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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예측 가능한 고통을 만들어내는 삶의 의미

 

삶의 의미?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찾은 사람들을 보면 – 돌고래를 구하겠다거나, 큰 사업을 이룬다거나, 아이를 훌륭하게 키운다거나, 신을 섬기는 일 – 이런 것들에 매우 집중되어 있고, 생산적이며, 눈을 반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 삶의 의미가 바로 그 비밀스러운 소스구나. 그것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삶의 의미는 마치 건물의 지지 구조(하중을 받치는 뼈대)와 같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인격이라는 건물이 일상의 무게에 쉽게 무너지지만, 그것이 있으면 어떤 지진에도 견딜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삶의 의미에 대한 정의는 너무나 다양하고 서로 모순됩니다.

 

ㅡ 어떤 이는 신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고,

ㅡ 어떤 이는 최대한 즐겁게 사는 것(쾌락주의)이라고 하고,

ㅡ 어떤 이는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자기실현)이라고 하고,

ㅡ 어떤 이는 사회에 유용한 일을 하는 것(공헌)이라고 하고,

ㅡ 어떤 이는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스토아학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신을 섬기는 것과 쾌락은 양립하기 어렵고,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이 사회적 의무와 충돌할 때도 많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짜일까요?

 

 

 

그런데 뜻밖에도, 삶의 의미 없이도 잘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술 한 잔 하고, 티비 보고, 주말엔 낚시 가고... 이런 사람들은 삶의 의미 같은 거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름 괜찮게 삽니다.

 

오히려 철학자들은 그런 사람들을 '유치한 사람'처럼 바라보지만, 정작 그들은 별 문제없어 보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삶의 의미가 정말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그것 없이도 평범하게 잘 살까요?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사람들은 왜 갑자기 그렇게 '꽃피는' 것처럼 보일까요?

 

 

 

 

삶의 의미: 현실을 단순화하는 '인지적 필터'

 

삶의 의미란, 내 경험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주는 개인적인 프레임워크(틀)입니다.

이 프레임워크는 의식의 혼란(엔트로피)을 줄여주고, 내가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쉽게 말해, 삶의 의미는 세상을 단순하게 보게 해주는 안경입니다.

 

이 안경을 쓰면 "내가 뭘 해야 할지"가 명확해지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덜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도 사실은 나름의 프레임워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냥 편하게 사는 것", "즐거움을 쫓는 것" 같은 암묵적인 틀이죠. 아니면 그들은 혼란(엔트로피)을 잘 견디는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현대인들은 삶의 의미가 없으면 괴로워할까요? 진짜 원인은 '선택 과잉'입니다

 

과거에는 굶주림이나 전쟁 같은 생존 문제가 있었습니다. 선택지가 거의 없었죠. 그런 환경에서는 삶의 의미 같은 게 없어도 그냥 살아남으면 됐습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다릅니다.


배부르고 안전합니다. 문제는 선택지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ㅡ 어떤 직업을 가질까?

ㅡ 어떤 취미를 가질까?

ㅡ 어떤 사람과 연애할까?

ㅡ 돈을 어디에 투자할까?

 

 

모든 선택지가 나름 괜찮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쾌락 적응(같은 수준의 즐거움에 곧 익숙해지는 현상)이 문제를 키웁니다. 오늘의 '괜찮음'은 내일이면 지루한 루틴이 되어, 다시 새로운 선택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뇌는 계속 비교하고 예측(기대)하고 후회합니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여기서 도파민(신경전달물질로, '쾌락 호르몬'이라고 잘못 알려짐)의 진짜 역할이 중요합니다.

 

 

 

도파민의 진실: '쾌락'이 아니라 '갈망'과 '예측'

 

흔히 도파민을 '기쁨을 주는 호르몬'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것은 오래된 오해입니다. 도파민은 보상을 얻었을 때가 아니라, 보상을 예측할 때 분비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두고 "곧 먹겠구나!" 하고 기대할 때 도파민이 올라갑니다. 실제로 먹을 때는 오히려 줄어듭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기대' 또는 '갈망'이라는 상태는 신경생물학적으로 고통입니다. 당신이 뭔가를 간절히 원할 때, 사실은 '그것이 없어서 불편한 상태'인 겁니다.

 

ㅡ 비싼 가방을 사고 싶다 → 지금 없어서 불편함 (=고통)

ㅡ 연인을 만나고 싶다 → 지금 없어서 외로움 (=고통)

ㅡ 배가 고프다 → 음식이 없어서 고통

 

 

갈망은 그 자체로 고통입니다. (이 메커니즘의 핵심 부위는 뇌의 기쁨 핵(nucleus accumbens) 복측 피개 영역(ventral tegmental area)입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고통도 많다

 

현대인은 선택지가 넘칩니다.


그러면 뇌는 계속해서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은데...' 하며 비교하고 예측합니다. 그러면 그만큼 갈망-고통이 무작위로, 예측 불가능하게 쏟아집니다.

 

이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FOMO(놓칠까 봐 두려움) 라고 부릅니다. 선택 하나를 하면 다른 좋은 기회들을 놓친다는 불안이죠.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굳이 그래야 할까? 뷔리당의 당나귀(두 건초더미 사이에서 선택 못 하다 굶어 죽는 당나귀 우화)처럼, 배부른 세상에서 왜 스스로를 옥죄는가? 보통 사람은 그냥 아무거나 골라도 되지 않나?"

 

 

하지만 문제는, '그냥 아무거나 골라도 되는' 상황 자체가, 쾌락 적응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현대인의 진짜 고통은 '삶의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발생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고통'과 '예측 가능한 고통'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행동은 사실 이렇습니다:

스스로에게 "나는 인생의 99%는 무시하고, 이 한 가지만 할 거야"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삶의 의미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선택지(예: 예술가, 여행자, 쾌락)는 '의미 없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죠.

 

그 결과:

 

ㅡ 예전 상태: '사업할까? 예술할까? 가정에 집중할까?' → 무작위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고통

ㅡ 의미 적용 후: '사업하는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야근, 경쟁, 스트레스)' → 이미 예측 가능한, 익숙한 고통

 

 

뇌는 이런 예측 가능한 고통을 훨씬 더 잘 견딥니다. 이것이 삶의 의미를 '획득한' 사람들이 갑자기 안정감을 느끼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행복해진 게 아니라, 고통의 종류를 단순한 것으로 교체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사기(금전적 목적이 있습니다.)'가 숨어 있습니다.

 

철학자와 자기 계발 코치들은 이런 과정을 이렇게 포장합니다.

  1. 먼저, 건강한 사람들에게 "너는 실존적 공허(존재의 허무함)라는 병에 걸렸다"라고 말합니다.
  2.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미 선택 과잉으로 어느 정도 불안이 있던 상태였죠.
  3. 철학자들은 "그래, 바로 그 불안이 병의 증상이다!"라고 선전합니다.
  4. 그리고 약을 처방합니다: "네 삶의 의미를 찾아라."

 

그 사람은 의미를 찾아 안대를 쓰고, 선택지를 줄이면, 원래 가지고 있던 선택 과잉의 고통이 줄어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외칩니다 : "삶의 의미가 나를 구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병 걸리기 전의 정상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만든 병이 가짜였다면, 당연히 그 약도 가짜입니다.

 

 

 

'의미'는 처음부터 없었다

 

진화를 봅시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지능을 가진 인간이 나타나기 위해 진화했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진화는 그냥 닥치는 대로 변이가 일어나고, 우연히 잘 살아남은 것들이 남은 과정입니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당신의 조상들이 계속해서 성공적으로 번식했고, 당신이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위대한 계획'도, '목적'도, '의미'도 없습니다. 마치 주사위를 굴렸더니 6이 나왔는데, 그 6이 무슨 깊은 의미를 갖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의미는 항상 미래를 향한 목표를 설정합니다.

"나는 ~을 이루기 위해 산다."

 

 

그런데 미래는 근본적으로 예측 불가능합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처럼, 아주 작은 수준에서도 예측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런 목표는 실제로는 허구입니다.

 

 

삶의 의미는 결정 장애인을 위한 멘탈 지팡이(인지적 의수)

 

정리하면:

 

ㅡ 현대인의 고통은 선택 과잉 때문에 생깁니다.

ㅡ 삶의 의미는 그 선택지를 인위적으로 줄여서, '예측 가능한 고통'으로 바꿔줍니다.

ㅡ 고통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예측 가능해져서 견딜 만해지는 것입니다.

ㅡ 철학자들이 '실존적 공허'라는 병을 만들어서 팔았습니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굳이 찾고 싶다면, 그것은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세요.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면 착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도구를 '절대적인 진리'나 '우주적 사명'으로 착각하지는 마세요.

당신은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태어났고,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있을 뿐입니다.

 

 

PS : 인생의 의미라는 책 제목을 보고 쓴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