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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우리는 왜 고통받는가 (그리고 어떻게 고통을 멈출 것인가)

손가락을 한번 탁 튕기는 것만으로 인류 전체가 행복해지는 사회를 바로 지금 건설할 수 있습니다. 믿기지 않으십니까? 당연히 믿기지 않으실 겁니다. 정말 그럴 수 있었다면 진작에 만들어졌을 테니까요.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딱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는 외부의 객관적인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인류 초기 고대 국가가 형성되고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미 쓸모가 없어졌음에도 여전히 우리 머릿속에 남아있는 주관적인 필터와 비이성적인 통제 구조(진화의 유산) 때문입니다.

 

ㅡ 첫 번째 장애물: 우리의 모든 고통이 '욕망(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ㅡ 두 번째 장애물: 이 첫 번째 사실을 간신히 인지하는 순간, 우리 마음이 즉각적이고 격렬하게 그 사실을 거부해 버리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여러분도 정확히 이 두 가지 거부 반응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지금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정말 좋은가(행복한가)?"

 

아마 여러분의 대답은 "아니다", "그저 그렇다", 혹은 "완벽하지는 않다"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대개는 "무언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소득이 적어서, 좋은 배우자가 없어서, 건강하지 못해서, 남들에게 무시당해서, 혹은 재미있는 즐길 거리가 없어서라는 이유를 댑니다.

 

단언컨대, 그것은 당신의 뇌가 꾸며낸 뻔뻔하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왜 거짓말일까요? 지난 수백 년간 인류의 과학 기술과 문명은 우리의 생활 수준을 몇 배나 끌어올렸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느끼는 행복의 총량은 단 1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무기질 가득한 순무나 쪄 먹으며 우리 같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도, 지금의 우리만큼은 행복해했고 불행해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언가 부족해서 불행하다"라는 설명은 절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범인은 누구일까요? 

 

 

1. 환상 속 경제학: 왜 '더 많이' 가져도 더 좋아지지 않는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소냐 류보미르스키(Sonja Lyubomirsky)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느끼는 행복 중 소득, 사회적 지위, 주거 환경 같은 외적 조건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10%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90%는 타고난 유전적 성향과 더불어,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행동 및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역설적인 점은, 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행복도가 올라가는 것은 오직 '기본적인 생존 욕구(의식주)'가 충족되는 시점 까지라는 사실입니다. 그 기준선을 넘어서는 순간 행복 곡선은 완전히 정체(플래토, Plateau) 상태에 머물게 되며, 오히려 자산을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과 불안 수치만 치솟게 됩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과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등이 진행한 유명한 심리학 연구가 있습니다. 연구진이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가장 부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던졌을 때, 충격적으로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현재 겪고 있는 불행과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가 더 필요하냐는 질문에, 두 집단 모두 약 '3배의 돈'이 더 필요하다고 답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월 200만 원을 버는 이에게는 600만 원이 필요합니다.
월 1억 원을 버는 자산가에게는 3억 원이 필요합니다.

 

 

돈의 액수만 다를 뿐 뇌의 메커니즘은 정확히 같습니다.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기준선이 소득과 가능성의 성장에 맞추어 똑같이 위로 이동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저 멀리 도망치는 지평선을 잡으려고 평생 달리는 끝없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셈입니다.

 

이쯤 되면 여러분은 "왜 나를 바보로 만들려고 하느냐?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치는가?"라며 분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당황하지 마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장난을 치고 있는 주체는 바로 당신의 뇌입니다.

 

2. 도파민의 함정: VTA와 가치 절하 메커니즘

 

 

우리 머릿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우리가 이뤄낸 모든 성취와 승리, 그리고 손에 넣은 모든 물건의 가치를 아주 완벽하게 깎아내리는(익숙해져서 무덤덤하게 만드는) 범인을 찾아야 합니다. 심지어 승리가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그 뒤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가치 절하의 크기도 비례해서 커집니다. 이것이 아니고서는 물질적으로 모든 것을 풍족하게 누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겨우 5~10% 정도밖에 더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 잔인한 과정을 담당하는 부위가 바로 복측 피개야(VTA, Ventral Tegmental Area)와 이와 연결된 뇌의 보상 체계(Reward System)입니다. 이 시스템은 우리가 원하는 물질이나 목표를 손에 넣은 직후에 쾌감을 뚝 끊어버릴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이미 아주 일찍 고통(결핍감과 디스크포트)을 만들어 냅니다.

 

핵심 메커니즘:

고통은 원하던 쾌락을 즐기고 난 후(기쁨이 사라진 후)에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저걸 가지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치는 바로 그 순간 발생합니다.

 

 

당신이 새로운 자동차, 직장에서의 승진, 혹은 매력적인 이성과의 사랑을 욕망하는 순간, 당신의 뇌는 현재 당신의 상태를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전환해 버리고,.

 

욕망(원함) = 결핍 = 고통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더 자세한 뇌과학적 원리는 신경불교학 등에서 다루어집니다.)

 

 

이 원리는 현대의 수많은 심리학적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해 줍니다. 2025년 킴과 말리오(Kim & Maglio)의 연구에 따르면, 미래에 얻게 될 '좋은 것들(보상)'에 대해 더 강렬하고 오랫동안 상상하는 사람일수록, 아무런 욕망 없이 현재에 머무는 사람들에 비해 스트레스 수치와 삶의 불만족도가 훨씬 더 높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약 중독을 일으키는 생화학적 회로와 완전히 동일한 메커니즘입니다. 마약 중독자는 마약을 투약하는 첫 순간이나 마약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에서만 도파민([Dopamine]: 뇌에 쾌감과 의욕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로 반짝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 뒤에 남는 것은 극심한 고통과 금단 증상, 그리고 더 큰 자극이 있어야만 겨우 고통이 상쇄되는 '내성(Tolerance)'뿐입니다.

 

문명사회에 사는 우리 모두는 물질, 음식, 타인의 인정 등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소비 중독자 집단'입니다. 우리는 소유하는 물질의 양(용량)만 늘릴 뿐 전혀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과거 풍요로웠던 시절에 누리던 안락함에서 단 10%만 줄어들어도 미칠 듯한 짜증과 분노를 뿜어냅니다. 현대인들은 뇌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이 결핍감을 메우기 위해 자신이 가진 에너지의 80%, 90%, 심지어 110%를 쏟아붓습니다. 그러고도 결국 번아웃(Burnout, 극심한 심신 피로와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가장 중요한 본질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불편함과 모든 고통은, 오직 무언가를 더 얻고 싶고, 무언가 대단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물질적 욕망 때문에 발생한다"라는 진실을 깨닫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것입니다.

 

원리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의 나는 부족해", "내겐 이게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그 생각을 안 했을 때보다 지금 이 순간의 기쁨 지수는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당신이 꿈꾸는 미래가 실제로 도래하더라도 그곳에 진정한 기쁨은 없습니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리는 새로운 레이스가 기다릴 뿐입니다. 미래의 행복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이며, 오직 끝없는 "조금만 더"의 연속일 뿐입니다.

 

 

ㅡ 예시 1 (연인과 부부): 왜 뜨겁게 사랑하던 부부들이 시간이 흐르면 사소한 일로 싸우고 이혼하게 될까요? 역설적이게도 두 사람이 연애 시절(연애 초기 꽃다발을 주고받던 시기)에 서로에게 '달콤한 기쁨'을 기대하도록 뇌의 기대치 메커니즘을 너무 강력하게 작동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즉, 기대치(욕망)가 높아진 만큼 필연적으로 고통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ㅡ 예시 2 (청소년기 사춘기 폭발): 만 11세에서 13세 사이가 되면 인간의 도파민 중심 회로가 급격히 성숙합니다. 대규모 아동 청소년 뇌 발달 연구(ABCD Study)에 따르면, 이 시기에 인간이 느끼는 기저(배경에 깔린 기본적인) 행복감이 급격히 추락하며,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어서도 그 이전 어린 시절의 순수한 행복 수준으로는 영영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욕망의 회로가 커진 대가입니다.

 

ㅡ 예시 3 (직장인의 번아웃): 한 직장인이 모니터 주변에 값비싼 피규어나 성공의 상징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고, 매일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먹으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하지만 갈수록 일은 하기 싫어지고 무기력해집니다. 인위적인 보상물들이 도파민 자극을 지나치게 격발 시켜, 자극이 없는 순수한 업무 자체를 더욱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공간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입니다.

 

ㅡ 예시 4 (계급적 패배주의): 사람들은 흔히 "행복이나 안락함은 돈 많은 부자들만 누리는 특권이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억만장자 부자들도 자신의 뇌가 파놓은 3배수의 함정에 갇혀 똑같은 결핍감을 토로합니다. 멈추지 않는 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닫힌 루프(Loop)입니다.

 

 

 

3. 고통을 멈추는 유일한 열쇠: 마음챙김과 인지치료

 

오직 이 마음의 메커니즘을 온전히 꿰뚫어 본 사람들만이 고통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2500년 전에 인간의 고통을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현대 심리학에서 치료 효과가 가장 과학적으로 검증된 인지행동치료(CBT), 특히 마음챙김 기법과 수용을 강조하는 수용전념치료(ACT)가 바로 그 해결책입니다.

 

이 치료법들은 외부 세계를 억지로 바꾸려고 처절하게 발버둥 치지 않습니다. 대신 '욕망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바꿉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위대한 진실을 가르쳐 줍니다.

고통은 당신이 원하는 물건이나 환경이 없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절실히 원하는 마음(집착)' 그 자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현대인의 고질병인 우울증, 불안 장애, 번아웃 증후군은 삶에 무언가 '좋은 보상물(달콤한 것들)'을 더 많이 집어넣는다고 치료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것들을 채워 넣어야만 한다는 내면의 강박(요구 조건)을 과감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됩니다.

 

 

4. 왜 우리는 이 진실을 이토록 격렬히 거부하는가?

 

 

자, 이제 원리를 다 알았으니 지금 당장 욕망을 내려놓고 행복해질 준비가 되셨습니까?

 

아마 대부분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거부감이 솟구칠 것입니다. "말도 안 돼! 원하는 걸 손에 넣었을 때 분명 짜릿하고 행복했단 말이야. 나는 그저 지금보다 수입이 3배 늘어나고, 완벽한 배우자를 만나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를 사서 멋지게 살고 싶을 뿐이야..."라며 격렬히 반항하고 싶으실 겁니다.

 

우리는 왜 이 진실에 이토록 격렬하게 분노하고 저항할까요?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이 가진 치명적인 오류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과거에 맛보았던 강렬하고 짜릿했던 단기적인 도파민의 정점(Peak)들만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첫 월급을 받았던 날의 짜릿함, 첫사랑과 입맞춤하던 순간의 떨림, 처음 술을 마셨을 때의 해방감 같은 것들 말입니다.

 

반면, 그 짜릿한 순간이 지나간 뒤에 필연적으로 찾아왔던 기나긴 기저에 깔린 고통, 지루함, 공허함, 무기력감은 뇌가 부지런히 지워버리거나 무시해 버립니다. 진화론적으로 뇌가 이렇게 세팅되어야만 인류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냥하고 영토를 넓혀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납고 굶주린 크로마뇽인이 온순하고 만족할 줄 알았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생존이 보장된 현대사회에서 이 진화의 메커니즘은 완전히 오작동하며 인류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인간은 여전히 결핍이라는 고통을 연료로 삼아 달리는 도파민 중독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5. 진정한 원인: 가짜 주인공 '나(Self)'를 잃어버릴 것 같다는 공포

 

 

우리가 이 진실을 거부하는 가장 깊은 심연에는 '자아(Ego)를 상실할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공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뇌과학자 벤자민 리벳(Benjamin Libet)의 유명한 실험과, 이후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전자기파를 통해 뇌 혈류를 측정하여 뇌의 활성 구역을 눈으로 보여주는 장치)를 활용한 춘 시옹 순(Chun Siong Soon) 교수 연구팀의 실험들은 인류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인간이 어떤 결정을 내리기 수초 전에, 이미 무의식(뇌의 심층부) 영역에서 결정이 끝난 상태라는 점이 밝혀진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이성)은 그저 무의식이 내린 결정을 한발 늦게 보고받은 뒤, 후행적으로 "내가 그렇게 결정했어", "내가 그렇게 느낀 거야"라며 보고서를 쓰고 가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낼 뿐입니다.

 

뇌는 자신이 이 몸과 삶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나(Self)'라는 가상의 아바타(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나'라는 가짜 캐릭터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야망들을 덕지덕지 이어 붙여서 만든 허상입니다. 그렇기에 이 캐릭터는 자신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를 느낍니다.

 

당신은 당신의 '나'라는 캐릭터가 외부의 좋은 조건들을 얻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고, 그러려면 더 많은 도파민을 얻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나'라는 캐릭터는 욕망과 행동을 처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 화면(인터페이스)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욕망이 모든 악의 근원이며 고통의 원인이다. 그러므로 욕망을 지워야 한다"라는 진실은, 가짜 캐릭터인 '나'의 존재 기반 자체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위협이 됩니다. 욕망을 다 지워버린다면 대체 '나'는 누구란 말입니까? 내 개성과 주관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요?

 

이때 위험을 감지한 뇌는 의식에게 긴급 명령을 내립니다.

어떤 궤변을 늘어놓아도 좋으니, '나'라는 캐릭터의 존엄성을 지켜낼 변명거리를 찾아내!

 

 

이 명령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자기 합리화를 시작합니다.

욕망을 버리면 아무런 의욕도 없는 식물인간(아메바)처럼 될 거야.
인간의 위대한 욕망과 야망이 있었기에 인류의 과학과 문명이 발전한 거잖아!

 

 

참으로 우스운 변명입니다. 뇌는 왜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왜 힘들게 살아가냐?"라는 말에는 정색하면서, 욕망이 사라진 삶에 대해서는 이토록 끔찍한 공포를 조장할까요? 죽음 역시 자아를 위협하지만 우리는 태연하게 잘 살아갑니다. 즉, "욕망이 없으면 삶이 망가질 것"이라는 두려움은, 뇌가 자아를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연출해 낸 또 하나의 '방어적 환상'일뿐입니다.

 

우리 옛 선조들이 추구했던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선비'들을 보십시오.  그는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헛된 욕망을 부추기지 않고, 그 욕망의 부재(고요함)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며 소파 위에 누워 절대적인 평온을 누릴 줄 알았던 인물입니다. 반면, 현실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에 스스로 고통을 생산해 냅니다.

 

6. 결론: 지금 이 순간, 욕망 없는 존재의 기쁨으로

 

 

이것이 바로 현대 인류가 마주한 가장 거대한 문명적 대실패(PROVAL)입니다. 과학을 발전시키고, 테크놀로지를 고도화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하늘 끝까지 끌어올렸지만, 우리는 단 일 그람(1g)도 더 행복해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숭고한 기쁨, 조용한 저녁 시간에 누리는 평화, 정직한 노동이 주는 보람 같은 인생의 소박하고 본질적인 일상의 행복들이 우리에게는 오히려 지루하고 짜증 나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우리의 비대해진 욕망의 괴물이 현실에서는 도저히 마주할 수 없는 파괴적인 용량의 도파민 투여만을 매일 울부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 세속의 명예를 모두 거절하고 초야에 누워 유유자적하며, 욕망의 부재(혹은 욕망이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를 기뻐할 줄 알았던 조선의 은둔 처사들처럼 말입니다. 진정한 인간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바로 욕망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류 문명의 가장 큰 실패입니다. 과학, 기술, 오락을 하늘 높이 발전시켰지만, 우리는 조금도 더 행복해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조용한 저녁 시간, 정직한 노동과 같은 소소하고 일상적인 기쁨은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쾌해졌습니다. 우리의 과도하게 팽창된 욕망 체계가 현실에 비해 과도한 욕구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무엇이 옳은지 알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이 꿈꾸었던,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대동(大同) 세상'의 비전처럼, "모두를 위한 행복, 무료 제공, 그리고 누구도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은 완벽하게 현실적인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