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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병리학

심리적 관점에서 애국심에는 나쁘거나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이해되는 애국심 그 자체는 정상적이고 건강하며, 한 개인이 자신의 영혼 및 자신의 기원, 경험, 조상, 자신이 전달하는 문화와 전통과 싸우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궁극적으로는 같은 애국심을 가진 다른 사람을 사랑까지 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조국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거니 더 나아가 증오하는 것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실, 그 나라에 살면서 그 나라의 자연과 문화, 매일 들려오는 언어 소리에 기쁨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소나무를 매일 보면서도 미워한다면, 본질적으로 당신은 감옥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국에 대한 사랑은 정상적이고 심지어 건설적인 상태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당신의 선택이나 공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입니다. 조국은 그냥 내다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을 미워할 수는 있지만 그 문화와 역사를 완전히 등지고 다른 문화의 전달자가 되고 다른 역사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핵심적이고 매우 고통스러운 문제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조선인이 되는 것을 그만두고 싶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조국, 문화 및 역사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자원이 허비됩니다. 그러한 환상을 조성하는 모든 종류의 잡다한 개념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정체성은 임의적이기 때문에 허망하며(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삶의 지혜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데 있다(에센셜리즘)라든지, 인간의 행동과 발달의 사회문화적 요소들이나 성별에 대한 개념을 희석시키는 데 사용되는 다양한 형태의 생물다양성 개념(생물학적 성별은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특정 국가의 노선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국민들에게 강요되는 서구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개념과 같은 것들이 특정 문화, 전통, 역사, 그리고 물론 오늘날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심지어 성별까지 변화시키려 듭니다. 

 

따라서 조화로운 개인의 정체성을 갖고 싶다면 조국을 사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실제로는 여성이라고 어느 날 갑자기 결정하는 남성과 유사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애국심, 즉 조국에 대한 사랑이 기본이지만 조국에 대한 투쟁은 본질적으로 자신과의 투쟁이며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매우 불안정한 토대 위에 또는 아예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이 토대는 스스로를 "글로벌 지식인"의 일부라고 굳게 믿고 국적, 역사, 미학, 종교, 문화, 심지어 성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때 덜 흔들립니다. 안락사의 대중화와 진보적인 젊은이들을 위한 소위 "죽음의 행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애국심은 매우 정상적이며 조화로운 개인 정체성의 필수 요소입니다. 조국에 대한 왜곡되고 추악한 사랑(조국에 대한 가짜 사랑으로 낯선 사람이나 외국인에 대한 부당한 증오, 그리고 조국의 진짜 적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적으로 보는 편집증)은 비정상입니다. 그들은 적이 없는 곳에서 적을 보고(제1종 오류, 거짓 양성), 적이 있는 곳에서 적을 보지 못합니다.(제2종 오류, 거짓 음성) 조국에 대한 그러한 불건전한 사랑의 예는 오컬트 애국심입니다. 

이들의 조국은 어디일까

 

조국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애국심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사랑도 건전한 활동과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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