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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푸틴의 다섯 번째 대통령: 강력한 지도자조차 체제를 통합할 수 없는 이유

한국, 그 함정을 넘어설 준비가 되었는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한 차장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약 4년마다 지역본부장을 순환 배치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오면 신선한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인맥이나 부패에 빠질 시간도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들리죠.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됩니다.

처음 1~2년은 그저 요령을 터득하는 기간입니다. 이론뿐 아니라 세부적인 것들, 어디서 민원이 터지는지, 어떤 시공사가 믿을 만한지, 어떤 자재가 품질이 좋은지. 그런데 막상 요령을 터득하면, 벌써 떠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결정은 그런 사람이 내립니다. 시스템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본적인 수준에서라도 파악한 사람이. 바로 지금, 여기서 결정을 내려야 하니까.

그리고 이제 가장 흥미로운 단계, 예산 집행 단계가 시작됩니다.

예산을 편성하고, 본사 승인을 기다리고, 자금이 내려오면 공사를 발주합니다. 입찰, 계약, 현장 관리, 준공까지. 예산 결정부터 실제 준공까지 1년, 길게는 2년까지 걸립니다. 

 

그런데 지역본부장의 임기는 4년입니다. 만약 공사가 지연되거나 예산이 부족하면, 그 책임은 바로 본부장에게 돌아옵니다. 반대로 예산을 다 쓰지 못하고 불용 처리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감사원에서 지적받겠지만, 그때쯤이면 본부장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발령 났을 테니까.

그래서 연말에 예산을 급하게 집행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공사도 하고, 가지 않아도 될 출장도 갑니다. 관행처럼 굳어졌습니다.

현장은 그렇게 낭비로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돈은 그 안에 묻힙니다. 당신은 당신이 발주한 공사가 3년 후에 하자가 가득한 '흉물'이 되어 있는 걸 보지 못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예산 집행 실적'이 낳은 결과를 수습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음 사람에게 넘길 뿐입니다.

이것은 LH나 한국토지주택공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1. 시스템의 역설: 아무도 결과를 경험하지 않는 결정들의 연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간단합니다.

 

결정을 내린 사람이 그 결과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 결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지역본부장은 단기 성과에 집착합니다. 예산 집행률을 맞추고, 국정감사에 잘 대응하고,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향후 3~5년 뒤에 터질 하자나 민원은 그가 감당할 일이 아닙니다. 새로 온 본부장은 또 변화를 시작합니다. 계약 방식을 바꾸고, 협력업체를 교체하고, 현장 관행을 재설계합니다.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현장은 이전과는 다른 조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결국 엉망이 되기 시작합니다.

잘못된 결정은 연쇄적으로 전파됩니다. 시스템은 실수를 바로잡는 대신, 실수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고, 잘못을 지적해도 그 사람은 이미 다른 지역에 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사업으로 넘어갑니다. 3기 신도시 같은 사업은 수십 년이 걸리지만, 본부장의 임기는 몇 년입니다. 그래서 본부장은 착공과 기공식에만 몰두합니다. 누구도 중단하거나 지연시키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사업 포트폴리오는 비대해지고, 효율성은 떨어집니다.

순환 배치는 분명 장점이 있습니다. 새로운 관점, 부패 감소. 하지만 동시에 사고의 폭을 좁히고, 책임의 공백을 만들며, 누구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는 결정들을 끊임없이 누적시킵니다.



 

2. 푸틴의 역설: 왜 강력한 지도자조차 체제를 통합할 수 없는가

 

여기서 역설이 등장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20년 넘게 러시아를 통치해 왔습니다. 다섯 번째 대통령 임기를 수행 중입니다. 그런데도 러시아의 시스템은 여전히 혼란하고, 비효율적이며, 보고는 왜곡되고, 결정은 지연되거나 뒤집힙니다. 왜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푸틴은 오래 앉아 있지만, 그 아래 수만 명의 관리자들은 여전히 2~4년 단기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푸틴이 아무리 강력해도, 그에게 올라오는 정보는 이미 여러 단계의 '최적화'를 거칩니다. 지역의 실제 문제는 상부에 도달하기 전에 포장되고, 나쁜 소식은 '다른 해석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희석됩니다. 푸틴은 자신의 명령이 실제로 어떻게 실행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결정의 진짜 결과를 경험하는 유일한 사람이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여전히 단기적이고 책임 회피적으로 작동합니다.

결국, 강력한 지도자의 장기 집권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킵니다. 시스템을 고치기는커녕, 자신이 통제한다고 믿는 시스템의 실제 작동 방식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푸틴은 이 시스템의 희생양입니다. 동시에, 그가 오래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이 시스템의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이 역설 때문에 시스템은 내부로부터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이 교훈은 분명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도, 시스템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그 시스템을 혼자서 고칠 수 없습니다.

 



3. 한국은 어떤가? 5년 단임의 비극

이제 한국을 보겠습니다.

대통령 임기는 5년 단임입니다. LH 차장의 4년 순환보다도 더 극단적인 설계입니다.

 

 시간                상황

1년차 취임, 적응, 인사. 아직 뭘 제대로 하기 어렵습니다.
2년차 조금씩 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벌써 임기의 40%가 지났습니다.
3년차 본격적인 성과 압박이 시작됩니다. 동시에 '레임덕'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4년차 사실상 '식물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다음 정부를 위한 준비가 시작됩니다.
5년차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남은 것은 퇴임뿐입니다.

 

 

대통령은 전임자의 실패를 물려받아 고생하지만(희생양), 동시에 '전임자 탓'이라는 프레임으로 선거에서 승리합니다(수혜자).

 

그리고 임기가 끝나면, 자신의 실패를 다음 사람이 탓하게 만듭니다.

누구도 자신이 초래한 결과를 온전히 경험하지 않습니다. 결정의 연쇄적 누적. 이것이 한국 정치의 현주소입니다.

4대 강 사업은 결정한 사람은 떠났고, 유지비와 환경 영향만 남았습니다. 세종시 문제는 여러 정부가 걸쳐 뒤집고 다시 뒤집었습니다. 부동산 정책은 정부마다 '혁신적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시장은 혼란만 커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정부는 "전임 정권의 실패"라고 비난합니다.

이것은 어느 특정 대통령의 잘못이 아닙니다.

 

5년 단임이라는 시스템의 잘못입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87체제의 주요 한계점입니다.
  • 제왕적 대통령제와 5년 단임제: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나, 단임제로 인해 정책의 지속성과 책임성이 결여되어 장기적 국가 과제 추진이 어렵습니다.
  • 승자독식 구조와 극심한 진영 논리: 득표율이 낮아도 권력을 독점하는 불비례적 구조로 인해 선거 때마다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극대화됩니다.
  • 시대 변화 미반영: 1987년 민주화 당시 상황에 머물러 있어, 기후 위기, 인공지능(AI), 디지털 전환 등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 사회/경제적 대안 미비: 민주화 패러다임 자체의 한계와 함께 민주적인 사회/경제적 대안이 부족하여 사회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 분단 체제 극복의 미완성: 헌법상 분단 상황이 반영되어 있어,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담론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4. 이재명 대통령이 맞닥뜨린 현실, 그리고 그가 선택해야 할 길

자, 이제 이재명 대통령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이미 대통령입니다. 푸틴의 사례가 말해주듯 '강력한 지도자' 한 사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아래 장관, 차관, 국장, 지방 공무원들은 여전히 1~2년 단위로 순환할 것입니다. 그들에게 올라오는 보고는 여전히 포장될 것이고, 그는 진짜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입니다. 임기 3년 차가 되면 레임덕이 찾아오고, 5년 차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푸틴이 경험한 현실이고, 이재명 대통령도 피해갈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길은 현행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술한대로, 그렇게 해서는 시스템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창고는 계속 과잉 재고로 가득 차고, 결정은 계속 누적될 뿐입니다. 5년 후, 그는 또 다른 '실패한 전임자'로 기억될 것입니다.

두 번째 길은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대통령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임기 연장이 목표가 아니라, '결정의 결과를 경험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비록 자신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다음 대통령부터는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

두 번째 길이 진정한 개혁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재명 대통령이 '푸틴'과 달라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5.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당장 추진해야 할 '시스템 개혁 패키지'

 

이재명 대통령이 진정으로 나라를 바꾸고자 한다면, 단순히 '4년 연임 개헌'만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반쪽짜리 해결책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개헌으로 비칠 위험도 있습니다. 그가 제안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패키지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첫째,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제 또는 6년 단임제로 개헌해야 합니다. 이것은 출발점입니다. 5년 단임으로는 어떤 뛰어난 지도자도 장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1~2년은 적응, 3년 차부터는 레임덕, 5년 차는 무력함. 이 악순환을 끊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개헌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대통령이 '결과를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

둘째, 퇴임 후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퇴임한 후 5년, 10년 뒤에 그가 내린 결정의 결과를 평가하는 중립 기관을 설립해야 합니다. 법적 책임이 아니라도, 역사적 평가라는 무기는 강력합니다. '내 결정이 10년 후에 어떻게 평가될까'를 의식하는 순간, 대통령의 행동은 달라집니다. LH 차장이 자신이 발주한 공사의 하자를 3년 후에 직접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시스템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장관과 차관의 임기를 최소 3년 이상 보장해야 합니다. 대통령 혼자 오래 앉는다고 해서 시스템 전체가 바뀌지는 않습니다. 순환 배치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전문성이 필요한 부처는 장관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별도로 보장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내 사람'을 앉히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해야 합니다.

넷째, 지역 전문가가 오래 머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방 공무원의 장기 근무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지역에서 평생 일하는 전문관' 트랙을 신설해야 합니다. 중앙에서 온 관리자가 현장을 모르고 결정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경기도지사 시절의 경험을 살려 이 부분을 가장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가 함께 작동해야 합니다. 하나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6. 이재명 대통령이라면 할 수 있는 이유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시스템 개혁을 왜 하필 이재명 대통령이 해야 합니까?"

답변은 간단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 시스템의 폐해를 누구보다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경기도지사로서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사이의 괴리를 직접 겪었습니다. 그는 성남시장으로서 '예산은 중앙에서 결정하고, 결과는 지방이 감당하는' 모순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이 시스템의 희생양이었습니다. 동시에, 그 경험 덕분에 이 시스템이 어떻게 고쳐져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푸틴과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푸틴은 중앙 정보 기관 출신으로, '보고'를 받는 쪽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는 시스템이 어떻게 왜곡되는지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현장에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망가지는지 직접 보았습니다.

이 경험이 바로 이재명 대통령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리고 그가 '다른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더욱이, 그는 이미 대통령입니다.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것은, 그가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푸틴처럼 그 권력을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해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권력을 시스템 개혁을 위해, 자신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강력한 지도자'와 '위대한 지도자'를 가르는 갈림길입니다.



 

 

7. 결론: 결정의 결과를 경험하는 대통령, 이재명

우리는 오랫동안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해왔습니다. 하지만 푸틴의 사례가 말해줍니다. 강력한 지도자조차 체제를 통합할 수 없다면, 그 체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푸틴은 20년 넘게 집권했지만, 러시아의 시스템은 여전히 부패하고 비효율적입니다. 그 이유는 그 아래의 수만 명의 관리자들이 여전히 단기 순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달라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가 추진해야 하는 것은 단순한 '연임 개헌'이 아닙니다. <결과를 경험하는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이 5년, 10년 뒤에 어떻게 평가될지를 의식하는 대통령. 전임자 탓만 하지 않고,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며, 다음 세대를 위해 시스템을 고치는 대통령.

비록 그 혜택을 자신이 누리지 못할지라도, 다음 대통령부터는 이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는 이미 현장에서 이 시스템의 폐해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희생양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 경험을 살려 시스템의 수혜자 구조를 깨는 대통령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대통령입니다.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죽은 후에는 이야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실행해야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재명 대통령이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연임 개헌을 넘어, 시스템 자체의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5년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대통령입니다. 이제 실행할 차례입니다.

모든 잘못된 결정의 공통점은 단 하나입니다. 그 결정의 결과를 누구도 온전히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 이제 우리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 고리를 끊을 수 있습니다. 아니, 그는 이미 대통령이므로, 반드시 끊어야 합니다.