의회 로비 활동은 바로 이 '사설 기금'으로 운영됩니다. 그런데도 CITY는 이 기금이 '정보공개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버팁니다.*

 

2. 시티의 세계적 지배 — 법과 자본의 틀

 

시티가 구축한 법적 틀

 

CITY는 이 모든 것의 법적 틀을 구축했습니다.

 

영국 계약법은 다른 어떤 관할권보다 더 많은 국제 금융 계약에 적용됩니다. 이후에 전 세계 발행 국채의 거의 절반이 뉴욕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뉴욕 이전에는 런던이 있었습니다. 런던이 그 틀을 만들었고, 그 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영국 계약법은 자유로운 계약, 예측 가능한 판례, 당사자 자치 원칙에 기반합니다. 상사법은 선적, 보험, 어음 등 국제 거래에 필요한 법적 도구들을 제공합니다. 신탁법은 자산 관리와 펀드 구조의 핵심입니다. 이 법체계는 영국 제국 시절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독립 후에도 많은 국가들, 특히 영연방 국가들이 이 틀을 유지하거나 차용했습니다.

 

실제로 국제 금융 계약, 즉 파생상품, 대출계약, 채권발행, 재보험 등에서 영국법, 특히 잉글랜드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는 비율은 매우 높습니다. 대표적으로 국제스왑및파생상품협회(ISDA) 마스터 계약은 영국법과 뉴욕법을 양대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 채권 시장, 특히 정부의 국제채권 발행에서는 뉴욕법이 압도적 지배력을 가집니다. 추정컨대 전체 국제채권의 40%에서 50%가 뉴욕법의 적용을 받으며, 그 뒤를 영국법과 일본법이 잇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안이라 짚고 넘어 갈 부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주권 국가 안에 있는 여의도의 모든 기업과 거래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법률(상법, 민법 등)의 적용을 받습니다.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다고 해서 그 공간이 한국의 법적 관할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은 국내 거래의 경우이고 국제 거래는 예외적입니다. 외국계 기업 간의 계약에서는 시티의 "당사자 자치의 원칙"이 우선입니다.

 

즉, 국제 거래에서는 계약 당사자들이 의사를 합쳐 "이 계약은 영국법으로 하자" 또는 "뉴욕주법으로 하자"고 정합니다. 실제 사례를 하나 보여드리면, 네덜란드 본사와 한국 가맹점주 사이에 분쟁이 있었는데, 계약서에 "뉴욕에서 중재한다(arbitration in New York)"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한국 법원은 이를 유효하게 인정했습니다. 또 다른 판례에서는 미국 회사와 한국 회사 간 계약에 특별히 준거법을 정하지 않았지만, 법원은 "채무 이행지가 미국이므로 미국법을 따라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해상 운송 업계는 영국법과 뉴욕법이 실질적으로 지배합니다. 국제 해상 운송(용선 계약 등) 분야는 영국법의 영향력이 압도적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해운 회사들은 대부분의 계약에서 "English Law & Arbitration in London(영국법 적용, 런던 중재)" 조항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유는 영국에 수백 년간 축적된 해운 판례법이 방대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여의도의 한국 기업이 독일 회사와 거래할 때 '굳이 국내법을 안 쓰고 영국법을 쓰는 것'은 특수 상황입니다. 하지만 국제 해운업계처럼 사실상 영국법이 표준으로 굳어진 분야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습니다. 한국 법원은 '뉴욕 중재 조항'을 인정하는 만큼, 반대로 한국의 한 기업이 국제 계약에서 '서울 중재, 한국법 적용' 조항을 넣어도, 외국 법원이 이를 존중해 줄까요? 이 부분은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중요한 사항입니다.

 

 

뉴욕 이전에는 런던이 있었느니라

 

이러한 전환은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 그리고 1970년대 유로달러 시장의 폭발적 성장 속에서 뉴욕이 새로운 국제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여기에 뉴욕법이 함께 확산되었습니다. 뉴욕법은 영국법과 유사하게 판례법 기반의 예측 가능하고 유연한 상사법 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현재 뉴욕법이 누리는 지위와 역할을, 과거에는 영국법이 누리고 있었습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국제 금융 계약의 압도적 다수는 영국법의 적용을 받았습니다. 대영제국의 경제적 지배력, 시티의 금융 인프라, 영국 상사법의 '선진성(?)'이 그 이유였습니다.

 

영국법이라는 법적 틀 자체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아직도 전 세계 상당수의 국제 금융 계약, 특히 유럽, 영연방, 중동, 아시아 일부 지역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뉴욕법으로 많이 넘어는 갔지만, 영국법의 지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뉴욕법 자체가 영국법의 직계 후손이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법체계는 영연방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 영국 식민지와 달리, 로마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순수한' 영국 보통법의 계승자입니다. 따라서 '런던이 틀을 만들었고, 그 틀은 뉴욕법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브렉시트와 카타르 자본의 유입

 

그러나 문제는 이 두 축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뉴욕법이 영국법을 대체할 때, 시티의 실질적 영향력(이것이 구체적으로 누구의 손에 있는지는 그 누구도 말할 수 없지만)은 뉴욕으로 이동합니다.

 

2016년 브렉시트 투표는 바로 그 시티에서 버림받은 공동체들, 즉 농촌 지역과 과거 제조업 도시 출신 사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들은 시티의 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했지만 모든 비용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시티는 유럽 잔류를 선택했고, 시티에 의해 파괴된 사람들은 유럽 탈퇴를 선택했습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시티는 1조 1천억 파운드가 넘는 자산이 EU 금융 중심지로 이전되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파리는 EU 최대의 무역 중심지가 되었고, 골드만삭스는 파리가 유럽 최대의 무역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고 발표했습니다. ARM은 기업공개를 위해 뉴욕을 선택했고, 2022년 11월까지 파리의 기업공개 규모는 달러 기준으로 처음으로 런던을 넘어섰습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운 것은 걸프만의 자본이었습니다.

 

 

카타르의 대영국 투자

 

카타르 국부펀드는 더 샤드를 매입했습니다. 해러즈 백화점을 매입했습니다. 캐너리 워프를 매입했습니다. 또한 히드로 공항의 지분 20%, 런던 증권거래소의 지분 7%, 바클레이즈 은행의 지분 6.4%를 매입했습니다. 카타르의 대영국 투자 총액은 약 400억 파운드에 달합니다. 카타르는 영국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더 샤드는 서유럽 최고층 건물입니다. 카타르 투자청이 사실상 전체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런던의 상징적 랜드마크를 확보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해러즈는 세계적 명품 백화점으로, 2010년 약 15억 파운드에 인수되었습니다. '영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이 백화점을 카타르가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캐너리 워프는 런던의 제2금융지구로, 금융권의 핵심 부동산입니다. 카타르 투자청이 이곳의 대주주입니다.

 

히드로 공항의 20% 지분은 유럽 최대 공항이라는 영국 관문의 핵심 지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카타르 국부펀드(QIA)와 왕실(알사니 가문)은 런던 내 해롯 백화점, 더 샤드, 카나리 워프 등 주요 랜드마크와 부동산을 대거 매입하여, 2025년 기준 영국 왕실보다 런던 내 부동산을 더 많이 소유한 최대 외국인 지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런던 증권거래소의 7% 지분은 주요 금융 인프라에 해당하며, 런던 금융시장의 중심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바클레이즈 은행의 6.4% 지분은 영국 대표 은행 중 하나로서, 금융 시스템의 핵심에 영향력을 갖는 요소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CITY는 자본의 국적을 바꾸는 기술을 800년 전부터 터득해 왔습니다. 카타르 국부펀드는 그 기술의 최신 성과일뿐입니다.

 

이 외에도 카타르는 Sainsbury's 슈퍼마켓 체인의 지분, Claridge's 호텔 등 런던의 주요 숙박시설, BT 그룹의 통신 지분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카타르는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 '런던의 주요 부동산과 인프라를 장악한 지정학적 행위자'로 변모했습니다.

 

 

카타르의 에너지 압력 도구

 

400억 파운드는 약 52조 원(한화 기준)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영국 입장에서 카타르는 중동 최대의 주요 투자국 중 하나입니다. 영국으로의 중국 투자가 약 500억에서 600억 유로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 대비 극소형 인구(약 30만 명)의 카타르가 투자 규모 1위권이라는 점은 놀랍습니다. 이는 영국 정부가 카타르와의 외교적 관계를 특별히 관리하는 실질적 이유 중 하나입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 LNG 생산국 중 하나입니다. 영국은 유럽 내 가스 수요 대국이지만 자체 생산량은 부족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카타르의 LNG는 영국의 에너지 안보에 전략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20%는 단순한 시장 점유율을 넘어 영국의 난방, 발전, 산업 에너지의 핵심 비중입니다. 이는 카타르가 '에너지 무기'를 직접 휘두르지 않더라도, 협상 테이블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2022년, 런던 교통국은 인권 문제를 이유로 카타르 월드컵 기간 동안 월드컵 광고를 금지했습니다. 이에 카타르는 400억 파운드에 달하는 영국 지원금을 재검토하겠다고 위협했고, 영국은 결국 물러섰습니다. 시티 시장은 카타르를 "런던 증권 거래소의 주요 참여국"이라고 소개하고 양국 간 상호 이익을 강조하기 위해 도하를 방문했습니다.

 

300년 동안 세계 금융을 주도해 온 기관의 시장이, 자신의 도시 증권거래소를 유지해 준 국부펀드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걸프 지역을 방문한 것입니다.

 

 

 

3, 해체의 징후

 

(1) 팬데믹, 시스템의 스트레스 테스트

 

2020년과 2022년 사이, 현대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 모든 국가에서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제도화된 팬데믹 대응 시스템을 포기한 지도자들은 사망하거나, 해임되거나,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반면, 시스템을 준수한 지도자들은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이들의 후임 정부는 모두 즉시 세계보건기구(WHO)와의 협력, 백신 접종,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조율에 착수했습니다.

 

이 패턴은 시티가 직접 설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티가 다스리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탄자니아: 마구풀리 대통령은 백신 접종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WHO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코로나19 관련 데이터 공개도 거부했습니다. 부통령이 그가 심장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했을 당시, 그는 3주 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후임 대통령은 취임 후 4개월 만에 코로나19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백신 접종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부룬디: 은쿠룬지자 대통령은 WHO 직원들을 추방하고 팬데믹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20년 6월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후임자는 즉시 코로나19를 부룬디의 주요 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아이티: 모이즈 대통령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물량을 거부했습니다. 아이티는 인구 밀도가 비슷한 뉴저지주의 26,509명에 비해 코로나19 사망자가 482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2021년 7월 자택에서 외국 암살단의 총격을 12발 맞고 사망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의 암살 직후 아이티에 백신 지원을 제안했습니다.

 

이탈리아: 콘테 총리는 57%의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정보기관을 자신의 직할로 만들었습니다. 연립정부의 소수당 파트너는 코로나19 회복 기금 문제로 사퇴했고, 콘테는 실각했습니다. 이후 마리오 드라기가 유럽중앙은행 총재로 임명되었습니다. 선거 없이, 팬데믹 상황 속에서, 유럽에서 사망률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임명된 것입니다. 그는 즉시 이탈리아를 EU 기관들의 완전한 규정 준수 체제로 전환시켰습니다.

 

프랑스: 노란조끼 운동은 나라를 무릎 꿇게 만들었습니다. 60주간의 시위.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5%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1968년 이후 프랑스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노동자 봉기였습니다. 그러다 팬데믹이 닥쳤습니다. 시위는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 출신 은행가를 엘리제궁에서 몰아낼 뻔했던 이 운동은, 제도적 질서에 대한 다른 모든 위협을 제거한 바로 그 사건에 의해 무너져 내렸습니다.

 

브라질: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를 '가벼운 독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그는 백신 접종을 거부했고, 그의 행정부는 2020년 화이자가 브라질에 수천만 회분의 백신을 판매하겠다는 여러 차례의 제안을 무시했습니다. 그는 2022년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의 지지자들은 1월 8일 브라질 수도를 점거했습니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고 2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윤 대통령은 2024년 12월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치 활동을 중단시키고 언론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반역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미국: 한 평가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률이 5% 낮았더라면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을 것입니다. 그는 애리조나, 조지아, 위스콘신 주에서 승리했을 것입니다. 우편 투표자의 67.9%가 바이든을 지지했고, 현장 투표자의 58.3%가 트럼프를 지지했습니다. 팬데믹은 우편 투표를 확대하는 법적, 재정적 메커니즘을 만들어냈습니다. 우편 투표는 5개 주의 선거 결과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각국의 대응 방식은 달랐지만, 결과는 모두 동일했습니다. 팬데믹 대응을 위한 제도적 시스템을 저버린 지도자는 모두 해임되었고, 후임자 역시 모두 그 뒤를 따랐습니다.

 

시티는 군대를 파견하지 않습니다. 명령과 실행을 분리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복을 입은 군인 한 명 없이도,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곳으로 총검이 움직이게 만듭니다.

 

 

(2) 구조의 붕괴와 대체 (2020~2026)

 

 

이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시티가 수백 년에 걸쳐 구축한 구조들이 하나씩 무너지거나 대체되고 있습니다. 아래는 시간순으로 정리한 주요 전환점들입니다.

 

 

ㅡ브렉시트와 카타르 봉쇄 (2016~2021) :

 

브렉시트는 시티의 EU 시장 접근권을 상실시켰습니다. 시티는 해외 자본, 특히 걸프만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켰습니다.

 

그런데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은 카타르에 대한 페르시아만 봉쇄를 자신이 주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이집트는 카타르와 외교 및 무역 관계를 단절했습니다. 이들은 카타르의 유일한 육로 국경을 폐쇄했고, 카타르 항공의 영공 통과를 금지했습니다. 이 봉쇄는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브렉시트 이후 런던이 자본 유입을 가장 필요로 하던 시기에, 카타르에서 런던으로의 자본 흐름이 제한되었습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패배했고, 바이든이 집권했습니다. 봉쇄는 2021년 1월에 해제되었고, 카타르는 런던 자산 매입을 재개했습니다.

 

 

ㅡ 트럼프 2기: CBDC 금지와 연준 위기 (2025~2026)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동안 발표된 행정 명령들은 일관된 패턴을 보여줍니다.

 

첫날부터 미국에서는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 개발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영란은행은 파트너 중앙은행 시스템과 통합되도록 설계된 디지털 통화 인프라를 개발 중이었습니다. 이 금지 조치는 달러 상호 운용성을 차단하여 영란은행이 미국 금융 구조에 대한 디지털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동시에, 연방준비제도 의장 제롬 파월의 해임 서한 초안이 유포되었고, 법무부의 대배심 소환장이 제기되었습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2026년 5월에 만료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후임자 선정 기준은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을 재무부에 종속시키는 방향이었습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영란은행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지킬 아일랜드 회의 참가자들도 모두 영란은행의 구조를 연구했습니다. 만약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이 무너진다면, 330년 동안 중앙은행 제도를 지배해 온 런던 모델은 미국 지부를 잃게 됩니다.

 

ㅡ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폐쇄 (2026년 2월~) :

 

2026년 2월 28일, 이란과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폐쇄되었고, 카타르에너지는 모든 공급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했습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LNG 플랜트 일부가 미사일 공격으로 손상되었고, 카타르에너지는 복구에 최대 5년이 걸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더 샤드, 해러즈 백화점, 캐너리 워프, 그리고 런던 증권거래소 지분 7%를 소유한 카타르는, 영국에 약속했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런던을 살리기 위해 투자되었던 물자들은 폐쇄된 해협에 발이 묶였습니다. 생명줄이 끊어진 것입니다.

 

ㅡ 역사적인 로이드 보험의 독점 붕괴 (2026년 3월) :

 

 

이란과의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되자, 런던의 로이드 보험사는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대한 전쟁 위험 보험을 철회했습니다. 이 지역의 전쟁 위험 보험은 2026년 3월 5일 자정부터 사실상 중단되었습니다. 해협 통과 선박 수는 일주일 만에 81%나 급감했고, 약 1,000척의 선박이 발이 묶였습니다.

 

보험이 없으니 단 한 척의 배도 항구를 떠나지 않았고, 은행들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선박에 대출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1688년부터 이어져 온 런던의 해상 보험 독점은 심각한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48시간 만에 미국 보험사들이 개입했습니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가 로이드의 보험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미 해군은 유조선 호위를 시작했습니다.

 

300년 만에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 허브의 위험을 평가하던 기관이 미국의 대안으로 대체된 것입니다.

 

ㅡ 원자재 가격 결정권의 이동 (2022~2026) :

 

원자재 가격 변동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금과 은 가격은 미국 금고로 이동하고 있으며, 구리 가격은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COMEX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LME는 이미 취약성을 드러냈습니다. 2022년 3월, 니켈 가격은 80분 만에 톤당 29,000달러에서 101,000달러 이상으로 급등했습니다. 홍콩의 단 두 명으로 구성된 운영팀이 거래소의 주요 가격 보호 장치를 무력화시켰습니다. LME는 12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취소했습니다. 대형 펀드인 트랜스트렌드는 30년 만에 시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산업용 금속의 세계 가격을 결정하던 이 거래소는 2012년부터 홍콩 소유였습니다. LME가 실패했을 때, 그것은 다른 누군가를 대신하여 실패한 것이었습니다.

 

 

ㅡ 베네수엘라: 금과 석유의 운명 :

 

영국 중앙은행은 2018년부터 약 20억 달러 상당의 베네수엘라 금을 보유해 왔습니다. 트럼프가 과이도를 인정하자 영국은 베네수엘라 선출 정부에 금을 반환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영국 중앙은행은 오래전에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2026년 1월, 미 특수부대 델타포스가 카라카스에서 마두로를 체포했습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규모인 3,030억 배럴의 확인된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이 매장량에 진출했습니다. 석유는 미국 기업들의 몫이 됩니다.

영국 중앙은행은 여전히 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금은 더 이상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3) 공통의 패턴 :

 

이 일련의 사건들은 하나의 공통된 패턴을 보여줍니다.

위기가 발생하면, 미국 기반의 대안이 런던 기반의 기존 시스템을 48시간에서 몇 주 안에 대체합니다.

 

 

로이드는 미국 보험사로, LME는 COMEX로, 영란은행의 디지털 파운드는 미국의 CBDC 금지로, 카타르 LNG는 공급 자체가 차단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의 금은 영국에 있지만, 그 금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이 결정합니다.

 

해체는 '점진적 쇠퇴'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단절'의 형태로 옵니다.

 

4. 상징적 전환점 — 국왕의 워싱턴 방문 (2026년 4월)

 

 

 

2026년 4월 27일부터 4월 30일까지, 찰스 3세 국왕이 국빈 방문차 워싱턴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4월 28일 미국 의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했습니다. 이 연설은 영국 군주제로부터 미국이 독립한 지 250주년이 되는 날에 맞춰 진행되었습니다. 이후 영국 국왕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최하는 백악관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방문을 둘러싼 논란

 

영국 자유민주당 대표는 공개적으로 국왕의 워싱턴 방문을 취소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는 국왕의 워싱턴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또 다른 엄청난 외교적 성공으로 여겨질 것"이라며, "우리나라를 반복적으로 모욕하고 해친 사람에게 그런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국왕은 결국 방문을 강행했습니다. 영국이 트럼프보다 국왕의 방문을 더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있었던 일

 

국왕의 초청 이전에, 영국은 트럼프의 요청을 먼저 거절했습니다.

 

2026년 2월 27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하루 전, 트럼프는 영국령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와 유럽 주둔 미군 중폭격기 부대가 있는 글로스터셔의 페어퍼드 공군기지 두 곳을 공격 전진 기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습니다. 스타머가 이끄는 국가안보회의가 소집되었고, 재무장관을 비롯한 각료들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스타머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데일리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결정이 너무 늦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결정으로 인해 미군 항공기들이 몇 시간 더 비행해야 했다고 비난하며, "나토 이 겁쟁이들. 우리는 이를 기억할 것이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영국은 이란 드론이 바레인에 있는 영국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기지 방어 사용을 승인하는 등 결정을 부분적으로 번복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방문의 세 가지 단면

 

이 방문은 세 가지 층위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첫째, 외교적: 미국 독립 250주년을 영국 국왕이 축하한다는 것 자체가 역사적 역설입니다. 미국이 영국 왕정을 전복시킨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 영국 군주의 수장이 참석하는 것입니다.

 

둘째, 경제적: 로이드가 무너지고, 연준이 위기에 처하고, 카타르 자본이 사라진 바로 그 시점에 이루어지는 방문입니다. 미국 보험사들이 로이드를 대체했고, 미 해군이 유조선을 호위했으며, 미국 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확보했습니다. 영국은 관계 개선을 위해 국왕을 보냅니다.

 

셋째, 상징적: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전략으로 삼은 시티는, 결국 자신이 속한 국가의 군주를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는 존재'로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트럼프가 해군을 '장난감'이라고 불렀던 나라가, 그 말을 했던 사람과의 만찬 자리에 국가 원수를 보냅니다.

 

트럼프의 윈저 성 방문 (2025년 9월)

 

이보다 앞서, 트럼프는 2025년 9월 윈저 성을 방문했습니다. 금박으로 장식된 연회장, 군사 의식, 국빈 만찬. 모든 것이 갖춰진 행사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트럼프는 영국 해군을 '장난감'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부활절 만찬에서 총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조롱했습니다. 그는 스타머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회의 없이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지도자를 묘사했습니다.

스타머는 윈스턴 처칠이 아닙니다. 영국은 매우 비협조적이었습니다. 당신들은 해군조차 없잖아요.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해군이 필요 없어요.

 

 

트럼프는 정부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국왕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지 않았습니다. 그는 찰스 국왕을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찰스 국왕은 이란에 대해 매우 다른 입장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훌륭한 신사입니다.

 

이 장면이 의미하는 것

 

영국 국왕이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미국이 영국에 더 이상 왕정 체제를 원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날의 기념일에...

 

이것은 감상주의가 아닙니다. 전 세계 시청자를 위해 펼쳐지는 지배력 과시의 촌극입니다.

 

임대 계약이 이제 세입자에게 넘어갔다는 이유로, 예전 집주인이 세입자의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지켜보는 영국의 모든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이제 자신들의 국왕이 미국 대통령이 초대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론: 반격할 수 없는 이유

 

시티는 800년 동안 얼굴 없는 시스템으로 존재함으로써 하나의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거래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법적 틀, 금융 인프라, 전쟁 위험 평가, 상품 가격, 그리고 역외 자금 이동 경로를 제공하겠습니다. 대신, 우리의 이름은 결코 언론에 오르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기금은 투명성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시장은 선출된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거래는 300년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래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시티가 만든 틀은 원본으로 남았지만, 그 틀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주체는 더 이상 런던이 아니었습니다. 뉴욕은 같은 틀(영국 보통법의 직계 후손)을 사용하면서, 더 큰 시장, 더 강한 해군, 그리고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ㅡ 트럼프는 시티를 '공격'한 적이 없다

 

트럼프가 시티를 '공격'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는 연준을 공격했습니다. 나토를 공격했습니다. 로이드를 대체했습니다. 원자재 가격을 서부로 이동시켰습니다. CBDC를 금지했습니다. 카타르 봉쇄를 주도했습니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미국 기업들의 몫으로 만들었습니다.

 

조각조각 해체될 때까지, 아무도 '이것이 시티의 해체였다'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ㅡ 이것이 시티가 반격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공격할 대상을 지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티는 결코 하나의 표적이 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800년 동안의 강점이었지만, 지금은 약점이 되었습니다. 얼굴 없는 시스템은 공격받지 않는 대신, 자신이 해체되어도 항의할 수 없습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름이 알려져서 쇠퇴했습니다. 시티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해체되고 있습니다.

 

ㅡ 이제 남은 것

 

시티는 800년에 걸쳐 너무나 복잡한 통제 시스템을 구축했기에, 그 시스템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로스차일드 가문보다 오래 살아남았고, 대영 제국보다 오래 살아남았으며, 그것을 개혁하려 했던 모든 정부, 그것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던 모든 총리, 정보공개법에 따라 정보 공개를 요청하고 형식적인 답변만 받았던 모든 탐사 저널리스트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시티는 그렇게 하면서 자기 나라를 망쳐버렸습니다.

 

제조업 도시들은 결코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브렉시트로 인해 생긴 남북 간의 격차는 이제 구조적인 문제로 굳어졌습니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노동자 계층이 시티에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금융계는 이 메시지를 듣고 즉시 EU 시장 접근권을 확보할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습니다.

 

 

ㅡ 마지막 역설

 

마그나 카르타는 결국 미국 헌법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마그나 카르타는 시티의 소유입니다. 시티는 1215년에 그 문서에 자신들의 보호 조항을 명시했고, 800년 동안 이를 보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티는 그 자유의 문서를 자신들에게만 적용했을 뿐, 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시티는 흐름에 순응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질문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대출, 조건, 준수 시스템, 언론 보도, 팬데믹 프로토콜, 투표 메커니즘 등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시티는 이들을 위해 지어진 곳이 아닙니다.

 

정치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권리가 있었던 적도 없습니다. 그들은 단지 사람들이 누가 자신들에게 그런 권력을 주었는지 묻는 것을 멈추도록 충분히 설득할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스템은 아무도 반격하지 않는 사이에 조용히 해체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