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이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닙니다. 46년이 지났지만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정치 혁명조차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1789년 프랑스 자유주의 혁명으로 시작되는 현대 서구 정치사에 대한 저의 생각은 많은 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평범한 프랑스인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될수록 많은 프랑스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그러면 우리는 깜짝 놀랍니다. 그들은 자기네 혁명에 대해 별로 배우지도 못했고, 특히 로베스피에르와 당통 시대에 대해서는 더더욱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평균적인 프랑스인이 암묵적으로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느낀다 하더라도) 프랑스혁명의 주요 원칙을 공고히 하고 수호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공헌을 한 사람, 즉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도록 지시받습니다.
그들은 19세기 중후반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탄생이 이란, 인도, 아일랜드 등지에 의도적으로 기근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불평등과 재앙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3세계를 만들어낸 역사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합니다. 아돌프 티에르를 아느냐고 물어보세요. 마찬가지로 누구를 말하는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럴 때는 독일 제국의 비스마르크와 협력하여 1871년 파리 코뮌으로 알려진 사건에서 수개월 동안 프랑스 수도를 포위 공격했던 프랑스 자유주의 정치가라고 알려주세요.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반역성은 보상을 받는 만큼 은폐됩니다. 티에르는 프랑스 제3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입니다.
이는 일반 프랑스인의 지능을 폄하하려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서구인들은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일상적으로 강요하는 자국 내 지적 기근 속에서 현대적인 정치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 체제를 세웠다는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노예 소유주들이 원주민에게 무자비한 전쟁을 벌인 곳이니까요.
영국은 1789년 이래 모든 진보적 정치 운동 중에서도 완강한 반동적 파괴주의자로서 가장 엉뚱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어떻게든 자기 자신에게서 공정한 경쟁의 빛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79년 이란의 주요 혁명 모토는 다른 나라의 역사와 대조되는 방식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도 아닌,서도 아닌,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46년이 지난 지금, 이란 혁명은 세계 정치사에 시대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정치 혁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저의 단순한 의견이 아닙니다. 누가 감히 이런 의견을 서슴지 않고 내겠습니까?
따라서 46년이 지난 지금, 이란 혁명은 본질 그대로를 스스로가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혀 전례 없는 원칙과 방법을 통해 하층 계급에게부터 소득과 정치적 권력을 놀라울 정도로 성공적으로 재분배한 혁명으로, 이 혁명은 이제 1789년 혁명과 1917년 소련의 혁명과만 비교할 수 있습니다.
서방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영국이 이끄는 서방이 (항상 그래왔듯이) 이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이는 사실입니다.
혁명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왕과 오만한 자들의 특권을 타도하는 것입니다.
이란 혁명의 근본적인 토대는 국가 주권보다도 바로 군주제의 폐지입니다.
군주정은 이란내 정치의 대역죄이며, 침략은 국제 정치의 대역죄입니다.
따라서 이란은 모든 정치적 악의 근원입니다. 따라서 이란은 인류에게 가장 끔찍한 특권, 오만함, 그리고 반사회적 행동을 야기합니다. 이란은 오늘날 유럽 전역에 존재하며, 유럽의 지원 덕분에 무슬림 세계 전역에 퍼져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란은 진정한 최초의 세계주의자 계층입니다! 이란은 1789년에 시작된 싸움을 지금도 계속했습니다.
현대 정치사는 1789년에 시작되는데, 이는 군주제의 절대적 독재에 맞선 투쟁과 인류가 점점 더 큰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에서 시작된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 가짜 혁명은 군주제 과두정치를 정당화했을 뿐이며, 이러한 과두정치는 오늘날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그리고 모든 군주제 국가에서 여전히 존재합니다. 군주제란 바로 민주주의, 평등, 그리고 인류애에 반하는 소수의 공모이기 때문입니다.
군주제는 모든 신정 체제 중 최악이라는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왕은 지상의 신, 심지어 신격화까지 주장합니다. 이는 비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으로 반동적입니다. 동반구가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1789년이 걸렸습니다. 서구의 일부는 깨달았지만, 일부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신이시여! 여왕을 지켜주소서"라고 외칩니다.
서구는 군주제가 OK입니다. 소수 특권층도 OK입니다. 불평등도 OK, 침략도 OK입니다. 그들은 서구 자유민주주의가 정치적 도덕성의 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단지 부도덕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말도 안 되는 역사입니다.
이란 이슬람 혁명 지지자들에게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가장 큰 실수라고 말한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바로 "사면"으로 프랑스로 돌려보냈던 옛 귀족들의 재산을 돌려준 것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오랜 내전으로 심각하게 분열된 나라를 치유하려는 잘못된 노력으로 이러한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모든 혁명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내전을 필요로 합니다. 1789년의 혁명이 귀족 특권에 대한 첫 번째 포격이었음을 기억해 두자면, 유럽의 모든 군주국(즉, 유럽 전체)의 혁명 공격을 2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받았던 나라에서 말입니다. "나폴레옹 전쟁"은 "프랑스혁명에 맞선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조심스럽게 전쟁이 끝났다고 가정해 보자면, 이란 혁명에 맞선 전쟁은 짧았습니다. 20세기 마지막 25년 동안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다국적 연합군의 규모는 그만큼 컸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소련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란 이슬람 혁명의 역사적, 정치적 진전 때문입니다.
결국 프랑스 혁명은 귀족들을 복위시켰고, 결국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의 부를 국유화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단지 군주제를 종식시켰을 뿐입니다. (나폴레옹은 수백만 명의 투표로 황제로 추대되었고, "투표"라는 부분은 나폴레옹을 그저 전형적인 군주제가 아닌, 그 시대의 눈부신 정치적 진보로 만들었습니다.)
러시아 혁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성직자와 군주제의 부를 모두 국민에게 돌려주었고, 처음으로 하층 계급에게 완전한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이란 혁명의 천재성은 군주제를 종식시키고 하층 계급에게 완전한 권력을 부여했지만, 성직자와의 전쟁은 일으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979년 혁명은 하층 계급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정의로운 성직자들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프랑스, 러시아, 중국, 쿠바 등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전례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란은 이러한 역사적인 정치적 발전의 수준에 도달하는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이란은 1789년의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교훈과 1917년의 교훈(참담하게 인기를 잃은 종교 박멸 시도를 모방하지 않는 것 포함)에서 교훈을 얻었으며, 이제 자국민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겸손하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란의 행위는 1789년과 1917년에 그랬던 것처럼 특권층 엘리트들과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모든 이란 국민은 1979년 이래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피라미드가 급진적으로 전복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이집트와 모로코와 같은 수많은 서방 종속국들이 실패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만약 그들이 대중 혁명을 원하지 않았고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이란은 지금의 모습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1979년에 이슬람은 정치적으로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기독교/세속적/무신론자인 서구조차 우리가 자주 듣는 서구식 "자유로운 사상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집착을 막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1979년의 확고한 성공 덕분입니다.
현재 논의되는 바에 따르면, 워싱턴은 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불행입니다. 만약 그 이후에 더 많은 지연이 이어진다면, 어쩌면 미국 선거에서 승리를 안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저 평소처럼 반혁명적 전복을 위한 시간을 더 벌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란은 놀라지 않습니다. 혁명 이후 프랑스는 군주제, 특권, 봉건제, 고문, 불평등, 그리고 귀족 엘리트에 대한 억압을 복원하기 위해 단 한 번이 아니라 무려 일곱 번의 "연립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폐습들이 프랑스 국민이 민주적으로 거듭거듭 선택했던 프랑스혁명의 사회정치적, 사회경제적 발전과 타협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란 혁명이 계속되기를 원한다면 나폴레옹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1814년, 프랑스 혁명에 대항하는 제6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 중에, 400년 전 잔 다르크 이후로 외국의 침략을 겪지 않았던 파리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화려하게 함락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재산을 되찾은 귀족들이 패배주의를 퍼뜨리고, 전복 활동을 위한 자금을 지원하고, 프랑스혁명을 뒤집기 위해 공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프랑스혁명을 증오했습니다.
이란은 나라를 회복하기 위해 대부분의 망명자들이 귀국하도록 장려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문제는 아닙니다. 혁명 프랑스의 잘못은 불평등이 재발하도록 방치한 데 있습니다. 이란은 끊임없이 혁명의 원칙을 심어주고 정치적, 경제적 불평등을 근절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결국 그랬듯이, 혁명은 결코 내부와 위로부터 비민주적으로 전복될 수 없습니다.
이란의 혁명은 현재도 면면히 진행되고 있고, 그들이 대역죄로 여기는 군주제와 침략에 단호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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